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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십자의 '의도된 패배?'와 일동의 운명 ②
녹십자의 '의도된 패배?'와 일동의 운명 ②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15.03.30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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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합병도 지주회사 설립도 불가한 묘한 지분균형
 

녹십자와 일동제약의 지분 전쟁과 관련해 잠깐! 일동제약 지분관련 사태를 통해 녹십자가 한 번이라도 적대적 M&A를 하려한다고 밝힌 적이 있을까? 없다. 하지만 지난해 지주회사 설립안 부결시키고 올 주총에서는 등기이사 선임안을 올리는 등 전형적인 적대적 M&A 수순을 밟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녹십자의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녹십자는 국내 제약사 가운데 독특한 특성을 가진 회사다.  다른 국내 제약사가 다국적 제약사의 제네릭을 만들거나 TV광고 등을 통해 일반약의 인지도를 쌓아 매출을 올렸다면 녹십자는 이런 일방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혈액제제와 백신 분야에서 독자적인 역량을 쌓은 후 최근에는 희귀질환과 항암제 개발 등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매출 규모는 국내 제약사 가운데 1·2위를 다투면서 국내 제약사 어디 하고도 파이프라인이 겹치지 않는 독특함 덕분에 녹십자는 늘 M&A 시장에서 주목받는 제약사였다.

일동제약은 전문약과 일반약에 고른 강점이 있는 '알짜배기' 제약사로 녹십자의 아쉬운 부분을 가장 잘 보완할 수 있는 제약사로 꼽힌다.

특히 일동제약의 '아로나민 골드'같은 블록버스터급 일반약은 이렇다할 대표 일반약이 없는 입장에서는 탐나는 아이템일 수 있다.

이런 배경 탓에 녹십자가 일동제약의 2대 주주가 되는 순간 세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적대적 M&A 여부로 쏠렸다.

 
현재 스코어는 일동제약 경영진측 지분 32.52%, 녹십자측 지분 29.36%. 양측의 지분 차이는 3.16%에 불과하다.

일동후디스 지분 1.36%가 상호출자에 해당돼 의결권이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일동제약 경영진의 지분율은 31.66%로 녹십자가 턱밑까지 추격한 상태다.

눈여겨 볼 점은 현 지분구도가 어느 쪽도 완승할 수 없는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녹십자는 적대적 M&A를 할 수는 없는 지분이고 일동제약은 지주회사 설립을 통해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할 수 없는 지분이다.

사실상 어려운 적대적 M&A...무력시위일 뿐

인수합병이나 지주회사 설립건 등은 '보통결의'가 아닌 '특별결의' 사안이다. 보통결의가 과반수 찬성을 끌어내면 되는데 비해 특별결의는 2/3 찬성이 필요하다. 대략 2/3는 전체 지분의 70% 정도인데 녹십자나 일동제약 모두 30% 정도의 최소 방어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우호지분 등을 합치면 정확하지는 않지만 일동제약이 과반 정도의 지분을,  녹십자측은 그보다 약간 적은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근거는 일동제약 지주회사 설립을 두고 양측이 전력을 다해 맞붙은 지난해 일동제약 주총 결과다. 당시 일동제약은 54.6%의 지주회사 설립 찬성표를, 녹십자측은 45.4%의 반대표를 동원했다.

녹십자도,  일동제약도 서로를 압도하지 못하는 묘한 균형 속에 일동제약 주식 8.99%를 소유한 사모펀드 '피델리티'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번 사외이사 선임과 같은 과반 찬성안의 경우 피델리티가 누구의 편을 드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나기 때문이다.

일동제약측은 피델리티가 이번 주총에서 일동제약측에 표를 던진 것을 근거로 앞으로 우호지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피델리티는 사모펀드다. 사모펀드의 특성상 보유주식 가치가 계속 치솟을 수밖에 없는 이 균형을 즐길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도 균형자 역할을 이어가려 할 것으로 보인다. 피델리티에게 어느 한 편을 들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피델리티는 지난해 일동제약이 제안한 지주회사 설립안에 반대하면서 녹십자측에 힘을 실어주더니 올해는 일동제약이 사외이사 선임건에 찬성하면서 일동제약의 손을 들어줬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 균형을 무너트리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올해 들어서는 가지고 있던 지분 1% 정도를 팔아 적지않은 시세차익을 봤다. 양측의 전쟁이 종반으로 치달을 수록 피델리티는 지분을 지속해서 팔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끝나면 주가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물론 양측 중 어느 한 곳이 이 균형을 무너트릴 가능성은 상존하지만 극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이 균형은 한동안 깨지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은 곧 녹십자 역시 공개매수 방식을 통해 적대적 M&A를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적대적 M&A에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다. 통상 적대적 M&A는 '공개매수(Tender Offer)'나 '위임장 대결(Proxy Fight)' 방식으로 추진되지만 어떤 방식도 만만치 않다.

최근 일어난 대표적인 공개매수 적대적 M&A 사례를 보자.

2006년 외국계 자본 '칼 아이칸' KT&G를 적대적 M&A하려했지만 국민연금이 '백기사'를 자처해 무산시켰다. 현대가 적통싸움으로 번진 KCC와 현대엘리베이터간의 적대적 M&A도 있었다. KCC는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해 적대적 M&A를 시도해 성공했지만 경영권까지 인수하지는 못했다.

그나마 주총에서 과반대결을 통해 현 이사진이나 경영진을 갈아치우는 위임장 대결 방법은 공개매수 방식보다 가능성이 높지만 역시 쉽지 않다.

경영진을 갈아치우는데 성공한다해도 자리를 뺏긴 전 경영진이 '이사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경우가 많아 적대적 M&A 대결이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외국 역시 마찬가지로 적대적 M&A 성공 가능성은 낮다.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측 역시 M&A과정에서 적지않은 상처를 입게 된다. 합병과정에 입는 도덕적인 비판은 물론, 주식매수 비용 등 이런저런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M&A에 협조한다해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 심지어 결사항전을 선언한 일동제약을 M&A할만큼 녹십자가 목을 매어야하는지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동제약을 왜 이렇게 몰아붙이는 걸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높지 않은 적대적 M&A 가능성에도 전력을 다해 방어해야 하는 일동제약의 입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도대체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 윤웅섭 일동제약 대표이사가 주총 이후 기자실에 들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일동제약 역시 적대적 M&A가 현실화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공격을 하는 입장과 방어하는 입장은 다르다.

방어하는 측은 전쟁발발 가능성이 아무리 낮다해도 그 가능성이 있는 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일동제약의 입장은 전쟁을 대비하는 방어자와 같은 것이다.

일동제약은 몇해 전부터 글로벌 제약사로 나아가기 위해 적지않은 비용을 R&D에 쏟아 부었다.

식약처에 따르면 일동제약은 2014년 한미약품에 이어 두번째로 임상시험 허가신청을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리지널 의약품에 대한 특허도전도 한미약품에 이어 2위다. 특허도전과 R&D 투자에 일동제약의 재무역량이 적지않게 소진됐을 것으로 보인다.

녹십자의 지분매입에 위기감을 느낀 일동제약측은 2013년 부랴부랴 시세보다 비싼 값에 기관투자가의 주식을 인수하기도 했지만 이번 주총에서 보듯 충분한 지분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녹십자는 바로 이런 일동제약의 취약점을 포착해 30% 가까운 지분율을 확보하고 지난해 일동제약의 경영권 방어에 핵심인 지주회사 설립안을 부결시키면서 일동제약을 구석으로 몰아넣는데 성공했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이후 싸움은 녹십자의 주도로 풀려가는 모양새다.

녹십자는 이번 사외이사 선임과 같은 되면 좋고 안되면 그만일 뿐인 압박수단 한 번으로 일동제약을 꽤 지치게 만들었다. 앞으로도 녹십자의 공격은 지속될 것이고 그때마다 일동제약은 전력을 기울여 막는 상황이 반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녹십자는 일동제약을 적대적 M&A하겠다기보다 지치게 하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벌어진 적대적 M&A의 양상을 보면 서로 지지부진한 싸움을 벌이다가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수순을 밟는다. 둘간의 지분전쟁 역시 이 수순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녹십자가 지분 30%를 확보하는 순간 이번 싸움은 '녹십자가 얼마나 더 가져갈 것이냐'와  '일동제약은 얼마나 덜 줄 수 있을까'의 구도가 됐다.

사외이사 선임을 둘러싼 이번 공방은 앞으로 있을 '빅딜'을 염두에 둔 양측의 힘겨루기로 해석된다.

사외이사 선임건을 가까스로 막은 윤웅섭 대표이사는 주총이 끝난 직후 "녹십자와 일동제약의 상생과 서로의 신뢰를 위해 많은 소통과 대화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소모적인 공방은 그만하고 진짜로 원하는 걸 말해보라'고 녹십자를 향해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녹십자가 벌써 화답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적대적 M&A 가능성을 열어두고 계속 공격해 일동제약을 지치게 만들면 만들수록 후속 협상은 유리해질텐데 서두를 이유가 없다. 

일동제약이 녹십자가 원하는 카드를 제안한다면 빅딜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어 보인다.  그럼 이쯤에서 녹십자가 일동제약으로부터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과연 일동제약이 무엇을 내놔야 녹십자를 협상테이블에 끌어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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