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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정화…'의사 단체' 역할 강화해야
자율정화…'의사 단체' 역할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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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1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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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료의 현주소와 윤리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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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정화…'의사 단체' 역할 강화해야

▲ 허 대 석(서울의대 교수)

의료에서 윤리는 항상 중요한 문제로 인식돼 왔으나, 새로운 의료기술의 도입은 과거 생각하지 못했던 윤리문제를 유발하고 있으며, 의료보장에 대한 사회적 요구의 증가는 환자-의사의 관계에도 큰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의료기술 발전이 가져온 윤리 문제

1978년 시험관 아기가 처음 태어난 이후, 보조생식술은 불임부부들에게 큰 희망을 주고 있는 동시에 난자공여, 대리모 등 과거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윤리적 논란을 가져왔다. 이처럼 의료기술의 발전은 희망뿐 아니라 예기치 못한 고통을 안겨주는 양날의 칼이 되고 있다.

▲어디서부터 질환인가?
전통적으로 의술은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를 대상으로 이뤄졌으나, 최근에는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목적의 의료서비스가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건강검진이다.

심각한 고혈압이나 고지혈증을 조절하면 심혈관질환을 경감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에 근거한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조절 노력은 경미한 상태까지 조절하려는 방향으로 바뀌어가면서 당장 이상 증상이 없는 이들도 심리적 환자가 되고 있다.

또, 영상진단기기의 발전으로 미세한 신체변화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인지된 소견이 가지는 진단적 의미에 대한 해석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갑상선암 과잉진단이 대표적인 예이다. 초음파로 갑상선검진을 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불편을 모르고 생활할 수 있었는데, 검사기술의 발전으로 미세한 병변까지 발견할 수 있게 되면서, 질병 예방과 과잉진단 사이에서 윤리적 갈등을 느끼고 있다.

▲언제까지 치료해야 하나?
사고나 급성질환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환자를 소생시키는 연명의료기술을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에게 적용하면서 윤리적·법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국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에서 호흡곤란이 생긴다면 인공호흡기를 적용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암환자의 가족과 담당 의사에게 했을 때, 가족과 의사의 의견이 39%에서만 일치했다.

이런 결정은 단순한 의학적 판단만 아니라, 가치관을 반영하기 때문에 의견의 일치를 얻기가 쉽지 않고, 의사결정과정에서 윤리적 갈등을 유발한다.

인공호흡기를 적용하면 저산소혈증이 개선돼 생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고통받는 기간만 연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한 가지 결정이 생존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선행을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고통받는 기간만 연장하는 악행을 범할 수도 있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선택의 딜레마
환자를 조금이라도 좋게 할 가능성이 있는 최신 의학정보를 가족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선행이다. 그러나 환자가 신약에 반응하지 않고, 수 천만 원의 경제적 부담만 가중시킨다면 의사는 결과적으로는 악행을 하는 셈이다.

의학의 발전으로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새로운 방법들이 계속 개발되는 것이 의사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변화가 가져온 윤리 문제

독거노인의 경우, 질환이 발생하면 병원치료와 약 처방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간병 문제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가족구조, 주거환경, 정보통신 수단의 변화 등으로 생활환경이 변화하면서 의료현장도 사회적 영향을 받고 있다.

▲사회의 의료화 현상
'생로병사'로 대표되는 의료문제들이 과거에는 집에서 이뤄졌으나, 지금은 대부분 병원을 이용해 해결하고 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사망과 관련된 문제이다. 과거에는 '객사'를 꺼려하는 문화적 영향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환자도 상태가 악화되면 집으로 모시고 갔으나, 지금은 집에 머물던 환자들도 임종이 임박하면 병원으로 온다.

만성질환으로 투병하다 악화돼 임종한 18만 명의 환자 가운데 3만여 명이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다(한국보건의료연구원, 2009년). 집에서 사망했더라면 자연스럽게 임종할 수 있었던 환자들이다.

▲ 일러스트=윤세호 기자

▲의료의 산업화
의료가 서비스산업으로 발전하고, 의료기관 경영에 시장논리가 작동하면서 의사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환자가 '고객'이라는 점도 고려해야하는 의사들은 환자-의사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할지 어려워하고 있다.

▲의료정보의 홍수
인터넷이 널리 보급돼 의료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질환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잘못된 정보로 혼란에 빠지거나 많은 정보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의료정보의 홍수 속에 환자뿐만 아니라 의료인조차도 의학적 결정에 혼란을 겪고 있다. 컴퓨터에서 수많은 의학논문을 쉽게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긍정적이나, 정보의 과다공급은 의학적 판단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제도의 변화가 가져온 윤리 문제

2000년도 의사파업 이후에도 의료제도 문제로 의사들은 정부와 끊임없이 갈등을 빚고 있다. 파업은 일반적으로 노사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어서 전문직종인 의사의 파업을 부적절한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으나, 영국처럼 사회보장 형태로 국가가 의료를 관리하는 나라에서도 의사파업이 반복되고 있다.

▲건강보험
히포크라테스가 의료윤리지침을 기록한 2300여년전, 의료행위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양자관계였다. 전문직종으로 자율성을 보장받았던 의사와 환자의 전통적인 관계가 보험이라는 제3자의 영향력 안에 놓이게 된 것은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사회복지를 명분으로 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부터였다.

사회적으로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직종은 자율권의 존중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건강보험이 관리하는 의료행위의 영역이 확장되는 수준과 비례해 의사들이 갖는 자율권의 폭은 줄어들었다.

우리나라는 필수의료일수록 수가를 원가 이하로 묶는 저수가정책으로 인해 비급여 의료행위나 수익사업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고, 의사의 기술료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아 검사나 투약위주의 비정상적인 의료가 만연한 것이 현실이다.

▲법적 분쟁
그동안 묵시적으로 이뤄지던 의학적인 충고에 어긋난 퇴원(보라매병원 사건)에 대한 유죄판결은 의사들이 방어적인 진료를 조장하는 계기가 됐다. 환자안전에 대한 사회인식이 높아지면서 의료분쟁이 증가하고 있다.

의사면허를 취득했으나 법적 혹은 윤리적 문제로 중도에 의업을 포기해야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 의사들도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항상 유혹에 노출돼 있다. 성추행이나 마약사건과 연관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의사들의 이야기가 언론에 자주 보도되고 있다.

의사가 일반인보다 높은 윤리의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환자와의 신체적 접촉이 많고, 향정신성 약물 등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등 직업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의사면허'라는 제도를 통해 의료행위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의사에게 부여한 이유는 의료인의 전문성과 윤리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면허제도라는 보호 속에서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이익만 추구하지 말고 사회의 필요에 부응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료는 전문적인 의학지식을 지니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의사라는 직업의 전문성과 자율성이 사회로부터 존중받기 위해서는 의사조직의 자기정화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전문직업인으로서 윤리적인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의사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의사 단체의 활동도 중요하다. 의료와 관련된 윤리 문제를 비전문가가 판정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병원이나 의사단체의 윤리위원회를 활성화하고, 사회적 쟁점사안에 대해서는 의사 단체들이 서로 협력해 일관된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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