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국회의장 '일본식 선택분업' 거론한 배경은?
[집중취재] 국회의장 '일본식 선택분업' 거론한 배경은?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4.12.0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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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고령화·만성질환 증가·보장성 강화 등 보험재정 위협
조제료 등 기술료만 5가지...의약분업 전후 약국 급여비 폭증

▲ 정의화 국회의장은 11월 13일 63컨벤션에서 열린 KHC 개회식에서 축사를 통해 "일본식 환자 선택분업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해 관심을 모았다.
일본식 선택분업을 도입해야 한다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발언을 놓고 병원계와 약계의 이해가 엇갈리고 있다.

정 국회의장은 11월 13일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차 Korea Healthcare Congress(KHC)' 개회식에서 축사를 통해 "의약분업도 더 이상 이렇게 가선 안된다"며 "최소한 일본식 선택분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래환자가 지금처럼 원외 약국은 물론 병·의원에 설치된 조제실에서도 조제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국회의장의 일본식 선택분업 발언에 대해 대한약사회는 발언 취소와 함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놨다.

약사회는 "현직 국회의장이 공식석상에서 일본식 선택적 의약분업을 대안으로 내세우는것은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갑작스럽게 의약분업이 잘못된 제도로 선택분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모순된 주장을 하는 것은 보건체계를 올바로 정립하고 국민의 건강권을 도모해야 하는 국회의 수장으로서 자격을 의심케 하는 행위"라고 반박했다.

정 의장이 공식석상에서 선택분업 제도에 대해 발언한 배경에는 인구 고령화·만성질환 증가·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및 3대 비급여의 급여화 전환 등으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고령화·만성질환·보장성 강화 등 건보 지속가능성 위협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위기가 대두될 때마다 지출을 효율화 하는데 주력해 왔다.

2000년 의약분업 시행으로 진료비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건강보험재정 파탄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는 ▲진찰료·처방료 통합(8745억원) ▲진찰료·조제료 차등수가제 실시(3158억원) ▲야간가산율 적용 시간대 조정(2076억원) ▲주사제 처방료 및 조제료 삭제(5350억원) ▲일반의약품 비급여 확대(4397억원) 등의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대책을 단행했다.

보건복지부는 이같은 극단적인 재정안정화대책을 통해 1조 7560억원의 재정을 절감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이와 함께 심사기준 강화(9331억원)·급여기준 합리화(5485억원)·약제비 적정성평가(2744억원) 등을 통해서도 2조 3726억원을 절감했다고 밝혔다.

정부 스스로 국회에 보고했듯이 의료계에 지급해야 할 급여비를 집중적으로 쥐어짜는 정책으로 4조 1286억원의 급여비용을 절감하고, 담배부담금 지원을 통해 가까스로 재정파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셈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이 안정적인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극단적인 재정안정화대책의 원상 회복은 미뤄둔 채 식대 수가 동결, CT·MRI를 비롯한 영상검사수가 인하 등 지속적으로 고통 분담을 강요하고 있다.

문제는 고통 분담이 의원과 병원을 비롯한 의료기관에 집중되면서 의료기관의 존립마저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병협은 12일 63컨벤션에서 열린 전국병원장회의에서 '보건의료 백년대계를 위한 전국 병원인의 요구' 결의문을 통해 수가 정상화와 규제 개선을 촉구했다.

전국병원장들은 "병원들은 원가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낮은 수가와 각종 규제 속에서도 국민 보건 향상과 세계가 부러워 하는 건강보험제도를 이끌어냈다"면서 "하지만 병원을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 나가야 할 정부는 아직도 규제로 일관하고 있고, 이로 인한 국민의 불편과 정책 실패의 책임을 모두 병원에 전가하고 있다"고 통탄해 했다.

규제 개선과 의료전문가의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병원장회의는 "각종 보건의료 규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고, 의료전문가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앞장서야 한다"며 "모든 정책은 의료전문가 단체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 후 진행해 국민 요구와 의료 현실에 부합하는 정책을 추진해 달라"고 요구했다.

박상근 병협 회장은 "순종을 강요하고, 의사를 쥐어짜 건강보험 재정을 채웠지만 도산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영양 실조 걸린 병원계에는 피 한 방울 주지 않았다"며 "원가보다도 낮은 수가 속에 그동안 비급여와 장례식장·매점 등 부대사업에서 메꿔왔지만 이제는 버틸만한 구석이 없다"고 밝혔다.

"당연지정제와 비합리적인 규제에 묶여 병원이 줄줄이 도산하기 시작하면서 의료공급체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밝힌 박 회장은 "오늘 전국병원장회의는 단순히 진료수가 몇 %를 올리고자 모인 것이 아니라 무너지는 의료공급체계와 환자들이 적정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위기 상황을 알리기 위해 모였다"면서 "비정상을 양산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의료공급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병원장회의가 열린 것은 2000년 의약분업 반대 투쟁과 2011년 병원 생존을 위한 전국병원장 비상 임시총회에 이어 세 번째다.

재정안정화 대책 의료계만 고통분담...전국병원장회의 "수가 정상화" 촉구

▲ 대한병원협회는 2012년 2월 15일 국회에서 '의약분업제도 개선 전국민 서명운동 결과 보고회 및 심포지엄'을 열었다. 성상철 당시 병협 회장이 "외래환자가 병원내 약국이나 병원 외 약국을 가리지 않고 의약품을 조제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서명운동에 264만 명이 넘는 국민이 참여했다"며 의약분업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는 의약분업의 세부 정책목표로 △임의조제 근절 △항생제 사용 감소 △전체 약 사용량 감소 △약제비 절감 △국민 부담 증가 여부 △처방전 효과 △복약지도 효과 △실거래가상환제의 제약산업 발전기여 여부 △의약품 유통 정상화 여부 등 9개 항목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달성된 것이 있냐는 비판이 우세하다.

'약제비 절감을 통한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라는 세부 정책목표는 약국관리료·조제기본료·복약지도료·조제료·의약품관리료 등 다섯 가지 항목의 기술료를 인정해 주는 제도 설계상의 결함으로 재정은 재정대로 들면서 거동이 어려운 노인과 장애인 등에게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다.

급기야 지난 2011년 병협 회장을 맡고 있던 성상철 회장은 '의약분업제도 개선 전국민 서명운동'을 추진, 제도 개선을 위한 여론을 조성하기도 했다.

전국 시도병원회와 600여곳 병원을 중심으로 "외래환자가 병원내 약국이나 병원 외 약국을 가리지 않고 의약품을 조제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서명운동에는 264만 명이 넘는 국민이 참여했다.

당시 국민의 여론도 의약분업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데 적지 않은 무게를 실었다.

2010년 7월 한국리서치가 20∼69세까지의 남녀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3%가 "병원 내 조제실과 병원 밖 약국 중 조제장소를 선택할 수 있게 의약분업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2010년 의약분업 시행 10년을 맞아 의협 회원 8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환자 선택분업으로 전면 전환해야 한다'는 응답이 54.4%,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 의사가 직접조제할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넓혀야 한다'가 19.7%였다.

의약분업 평가에 대한 항목에서는 '의약분업 평가를 통해 제도의 틀을 바꿔야 한다'가 56.1%로 가장 많았고, '평가를 통해 문제점을 대대적으로 개선해야 하지만 제도의 틀을 바꾸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응답이 35.8%였다.

김윤수 전 병협회장은 2013년 회장 재임시절 의약분업 제도 개선을 위해 대국회·정부 활동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으나 구체적인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임기를 마쳤다.

서울시병원회장 재임시절부터 의약분업 제도 개선에 관심을 기울여 온 박상근 현 병협 회장은 올해 병협회장 취임 이후 병원계가 직면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지만 합리적 대화와 건의의 부재를 절감하고 있다.

▲ 2010년 의약분업 시행 10년을 맞아 의협 회원 8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환자 선택분업으로 전면 전환해야 한다'는 응답은 54.4%였다.

국민 10명 중 7명 "의약분업제도 개선해야"

의약분업 이전인 1999년 요양기관의 총 진료건수는 3억 3797만건에서 14년이 지난 2013년 13억 3621만건으로 약 4배 가량 증가했다.

총급여비(건강보험 급여비+개인 부담)는 1999년 11조 5216억원에서 2013년 50조 7425억원으로 총 진료건수 증가와 비슷한 4.4배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동안 의료기관의 급여비는 7조 4521억원에서 29조 4370억원으로 3.95배 늘어난 반면 약국 급여비는 2007억원에서 8조 5901억원으로 무려 42.8배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약국 급여비의 폭증은 의약분업제도 시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체 급여비는 2000년 8조 9569원에서 2001년 12조 9548억원으로 3조 9979억원이 늘어났다. 매년 자연 증가하는 1조원 가량의 요양급여비를 제외하면 갑자기 늘어난 3조원은 의약분업으로 인한 비용 증가임을 알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증가한 3조 9979억원의 요양급여비를 종별로 살펴보면 의료기관이 37.9%(1조 5141억원)를, 약국이 62.1%(2조 4837억원)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 3896억에 불과하던 조제료는 의약분업 시행 이후인 2001년에 1조 4349억원으로 268%(1조 453억원) 증가했다.

이에 대해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은 "의약분업 시행으로 약제비가 증가한 이유는 기술료가 높기 때문"이라며 "약국관리료·조제기본료·복약지도료·조제료·의약품관리료 등 다섯 가지 항목으로 기술료를 주는 나라는 의료보험을 실시하는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장은 "약국관리료가 있는데 왜 의약품관리료가 별도 보상돼야 하는지, 조제료와 조제기본료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건보공단은 건강보험의 지속가능한 중장기 경영을 위해 건강보험료 부담 형평성 제고·피부양자 관리 강화·사업장 지도점검·직장보험료 정산관리 강화 등을 통해 수입을 확충할 계획이다.

효율적인 지출을 위해 검진결과 유질환군의 상담·재가중심 서비스 확대·지역밀착 시스템 등을 비롯해 부당검진비 실적 관리·사후관리 강화·부당청구 예방시스템 마련·공익신고 포상금제 활성화 등을 강화할 방침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의약분업제도 강행 이후 폭증한 약국 급여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얘기가 없다.

약국관리료·의약품관리료·조제기본료 등 5가지 기술료 인정...약제비 증가 원인

누적수지가 10조원을 넘어섰지만 의료계가 요구해 온 적정수가나 불합리한 규제 개선 요구에 대해 정부는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8년 동안 묶여 있는 식대를 인상해 달라는 요구도 내년에 가서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큰 변수가 없는한 올 연말까지 약 11조 6000억원(당기수지 3조 4000억원)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건강보험 재정은 흑자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14∼2018년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안'에 따르면 건강보험 재정 규모는 2014년 48조 3489억원, 2015년 51조 8322억원, 2016년 56조 2352억원, 2017년 61조 2326억원, 2018년 66조 6597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수입은 2014년 41조 549억원, 2015년 44조 2732억원, 2016년 48조1373억원, 2017년 52조5129억원, 2018년 57조 2609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지출은 2014년 45조 8265억원, 2015년 51조 7001억원, 2016년 57조 805억원, 2017년 61조 3505억원, 2018년 66조 2036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수준으로 건강보험 인상률을 유지할 경우 당기수지는 2016년 8453억원 적자, 2017년 1179억원 적자에서 2018년 4561억원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관측됐다.

누적수지는 2014년 10조 7427억원, 2015년 10조 8748억원, 2016년 10조 295억원, 2017년 9조 9116억원, 2018년 10조 3677억원으로 당분간 연 10조원 규모의 누적수지 흑자 재정을 적립할 수 있을 것으로 건보공단은 전망했다.

하지만 건보공단의 이같은 흑자 전망에는 '적정 수가'·'적정 급여'에 대한 언급이 없다. 현재의 '저수가'·'저급여'라는 기본틀을 유지한다는 전제에서의 전망인 것이다.

장기적인 경제 침체로 작은 병에는 아파도 참으며 의료기관을 찾지 않는 '잠재 환자'라는 변수도 놓치고 있다.

 

보다 더 큰 문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에 따라 노인 급여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데 있다.

건보공단은 65세 이상 노인 급여비가 2013년 13조 5000억원에서 2017년 24조 4000억원, 2026년 62조 5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2013년 노인 급여비 비중은 총급여비의 36.3%를 차지했다. 건보공단은 노인 인구의 증가에 따라 2017년 40.0%, 2026년 53.2% 수준까지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 급여비도 재정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만성질환 급여비는 2012년 전체의 38.3%에서, 2020년 42.1%에 이를 전망이다.

아울러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와 3대 비급여 개선도 변수다.

건강보험 전문가들은 2017년까지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에 8조 9900억원, 3대 비급여 개선에 4조 5540억원 등 13조 544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조제료 외에 약국관리료·조제기본료·복약지도료·의약품관리료라는 갖가지 기술료를 인정해 주는 상황에서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과 지속가능성을 높여나간다는 것은 모순이다.

국회의장이 일본식 선택분업을 거론한 배경에는 환자의 불편을 줄여주고, 조제료의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문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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