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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2시.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가산 성당 내 성토마스관. 한 달에 두 번 문을 여는 '예리코 클리닉'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영세한 공장이 밀집한 경기도 북부지역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강원도까지 흘러갔다. 2003년 춘천교구 가톨릭의사회에서 활동하는 몇몇 의사들이 청진기를 들었다. 한 달에 한 번 2시 간을 달려 가산 성당 한 켠에 마련한 천막과 컨테이너에 주말 진료실을 열었다.
그러길 17년, 춘천교구와 포천 보건지소·국제보건의료재단·김남호복지재단 등의 도움으로 성당 옆 2층 성토마스관으로 이사했다. 여러 의료진들의 참여로 진료과도 내과·외과·이비인후과·피부과 등 8개과로, 진료일도 매월 2회(첫째·셋째 일요일)로 늘렸다.
포천지역 인근에는 필리핀·인도·스리랑카·몽골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 약 1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중 약 15%는 불법 체류자다. 정식 취업 비자를 받았더라도 평일에 눈총을 받아가며 병원을 가기도 어렵다.
10년 전 필리핀에서 왔다는 조이(45세)씨는 "외국인 노동자 열에 아홉은 아파도 병원을 찾지 않고 참는다. 나 역시 고통을 참고 견디다 몇 년 전 이곳에서 폐결핵 진단을 받고서야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곳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정말 소중한 공간"이라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감기·고혈압·당뇨병·근육통 등으로 예리코 클리닉을 찾는다. 그러나 가끔씩 위중한 질환도 발견된다. 이날 갑작스런 왼손 마비 증세로 예리코클리닉을 찾은 한 불법 외국인 노동자 A씨도 차일피일 진료를 미뤄 병을 키운 경우다.
A씨를 진료한 김태석 강원의대 교수(강원대병원 내과)는 "말초신경 마비 증세로 정밀한 진료가 필요한 상태"라면서 "예리코클리닉에서 감당할 수 없는 환자들은 외국인노동자센터나 대학병원 사회사업센터 등과 연계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리코클리닉을 찾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포천 뿐만 아니라 인근 의정부·철원 등에서 먼 길을 마다 않고 이곳을 찾는다. 그러나 늘어나는 환자만큼 진료할 수 있는 의료진을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예리코클리닉 원년 멤버인 안정효 원장(강원도 춘천시·안정효내과의원)은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노동자, 특히 불법 체류자들에게는 의사의 손길이 더욱 절실하다"면서 "몇 시간 환자를 보는 것이 의료진에게는 작은 일일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치료를 넘어 삶의 큰 위안과 힘이 된다. 이런 의미 있는 일에 더 많은 의사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료 나눔 문의(ajhmd@hanmail.net 안정효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