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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텐트 협진 의무화, 의료 현실 무시한 악법"

"스텐트 협진 의무화, 의료 현실 무시한 악법"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4.10.2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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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심장학회·대한심혈관중재학회, 보건복지부 고시 부작용 지적
환자 불편·위험 증가, 의사의 진료권 부정, 무분별 급여 삭감 우려

보건복지부의 '스텐트 협진 의무화'에 대해 관련 학회들이 "의료현실을 무시한 악법"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하고 나섰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스텐트 협진 의무화는 지난 9월 30일 보건복지부가 "평생 3개까지 건강보험을 적용했던 심장 스텐트를 개수 제한 없이 보험 적용하되 적정사용 및 최적의 환자 진료를 위해 순환기내과 전문의와 흉부외과 전문의가 협의해 치료방침을 결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고시 개정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대한심장학회(이사장 오동주)와 대한심혈관중재학회(이사장 안태훈)는 28일 "12월 1일부터 보건복지부 고시가 적용되면 협진으로 인해 환자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이로 인해 사망률 증가 같은 위험성도 함께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또 "협진이 불필요하거나 불가능한 환자까지 의무적인 협진을 고시로 강요해 의사의 진료권(전문가적 결정과 선택)마저 부정하고 있어 원점에서 재논의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두 학회는 이번 고시 개정안이 불러올 부작용을 ▲환자 불편과 위험 가중 및 선택권 저해 ▲대형병원 쏠림으로 인한 빈익빈부익부 현상 가속 ▲협진 시 불협화음 우려 등의 사례를 들면서 조목조목 지적했다.

<예상 부작용 1>
▶보건복지부, 유럽·미국심장학회 가이드라인 잘못 해석
이번 개정안 따르면 경피적 관상동맥중재술(PCI:스텐트 시술)만 할 수 있는 의료기관은 관상동맥우회술(CABG:우회술)이 가능한 의료기관과 MOU를 체결하고 심장통합 진료팀을 운영해야 한다.

특히, 다혈관 질환에서는 반드시 흉부외과와의 협진 기록이 있어야 스텐트 시술 급여가 인정되는 점이 이번 고시의 특징이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10년 유럽심장학회 권고안을 근거로 제시했으나, 개별적인 심장팀 협진을 권고했다가 최근 이 가이드라인이 현실성이 없고 효과적이지 않음이 증명돼 2014년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제정됐다. 지금은 각 병원의 현실에 맞는 기관별 진료지침을 만들어 환자가 협진 결과를 기다리지 않도록 변경됐다.

또 미국심장학회에서도(2011년) 다혈관 복합 병변은 약물치료보다 혈관 재개통술이 우월하다고 발표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재개통술은 스텐트나 수술적 치료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건복지부에서는 이것을 수술 만을 권유하는 것처럼 강조해 스텐트 시술을 제한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즉, 가이드라인을 잘못 해석함과 더불어 강제 적용하는 큰 오류를 범한 것.

▶환자 불편과 위험 가중 및 선택권 저해
두 학회에 따르면 스텐트 시술 시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보통 100만원 선으로 다혈관 복잡한 병변이더라도 150~200만원 정도이며, 입원 기간 역시 1박 2일 내지 2박 3일으로 회복 기간이 짧다.

반면, 흉부외과 수술 시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700만원 정도이며, 전신마취를 해야함은 물론 약 20여일의 입원기간이 필요하다. 환자의 입장에서 스텐트 시술은 치료의 효과 뿐만 아니라 경제성·편의성에서의 장점이 크다.

그러나 협진이 강제화되면 환자들의 불편과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 협진 결과 두 의사의 의견이 서로 일치하지 않아 치료방침을 결정하지 못하면 장시간 대기로 인한 비용과 위험성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또 중증환자는 기다리는 시간동안 증상이 악화돼 심근경색·급사 등이 발생할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환자의 치료결정권도 저해한다. 만약 환자들에게 스텐트 시술과 우회술 중 어떤 시술을 받기 원하는지 물으면, 대부분 스텐트 시술을 선택한다. 개흉 수술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그러나 협진을 하더라도 흉부외과 의사가 환자의 스텐트 시술을 계속 반대할 경우 차후 삭감의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시술을 하기 어렵다.

따라서 스텐트 시술을 원하는 환자는 흉부외과 의사가 동의해 주는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하므로 현재 개정안에 따르면 환자의 치료선택권은 존중되기 힘들다.

두 학회는 "고시 내용에서 '심장스텐트'는 의학적 근거만 있으면 개수 제한이 없는 것처럼 돼있으나 불합리한 행위기준을 새로 만들어 의학적 근거 및 환자의 선택이 있어도 삭감할 수 있는 규제를 만들었고, 이로 인해 환자의 선택과 스텐트 시술이 억제되기 때문에 보장성 강화라는 말은 외형상의 내용일 뿐 실제 내용은 보험재정절감 목적이 더 큰 고시"라고 지적했다.

<예상 부작용 2>
▶지역에서 스텐트 시술 '1등급' 받으면 뭐하나
두 학회는 대도시의 큰 병원 쏠림 현상도 우려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스텐트 시술을 하고 있는 곳은 145곳이며 우회술을 실시한 곳은 79곳이다. 우회술을 하는 곳에서 스텐트 시술도 한다고 가정할 경우 스텐트 시술만 하는 곳은 66곳이다. 즉, 스텐트 시술을 하는 의료기관 중 45.5%는 우회술이 가능한 의료기관과 MOU를 맺고 협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학회는 "문제는 MOU를 통해 협진을 하려고 해도 우회술 기관이 근처에 없어 아예 불가능한 곳도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심평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경상북도에 있는 의료기관 중 8곳은 스텐트 시술을 시행하고 있지만 우회술을 시행하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서울, 경기 이외의 지역에서 연간 50건 이상의 수술을 실적이 있는 병원은 단 두 곳 뿐이다. 이 지역 기관들은 기존처럼 스텐트 시술을 하기 위해서는 이 중에 90분 이내 우회술이 가능한 곳을 찾아 MOU를 맺어야 한다.

두 학회는 "심평원도 스텐트 시술 실시 기관은 전국에 고루 분포한 반면 우회술 실시 기관은 서울, 경기 등 5대 광역시에 집중돼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며 "그럼에도 전국의 심장 수술팀이 있는 병원의 실태(수술능력, 실적, 지리적 접근성 등)에 대한 파악 없이 '90분 이내 응급 관상동맥 우회술 실시 가능 요양기관'과의 협약을 강제한 것은 준비안된 탁상행정의 증거라고 밖엔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이같은 문제 때문에 서울 등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 불 보듯 뻔하며, 흉부외과 수술전문의가 없는 중소병원들은 설사 스텐트 시술 1등급을 받았더라도 앞으론 시술에 제한을 받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고시 개정안은 철저히 대형병원에게만 유리할 것
이미 많은 중소병원이 심평원 급성심근경색 평가에서 1등급을 받으며 지역의 건강 지킴이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해 왔을 만큼 능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적자에도 불구하고 병원의 질을 높이고 중소 도시의 건강 발전에 기여하고자 스텐트 시술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응급 상황 시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브릿지 병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지역 국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됐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고시대로 '여건이 안되는 중소병원의 중증환자 시술은 제한하고 응급환자 시술만 허용'하면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이 가속됨과 동시에, 중소병원의 심장환자 진료능력 저하가 우려된다.

또 지방에서는 접근 가능한 스텐트 시술 센터의 폐업 및 기능 축소로 지역 거점 병원으로서의 능력이 상실돼 결국에는 국가보건 서비스의 심각한 후퇴가 예상된다.

두 학회는 "선진국에서는 중소병원의 육성을 위해 대형병원이 지원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며 "개정안은 철저히 대형병원에게만 유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예상 부작용 3>
▶순환기내과-흉부외과 협진 시 불협화음 우려
법적 구속력이 없는 MOU를 통해 실시한 협진 중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두 학회는 "협진팀은 심장내과와 흉부외과 전문의 1대 1 동수로 구성해야 하는데 스텐트 시술과 우회술을 놓고 의견이 갈릴 경우 합의를 보기 어렵고 이로 인해 환자 치료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같은 병원 내에서도 원활한 협진이 결코 쉽지 않은데 다른 병원 전문의와 협진은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며 "다른 병원의 흉부외과 전문의가 협진 요청 때 마다 즉각적으로 응할 수 있느냐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와 함께 "만약 흉부외과 전문의가 수술 중이거나 외국 학회 참석 시 환자는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좌주간부 병변 때는 관동맥 조영술 후 즉시 스텐트를 삽입하지 않으면 혈전 형성으로 환자가 급사하는 경우도 있어 흉부외과의 협진을 기다리는 것은 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두 학회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에서 근거로 제시한 유럽의 최신 2014년 가이드라인에서는 다혈관 복잡 병변에 대해 스텐트 시술을 할 때에는 기관별, 지역별 상황에 맞게 흉부외과의들과 협진할 것을 '강제'가 아닌 '권고'를 하고 있으며 지금도 협진이 필요한 환자는 주치의의 판단에 따라 흉부외과와 협진을 시행중이다.

두 학회는 "보건복지부는 여러 가지 복잡 다양한 임상 상황은 무시하고, 협진이 불필요하거나 불가능한 환자까지 의무적인 협진을 강요하고 있다"며 "인위적인 기준에 따라 의료행위를 필수로 적용하면 부작용에 의한 환자위험만 높아질 뿐"이라고 밝혔다.

또 "보건복지부는 다른 병원의 의사가 이동해서 반드시 대면진료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는데, 이는 원격진료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며 보건복지부의 안일한 태도를 지적했다.

개정안, 원점에서 재 논의 해야
두 학회는 "보건복지부가 이번 개정 절차에서 전문가인 학회와의 충분한 협의 없이 진행한 것은 졸속행정"이라며 "환자의 안전과 치료 선택권을 고려해 반드시 원점에서 재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지금 고시한 대로 12월 1일부터 시행될 경우, 전국에서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두 학회는 "이같은 두 학회의 주장을 진료 과 간의 '밥 그릇 싸움'으로 몰아가고 보건복지부는 문제가 있다"며 "순환기내과(심장내과)와 흉부외과 간의 영역 다툼으로 볼 사안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국민 안전'에 대한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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