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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압수수색 논란- 공권력의 한계를 생각하다

병원 압수수색 논란- 공권력의 한계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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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0.15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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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법 권한 가진 자만이 강제수사 집행…남용 경계해야
고한경 변호사(법무법인 나무)

▲ 고한경 변호사(법무법인 나무)
지난 8월 수면마취환자가 있는 수술실까지 들어가 압수수색을 한 경찰에 대한 과잉수사 논란이 거세다.

특히 최근 압수수색을 당한 병원 등이 경찰이 아닌 민간보험회사 직원들이 경찰을 사칭하며 압수수색에 참여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들을 허위공문서 작성,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고발함에 따라, 논란은 형사사건으로까지 확대됐다.

물론 이제 막 검찰의 수사가 시작된 사안이고, 해당 경찰서가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정확한 진상은 검찰의 처분이 있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보도를 살펴보자면, 일단 민간 보험회사 직원이 압수수색 장소에 동석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해당 보험사의 관계자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민간 보험회사 직원이 압수수색에 참여한 자체는 사실일 공산이 크다.

다만, 보험사 관계자는 '직원이 참여인 자격으로 조사에 참여했으므로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보험사의 공식적인 입장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직원이 참여인 자격으로 압수수색에 참여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그 말에는 적잖이 의구심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압수수색은 대물적 강제처분이다. 즉, 대상자에게 조사를 수인할 의무가 있는 강력한 수사방법 이니만큼 자칫 공권력의 남용으로 국민의 권리나 법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따라서 강제수사는 되도록 최소한도로 국한돼야 하며, 반드시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적정절차(due process)와 영장주의를 준수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수사기관은 법관이 발부하는 영장에 의하여만 강제수사가 가능하고, 영장에 따라 강제수사를 하는 경우에도 법률이 정한 절차를 준수해야만 비로소 '적법한 수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형사소송법은 압수‧수색영장의 집행과정에서 수사기관이 준수해야 할 다양한 절차적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예를 들자면, 수사기관은 집행시 압수수색영장을 반드시 제시해야 하고, 피의자와 변호인은 영장 집행에 참여할 수 있고, 수사기관은 긴급을 요하는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피고인 또는 변호인에게 미리 그 집행일시와 장소를 통지해야 한다.

한편, 공무소 등에서 압수‧수색을 할 때는 그 공무소의 책임자, 그리고 피의자가 아닌 타인의 주거나 건조물에서 집행할 때에는 그 주거주나 간수자를 참여하게 해야 한다. 압수를 완료한 후에도 수사기관은 그 목록을 작성하여 소유자 등에게 교부해야 한다.

민간보험사 직원의 영장집행 참여, 법적 권한 없어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압수수색과 같은 강제수사는 적법한 권한을 가진 자에 의해 집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나 공권력을 행사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형사소송법상 수사 단계에서의 압수수색은 검사의 지휘에 의해 사법경찰관리가 집행한다.

사법경찰관리는 우리가 흔히 아는 '경찰'인 일반 사법경찰관리와, 특별한 사항에 대해 제한적으로 사법경찰의 역할을 담당하는, 식약처 공무원 등과 같은 특별사법경찰관리로 나누어진다. 즉, 경찰이 아닌 식약처나 복지부 공무원 등도 법에 규정된 범위 내에서라면 영장집행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 단지 사인에 불과한 민간보험회사의 직원이 영장집행에 참여할 권한은 없다.

특히 만일 해당 민간보험회사가 병원을 고소한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고소인이 영장집행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조항은 찾기 어려운 것이다. 만일 고소인이 영장집행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면, 부디 필자도 그 근거를 알고 싶다. 고소 대리를 하는 변호사 입장에서 압수수색과정에 참석하여 그 김에 피의자의 이런 저런 내부 자료도 수집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을 것인가!

혹시 '별 문제 없다'라는 관계자의 말이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영장 집행 과정에서 물건의 개봉, 타인의 출입금지 등 '기타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의 규정을 근거로 들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기타 '필요한 처분'의 범위에 일반 사인을 강제수사에 참여시킬 권한이 포함되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민간보험사 직원의 참여가 반드시 영장집행에 필요했는지부터 의문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러한 일이 비단 처음은 아닌 것 같다. 지난 2001년 남대문경찰서가 삼성생명이 참여연대를 고소한 명예훼손사건 수사를 위해 참여연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고소 당사자인 삼성 측 직원을 대동해 물의를 빚은 일이 있었다.

참여연대의 강력한 항의가 있자, 경찰은 감찰을 거쳐 당사자인 경찰 및 지휘담당자에게 징계조치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 된 것으로 보도됐다. 필자는 그동안 수많은 고소 대리 업무를 하면서 영장집행에 참여하는 엄청난 행운(!)을 단 한 번도 가져본 일이 없는데, 다시금 아쉬워지는(?) 대목이다.

적법하고 온당한 공무는 사회 전체 이익 위한 것

이 사건이 정말 적법한 근거 없이 고소인 혹은 고발인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강제수사에 참여한 것이라면, 이는 절대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압수수색 당시 수사기관이 확보한 자료들은 위법한 영장집행에 따라 수집된 증거로 형사상 증거능력이 문제되며, 언뜻 생각해도 형법상 영업방해, 의료법상 진료방해, 협박성 발언이 있었다면 강요죄, 공무원을 사칭했다면 공무원 자격사칭죄 등 여러 범죄에 해당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환자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이 성립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형사처벌이나 행정처분의 적정성을 위해 일정한 경우, 강제수사나 강력한 행정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때로 강력한 권한이 남용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늘 그 한계를 고민해야 한다.

공권력을 집행하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공권력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공권력의 일탈과 남용이다. 국민건강보험법이 현지조사권을 거부한 때 형사처벌을 규정하는 것이나, 공무집행방해죄가 일반 폭행‧협박보다 엄하게 처벌되는 이유는, 적법하고 온당한 '공무'는 사회 전체적 이익을 위해 보호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번 사태를 지켜 볼 일이다. 앞으로 고소 대리를 하는 변호사도 압수수색 영장집행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선례가 될 지, 혹은 권한이 없는 사인이 강제 수사권을 행사한 경우로 인정돼 그러한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선례가 될지, 변호사로서는 전자도 크게 나쁠 것 같지는 않으나, 한 사람의 법률가로서는 후자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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