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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또 수술…이런 해외 의료봉사 보셨나요?
수술, 또 수술…이런 해외 의료봉사 보셨나요?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4.10.1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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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경희대병원 '희망사회만들기' 중국 연변조선족자치구 동행취재기

해마다 수많은 의료인들이 생업을 잠시 중단하고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국내보다 의료여건이 취약한 곳에서 의술을 베풀기 위함이다. 기간과 장소가 한정된 해외 의료봉사의 특성상 셀 수 없는 진료와 처치가 짧은 시간에 이뤄진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3일간 800여명의 환자를 보거나, 5일간 2000여명을 진료하는 일은 예사다.
올해로 4년째,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찾은 강동경희대학교병원 희망사회만들기 봉사단은 '조금 특별한' 의료봉사를 시도했다. 약 처방이 주를 이루는 외래 대신 철저한 수술 중심의 일정으로 3박4일 동안 총 60건의 수술과 시술을 소화했다. 본지 기자의 동행기를 소개한다.

"수술부위 고정이 잘돼 있네. 잘 붙으면 문제없을 테니 경과를 보면 될 겁니다. 너무 딛고 다니는 건 좋지 않아요."

9월 20일 점심을 넘긴 무렵. 중국 연변제2인민병원 진료실에서 유명철 경희의대 석좌교수(전 경희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의 말을 들은 환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인공관절 분야의 대가로 손꼽히는 유 석좌교수는 환자가 가져온 다각도의 영상촬영 필름을 비춰보며 수술이 잘됐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어긋나면 재수술을 받아야 하니 계속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 정광춘 환자를 진료하는 유명철 석좌교수. 한국에서 사고를 당한 뒤 롯데재단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고 돌아온 정씨는 "기회가 되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의협신문 이은빈

왜소한 체격의 이 남성환자는 조선족 정광춘씨(41). 돈을 벌기 위해 4년 전 한국에 온 그는 지난해 공사장에서 당한 추락사고로 요추 압박골절 등 전신상을 입었다.

문제는 사고 이후였다. 산업재해 보험금을 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에 급여신청을 한 정씨는 사업주가 건설면허가 없는 개인사업장이어서 보험 적용이 안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가족 품에 돌아가기는커녕 당장의 치료비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롯데복지재단이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외국인 인권보호단체의 소개로 정씨의 사연을 접한 재단은 치료비를 지원했고, 한국의 척추관절 전문병원에서 무사히 수술을 받아 연변으로 돌아왔다.

이날 수술부위를 촉진하는 등 세밀히 상태를 확인한 유 석좌교수는 연변제2인민병원 골과(정형외과) 김순용 교수에게 추적관찰을 부탁하며 진료를 마무리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도움 받았으니 더 잘살게요." 기회가 되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며 진료실을 나서는 정씨의 발걸음은 가벼워보였다.

▲ 중국 연변제2인민병원 전경. 한국에서 온 의료봉사단을 환영하기 위해 병원 건물 외관을 비롯한 곳곳에 청색의 환영 플래카드가 걸렸다.

진찰 대신 '수술' 집중 60건 소화…외래는 짬짬이
한중 수교 이전인 20여년 전부터 중국과 교류해온 유명철 석좌교수는 자타공인 '민간 외교사절단'으로 불린다. 중국 각지를 두루 돌아다니며 의료기술을 전파해온 그가 4년 전부터 매년 연변을 방문하는 이유는 다수의 조선족이 거주하는 '동포의 땅'이면서도, 아직까지 다른 지역에 비해 의료 인프라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유 석좌교수는 "현지 병원과 교류를 통해 아픈 사람을 고치는 사업이야말로 숭고하고, 어디 내놔도 떳떳한 사업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어려운 환자를 치료하는 일은 국경이 없다"는 평소 신념을 밝혔다.

그를 주축으로 정형외과·소화기내과 전문의와 간호사 등 총15명으로 구성된 희망사회만들기 봉사단은 지난 9월 18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된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연변제2인민병원 의료봉사에서 '수술'을 테마로 부지런히 움직였다.

앞서 언급한 정씨를 비롯해 현지인에 대한 외래와 회진은 그야말로 짬짬이, 빈틈없이 이뤄졌다.

18일 점심께 현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채비를 갖춰 수술실로 직행한 의료진은 이날 하루에만 고관절수술 한 건과 십자인대 재건술 등 슬관절수술 4건, 척추수술 1건과 대장내시경 6건 등 12건의 수술과 시술을 시행했다.

절정은 둘째 날이었다. 전날 저녁 환영회에서 잠시나마 여독을 풀고 숨을 고를 수 있었던 이들 의료진은 첫날의 두 배가 훌쩍 넘는 수술과 시술을 소화해냈다. 고관절수술 4건, 슬관절수술(TKA) 3건, 척추수술·시술 11건과 내시경 14건 등 32건의 수술과 시술이 이뤄졌다.

▲ 수술 중인 류권의 연세나무병원장. 봉사단은 철저한 수술 중심의 일정으로 3박4일 동안 총 60건의 수술과 시술을 소화했다.
수개월 전부터 잡혀 있던 강연 일정으로 하루 늦게 도착한 김강일 강동경희대병원 관절센터장은 스승인 유명철 석좌교수의 부탁으로 중요한 행사일정을 제쳐두고 후발대로 합류했다.

연변제2인민병원의 객좌교수를 맡고 있는 그는 5건의 무릎 인공관절수술을 집도하면서 틈틈이 현지 의료진에게 적절한 치료지침을 알려주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18도를 유지해야 하는 수술실 온도가 22도를 넘기거나, 소독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등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취약한 의료환경이 차츰 나아지기 위해서는 인식 개선이 우선이라는 생각에서다.

김 센터장은 "수술만 하고 떠나면 아기를 낳고 내버려두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수술이 잘 끝난 이후에도 좋은 결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의사들의 희생과 봉사가 필요한데, 아직 이곳은 그런 마인드가 부족하다. 어떤 수술환자는 회진하면서 보니 붕대가 반쯤 풀어져 있어 깜짝 놀라 다시 소독해줬다"고 전했다.

김 센터장은 양쪽 무릎수술이 예정돼 있던 환자의 상태를 본 뒤 의학적 판단 하에 한쪽만 수술해 적정진료의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한쪽 상태가 좋지 않은데 하는 김에 반대편도 하겠다는 입장이었는데, 잘 설명하고 수술하니 회진돌 때 고마움을 표시하더라"며 "중국 의사들에게도 인공관절수술을 해야 될 정도는 이 정도라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첫 날 환영식에서 유명철 석좌교수(가운데)를 비롯한 희망사회만들기 봉사단과 현지 의료진이 단체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 의료진에 배운 게 많습니다" 쏟아지는 찬사
셋째 날 16건을 포함해 3박 4일의 길지 않은 일정 동안 고관절수술 7건과 슬관절 수술 10건, 척추수술 5건과 시술 11건, 대장내시경 12건과 위장내시경 15건 등 총 60건의 수술과 시술이 성공적으로 시행됐다.
 

연변에서 치료가 힘들었던 고난이도 및 중증환자를 대상으로 연변제2인민병원과의 수 차례의 사전작업을 거쳐 이뤄진, 이례적 시도이자 값진 성과다.

유명철 석좌교수는 "외래진료를 중심으로 하다 보니 깊이 있는 치료가 어려워 수술에 초점을 맞췄다"며 "환자를 미리 선별하고 일정을 맞추는 부분이 힘들었지만 환자와 병원 입장에서는 더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석좌교수와 20여년 교류하면서 봉사의 물꼬를 튼 김순용 연변제2인민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배운 게 많다. 외래는 간단한 진찰로 감기 같은 경질환을 주로 다루지만 수술은 10년, 20년 이후까지를 책임지는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한국 유수 대학병원과 전문병원에서 온 의료진의 활약에 현지 관계자들의 감사 인사가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김영환 연변제2인민병원장은 "한국에서 의료진이 온다고 하면 환자들이 좋아한다. 과거 경희의료원으로부터 수술 혜택을 받은 연변 저소득자가 일터에 복귀하고, 생활이 안정돼 감사하다는 편지를 받고 큰 보람을 느꼈다"면서 "이런 왕래가 많을수록 혜택은 환자에게 돌아간다"고 강조했다.

김 병원장은 이어 "수술이 수술실에서 다 되는 게 아니다. 집에 가서 쾌유할 때까지 재활이 중요한데, 한국의 우수한 시스템을 직원들에게 교육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덧붙였다.

천해란 연변조선족자치주 부주장은 "지난 3년간 '희망사회만들기' 의료봉사단과의 성공적인 합작과 교류로 500여명의 환자들이 건강과 희망을 찾게 됐다"며 "앞으로도 폭넓은 학술교류와 협력을 밑거름으로 공동발전과 번영이 앞당겨 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연변조선족자치주 의료봉사단에 참여한 봉사자는 다음과 같다.

△유명철 경희의대 석좌교수(전 경희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김강일 경희의대 교수(강동경희대병원 관절센터장) △김덕현 전임의(강동경희대병원 관절센터) △서민철 전공의(강동경희대병원 정형외과) △윤경호 경희의대 교수(경희의료원 정형외과) △탁대현 전임의(경희의료원 정형외과) △정명화 전임의(경희의료원 소화기내과) △박경우 광혜척추병원장 △류권의 연세나무병원장 △고성민 연세나무병원 수술실장 △박원숙 경희대 대학원 교수 △윤로사 강동경희대병원 간호팀장 △이정욱 롯데재단 총괄상무이사 △허우성 롯데복지재단 과장 △이은빈 의협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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