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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베체트병에 매달리느냐고 묻는다면?

왜 베체트병에 매달리느냐고 묻는다면?

  • 최승원 기자 choisw@doctorsnews.co.kr
  • 승인 2014.10.0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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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동식 세계베체트병학회 부회장(연세의대 교수)

방동식 세계베체트병학회 부회장 겸 연세의대 교수
한국 베체트병 연구역사는 1976년 만난 두 의사의 인연에서 시작됐다. 재독의사인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은 막 귀국해 연세의대 교수로 부임한 후 당시 지원 '기피과'였던 피부과 전공의를 선발해야 했다.

교실에서는 지원자 한 명이 아쉬웠지만 이 총장은 "좋은 자질을 갖춘 전공의가 아니라면 차라리 미달을 불사하겠다"는 원칙을 못 박은 터였다.

그런 이 총장의 눈에 "미달이 우려돼 마지못해 뽑을 거면 안뽑으셔도 된다"고 당돌하게 말하던 방동식 연세의대 교수가 눈에 들어왔다. 기피과목인 피부과, 피부과에서도 희귀질환이자 발병원인도 잘알려지지 않은 베체트병을 연구해야 하는 연구자의 필수덕목이랄 수 있는 근성이 느껴졌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군대에 간 방 교수를 3년이나 기다린 끝에 이 총장은 손을 내밀었다. 방 교수는 이 총장이 자신을 3년이나 기다린 것에 놀랐다.

자신을 믿고 3년이나 기다린 믿음 때문이었는지 내재된 근성 때문이었는지 방 교수는 이 총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방 교수는 지난 9월 열린 세계베체트병학회에서 베체트병 연구에 세계적인 업적을 기록한 의학자에게 수여하는 '훌루시 베체트상'을 받았다. 세계베체트병학회 부회장으로도 선출됐다. 1975년 피부과를 전공한 이후 45년을 베체트병 연구에만 전념한 결과였다.

방 교수의 연구이력은 곧 한국 베체트병 연구역사다. 이 총장과 방 교수 군단은 최근 10년간(1983~2012년) 베체트병 관련 논문을 256편이나 발표하면서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논문발표 건수를 기록했다.

베체트 박사의 모국인 터키와 일본, 미국이 한국 앞에 있을 뿐이다. 세브란스병원에 30년 동안 등록된 환자 데이터를 근거로 분석결과를 2013년 발표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베체트 환자진료 관련 30년 데이터를 분석한 경우는 드문 케이스다.

30년치 데이터를 통해 한국 베체트병 환자의 패턴도 확인했다. 보통 20~30대 발병하던 호발 연령대가 30~40대로 늦춰지고 적극적인 치료시도에 따라 실명률 등이 크게 줄었다. 위장관 천공과 같은 증상이 뇌신경 계통 증상으로 옮겨간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무엇보다 여성 환자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다는 점이 한국 베체트병의 특징으로 확인된 것은 의미있는 성과다. 여성과 남성 환자 비율은 2대1로 베체트병 발생률이 높은 터키·중동·일본 등의 국가와는 차별화된 패턴을 보였다.

관련 연구논문은 세계적인 학술지 <British journal of Dermatology> 2013년 9월판에 게재됐다. 방 교수는 260편의 베체트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그중 141편은 SCI와 SCIE 등재저널에 실릴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7권의 베체트병 관련 책도 출간했다.

베체트병 진료시스템 역시 두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됐다. 이 총장과 방 교수는 1983년 안과와 이비인후과 동료들과 세브란스병원에 베체트병 클리닉을 처음으로 개설했다.

개설 당시 보고된 환자가 50명에 불과했지만 이 총장은 가까운 일본의 경우 실명 원인 가운데 베체트병으로 인한 실명이 가장 많은 것을 고려하면 숨어 있는 환자가 많을 것으로 예상했고 이 예상은 적중했다. 1983년 한 명으로 시작한 등록환자가 30년만에 1만4000명까지 늘었다.

발병원인도 확실하지 않은 희귀난치병 연구에 전념할 생각을 왜 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방 교수는 말했다. "환자가 거기 있고 의사를 필요로 하니깐."

방 교수를 베체트병 연구로 이끈 스승 이성낙 총장은 9월 열린 세계베체트병학회에서 '평생회원'으로 선정됐다.

훌루시 베체트상을 받았다.

평생 베체트병 연구에 매진했던 부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기쁘다. 베체트병을 연구하는 동료 연구자에게 좋은 자극이 될 것 같다. 이 총장 이후 한국 의사로서는 두 번째 수상이다. 한국베체트병학회는 이 총장께서 2000년 국제학회 서울 개최를 계기로 설립해 열심히 활동했다. 개인 뿐 아니라 한국 베체트연구자들의 성과가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부회장 선출의 의미는?

1985년 영국 학술대회부터 처음 참가해 2000년 서울대회 유치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을 했다. 2004년부터 2012년 상임이사와 사무총장 역할도 했다. 일반적으로 국제학회 사무총장의 역할은 각국 의사들의 의견을 코디네이터하는 것으로 상당히 중요하다. 베체트병은 주로 실크로드에 걸쳐진 국가들에서 많이 발병하는데 종교적으로나 민족적으로 분쟁 지역이다 보니 국가분쟁이 의사 간에도 옮겨 붙기도 한다.

그럴 때 한국이나 일본 의사들이 조율에 나선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국가 연구자나 젊은 의학자들을 위해 장학금을 만들고 관련 문헌들도 보내 준다. 이번 학회 회장은 일본이 맡았는데 부회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오랜기간 학회에서 활동한 노하우를 빌리고자 하는 제안이다.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사실 베체트박사의 모국 터키가 학회를 이끌어야 하지만 베체트병에 관련해서는 한국 연구자들의 역할이 컸다. 전반적으로 베체트학회에서 한국 의사들에 대한 기대와 호감은 높은 편이다.

베체트병 최신 지견이나 치료제 개발현황은?

기존 면역조절약은 여전히 쓰인다. 최근 들어 바이오 신약들을 활발히 투여하는 분위기다. 병인이 밝혀지면서 신약 개발시도도 활발하다. 실명이나 장출혈 등은 수술적 처치가 주가 되고 가벼운 증상은 기존 약으로 끌고 간다.

다만 늘 그렇듯 효과가 있는 일부 바이오신약들이 급여가 안된다. 베체트병은 전신 증상이 심한 질병이다. 발병패턴이나 증상 등을 고려해 급여가 하루빨리 됐으면 한다. 일본이 베체트병 환자의 약값을 전액 지원하는 것과 급여조차 하지 않는 한국의 상황은 극명히 대비된다.

세계적으로 통용할 수 있는 진단마커를 개발해야 하는 것은 과제다. 각국이 각자의 임상진단기준을 만들어 환자를 찾아내고 있어 진료단계에서 문제될 것은 없지만 국제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진단마커를 표준화해야 한다.

희귀질환에 매달리는 이유가 있다면?

환자 수보다 연구나 진료하는 의사가 없다보니 환자들이 쏠리고 결과적으로 계속 그 질환만 보게 된다. 하루에만 70명이 넘는 베체트병 환자를 보는데 그러다보니 케이스도 많고 전문가가 된다. 처음 클리닉을 개설했을 때는 치료 가이드라인도 없었다.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에서 항암제나 면역억제제도 썼지만 어떤 환자들은 항암제나 면역억제제를 쓰지 않아도 증상이 완화되는 경우도 많았다. 나만의 노하우가 생기고 그에 따른 치료에 환자의 개선효과가 좋아지니 왜 그럴까 더 연구하고 싶은 마음에 빠져들었다. 희귀질환을 보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찾아오는 환자를 보다보니 노하우가 생겼고 노하우가 생겼더니 전문가가 됐더라.

젊은 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몇몇 인기과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소외된 환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에 공감하고 의사로서 고통을 줄여주고 싶은 마음을 느꼈으면 한다. 누군가는 해야한다. 질병극복이란 본질적인 과제에 도전하는 것도 의사로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베체트병을 조기에 진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거보다 베체트병이 피부과 의사들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피부과 의사가 책임감을 느끼고 더 일찍 베체트병을 진단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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