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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지금은 여성시대

청진기 지금은 여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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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9.2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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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식(한림의대 교수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 엄중식(한림의대 교수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올 해 취업 시장에서 여풍이 점점 강해져, 20대 남성이 20대 여성에게 완패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다른 보도에서는 통계의 착시 현상으로 여전히 고학력에서 남성의 취업률이 높고 임금이 더 높다는 반론을 제기했으나, 여성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여성의 우위는 사회 곳곳에서도 나타나는데 이미 사법연수원 절반 이상이 여성이고 수석 수료자도 여성이라고 한다. 정계에서도 이미 여성 대통령이 선출됐고 국회 원내대표로도 여성이 활약하고 있지 않는가.

과거에 비해 교육의 기회가 성별 차이 없이 확대되고 남아선호와 같은 고루한 사회적 인식이 사라지면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지고 비서직과 같은 조력자 수준의 직무가 아닌 주도적이며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군이 창출되면서 생겨난 당연한 결과인 것 같다.

병원의 경우도 그렇다. 인력구조를 보면 대부분 간호사 인력이 다른 직군에 비해 많다 보니 전통적으로 여성이 수적 우세를 보이기는 하지만 진료시스템이 의사 위주로 운영되고 과거에는 남성 의사가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여성이 병원의 의사결정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심지어는 일부 임상과에서 전공의 선발이나 교원 임용에서 여성을 공공연하게 배제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필자가 의대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같은 학년에 여학생은 1/4이 채 안되었지만 요즘은 절반에 가깝거나 절반이 넘는 경우도 있으며, 과대표를 여학생이 맡아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는 세상이다.

병원에서도 여성 전공의들이 과거의 틀을 벗어나 남성 위주의 의국으로 용감하게 들어가 열심히 수련받는가 하면 내과의 경우 전체 전공의의 절반 이상이 여성 전공의로 구성되고 있다. 의국장 역할도 여성 전공의가 똑 부러지게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더불어, 매우 주관적이지만 과거와 달리 여성 전공의들이 체력적인 면에서도 남성 전공의보다 그리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고, 정신력은 이미 한참 앞서 가다 보니 환자나 보호자와의 관계도 더 좋은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병원에서 여성 의사들이 남성 의사들을 질적으로 압도하기 시작한 이유를 꼽으라고 하면 여성이 가진 섬세한 관찰력과 교감능력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여성은 확실히 남성에 비해 훨씬 더 세련되며 분명한, 그러면서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대화(소통)가 가능한 것 같다.

어느 연구에서 보니 남성의 대화가 주로 관심 있는 정보를 주고받는 도구라면 여성의 대화는 공감 또는 교감의 도구로 활용된다고 한다.

필자는 언젠가 같은 남성들간의 저급한 소통 수준에 대실망한 후 SNS에 글을 남긴 바 있는데 '남성은 25세가 넘어야 강아지 수준을 벗어나 대화가 가능하기 시작하고 40세가 넘어야 인간적이며 정서적인 교감이 가능해지며, 이후 끊임없는 성찰과 수련의 노력이 없으면 다시 강아지 수준으로 돌아가 집을 지키는 능력만 남게 되어 아무데서나 먹고 자고 싸게 된다'는 매우 자조적인 글이었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데 있어 우수한 소통 능력만큼 중요한 요소는 없는 것 같다. 실제로 병원에서 의사들에게 제기되는 민원 또는 고객 불만의 대부분은 소통의 부재에서 기인하거나 소통을 할 기회를 갖기 어렵거나 제대로 소통이 안 된다는, 거의 대다수가 '소통' 자체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전공의들이나 전문의들조차도 환자나 보호자에게 짧은 시간 동안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하겠다거나 환자나 보호자가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불만을 호소한다는 것이다.

통계적 검증을 하지는 않았으나 이런 소통의 문제는 젊은 남성 의사에서 더 흔하고 심한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 젊은 의사들이 겪는 소통의 부재 또는 불완전함의 이유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최근 의과대학에 입학이 가능하려면 이과계에서 손꼽히는 성적을 가진 학생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며, 의과대학 입학을 위해서는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경제적 곤란을 겪는 의과대학생을 위해 장학금을 수여하는 모 복지재단의 경우 수년째 대상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아쉬울 것 없이 자라며 중고등학교 시기에 최상위권의 성적을 거둔, 칭찬과 자랑의 대상으로 자란 '엄친아'에게서 다른 사람(환자)들을 배려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며 진심으로 소통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또 성적이 우수하다는 이유만으로 본인의 기호나 희망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의과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르치는 것은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의료 현장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어려움을 고려한다면 의과대학의 수업이나 전공의 수련 프로그램이 획기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본다. 환자에게서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어내지 못하고, 진료 과정에 대한 이해와 동의를 구하지 못한다면 최신 장비나 시설을 갖춘 시설에서 방대한 의과학 지식을 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젊은 의사들에게 평생 한 번 보게 되면 다행인 교과서 구석의 희귀한 질환을 가르치느라 시간을 허비하게 하지 말고, 실제로 좋은 임상적 진단을 내리는데 꼭 필요한 소통의 기술을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 가르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라고 본다.

그래야 환자와 진정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의사, 요새 말로 '통(通)하는 의사'가 나올 수 있다. 물론 지금 열심히 의료계에서 일하는 동년배의 의사들에게도 묻고는 싶다.

'의사들이여, 우리 진정 통(通)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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