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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직접 조제규정' 재검토 필요하다

'의사의 직접 조제규정' 재검토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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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9.1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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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두륜 변호사(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변호사(법무법인 세승)
약사법에 따르면, 약사 및 한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조제할 수 없으며(제23조 제1항), 이를 위반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제97조). 다만 입원환자나 주사제 등과 같이 예외적인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 의사가 의약품을 조제할 수 있는데, 이때는 의사가 직접 조제해야 한다(제23조 제4항).

여기서 '조제'란 일정한 처방에 따라서 두 가지 이상의 의약품을 배합하거나 한 가지 의약품을 그대로 일정한 분량으로 나누어서 특정한 용법에 따라 특정인의 특정된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약제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제2조 제11호).

그에 따르면, 약병에서 약을 꺼내어 약봉지에 담는 행위, 수액이나 생리식염수에다가 항생제나 마취제 등을 혼합하는 행위, 시럽제를 원액통에서 덜어 작은 병에 나누는 행위까지도 모두 '조제'에 해당한다. 이러한 조제행위의 상당 부분은 병원의 조제실이 아닌 병동의 간호사실이나 입원실, 처치실 등에서 간호사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다. 거의 모든 병원에서 약사법 위반이 발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이러한 경우에 약사법 위반으로 처벌받는 사례가 극히 드물었고, 약사법 위반 사실이 적발되더라도 벌금형에 그쳤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의료기관이 약사법을 위반하여 의약품 처방 및 조제한 경우, 그와 관련하여 지급된 요양급여비용 또는 의료급여비용은 전부 국민건강보험법이나 의료급여법상의 부당청구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비용은 전부 환수되고 그와 별도로 업무정지처분 또는 5배 이하의 과징금 처분을 받을 수 있다. 환수되는 비용 안에는 의약품 처방료나 조제료뿐만 아니라 해당 약값까지 포함되므로, 약사법 위반으로 인한 부당금액은 다른 부당청구 사례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액이다.

그 뿐만 아니라, 해당 의료기관은 진료비 허위청구로 인한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약사 또는 의사가 직접 조제하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약사 또는 의사가 직접 조제한 것처럼 조제료를 청구하였다면 이론상 사기죄에 해당될 수 있다. 허위청구로 형사처벌을 받으면, 의료법에 따라 자격정지처분이 부과되고 그 자격정지기간 동안에는 의료기관의 업무가 자동으로 정지된다. 사실상 거의 모든 병원이 약사법 위반이라는 폭탄을 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발생했다. 부산에 소재하는 A병원은 약사가 근무하지 아니한 시간에 병동 간호사실에서 간호사가 약을 조제하였다는 이유로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게 되었고, 결국 약사법 위반과 사기죄로 기소되었다. 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 현지조사를 받아 20여억원의 요양급여비용을 환수당했다.

A병원장은 모든 조제행위는 의사의 지시와 감독하에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약사법 위반에 해당되지 아니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우리나라 임상현실에서 입원환자에 대한 대부분의 조제행위는 의사의 지시 하에 간호사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병원장의 주장을 전부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법원은 약사법이 원내조제의 경우에 의사가 직접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의사가 간호사의 조제행위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지휘·감독을 하지 아니하는 한 간호사에 의한 조제보조행위를 의사의 '직접 조제'로 인정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형사와 행정 사건 모두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A병원장은 패소하였다.

임상현실과 법규범이 괴리된 사례가 한둘이 아니지만, 약사법상의 의사 직접 조제 규정은 그 정도가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입원환자에 대한 의약품 조제행위는 의사의 진료행위에 해당되고, 이는 다른 진료행위와 마찬가지로 의사가 직접 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간호사에게 보조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약사는 의료인이 아니기 때문에 진료행위에 관여하거나 이를 보조할 수 없으며, 약국이나 의료기관의 조제실내에서만 의약품을 조제할 수 있을 뿐, 입원실이나 처치실 등에서 의약품을 조제할 수도 없다. 또한, 의약품 조제행위가 다른 진료행위와 달리 반드시 의사가 직접 해야 할 만큼 고도의 기술을 요하거나 특별히 위험한 것도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입원환자의 상태에 대해서 의사는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임상에서는 의사가 의약품 투여를 지시하면, 간호사가 그 지시에 따라 의약품을 조제·투여하고 있다. 의약품 조제 및 투여는 연속된 과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조제행위만 따로 떼어내서 의사가 직접 하거나 병원 조제실에 있는 약사에게 조제를 맡기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원내조제의 경우 의사가 직접 조제를 해야 하고, 그 위반행위에 대해서 형사처벌까지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과연 입법자들이 약사법을 제정할 때, 위와 같은 임상현실이나 그로 인해서 파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서 충분한 검토를 했을까?

만약 제정 당시에 그에 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제라도 검토를 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가 의약분업에 대한 논쟁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매우 중대하고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의료계나 정치권 모두 다루기 어려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상태가 지속된다면 제2, 제3의 A병원 사례가 계속 발생할 수 있다. 만약 약사법 개정이 어렵다면, 의료법상 병원 약사 인력 기준을 약사법에 맞추든지 아니면 의사의 조제행위에 대해서 합당한 진료수가를 지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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