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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프란치스코 교종에게 길을 묻다

청진기 프란치스코 교종에게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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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8.25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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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중식 한림의대 교수(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남기고 간 말씀과 행동이 우리 사회에 다양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믿음이 다르기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종이 더 중요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분을 비판하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우리 스스로도 풀어내지 못하는 문제를 조용히 감싸 안으신 교종의 인간적인 위로와 격려는 큰 위로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고 불리는 권력과 부를 소유한 이들에게 따끔한 지적과 경종을 울려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프란치스코 교종에게 반응한 우리 국민의 모습을 보면 가톨릭 교인들의 열광은 일견 당연했지만, 비종교인들이나 타 종교 신자들의 감동과 호의적 반응은 예상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긴 세월의 청빈한 삶, 사회적 약자들 편에서 쓴 소리를 아끼지 않고 이들을 돕는 언행일치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우리나라를 방문한 후에도 어린이, 장애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등에게 보인 따뜻한 위로와 스킨십은 보는 이의 마음을 감화시켰고 우리 사회가 누구를 보듬어야 하고 위로와 지지를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집단적 성찰을 이끌어냈다.

그럼 우리 의사들은 어떠한가. 의사가 다루는 질병의 역학을 보면 경제사회적 하위계층(Low socioeconomic state)에 속하는 것 자체를 질병의 주요 위험 요인이라고 본다. 오랜 기간 동안 정신적·신체적 스트레스가 누적되면서 발생 빈도가 증가하는 질환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의사(특히 임상 의사)들은 원치 않아도 우리 사회의 약자, 소외계층, 신체나 정신 장애, 과중한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들과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동료 의사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당연히 환자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어려운 환자들이 도처에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최근 대형병원에 입원한 환자 가운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인데, 나이가 고령이고 단기간에 회생할가능성이 높지 않은 환자인 경우에는 환자나 보호자가 치료를 거부하거나 임의로 퇴원을 감행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누가, 무엇이, 왜 이들을 최선의 치료도 받을 수 없게 만들고, 존엄하게 인생을 마무리할 수 조차 없게 만드는가? 보험 재정이 부족하다, 정책 근거가 부족하다, 인력이 부족하다, 시간이 부족하다 등등 이유를 대자면 100개도 넘게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환자가, 보호자가,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들이 보험 재정을 부족하게 만들고 근거와 정책 없이 인력과 시간을 강제로 뺏고 있는 것인가.

우리 사회에서 의사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 진흙탕을 만드는 미꾸라지 같은 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의사들은 개인의 건강과 사회의 안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런 면에서 요즘 일방적으로 어려워지기만 하는 의료 환경에서도 의사의 자긍심을 가지고 진료와 연구에 매진하는 선후배 동료 의사들을 보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하지만 아직 우리 의료계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 어려운 환자들에게 좀 더 따뜻하고 좋은 선생님이 돼주지는 못하고 있다. 이 문제의 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프란치스코 교종을 뵙고 그 해법을 묻고 싶다. '교종님, 우리 의사들은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도 못 받고 욕만 먹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필자의 막연한 상상이겠지만,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의료계는 우리 사회의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장애인, 경제적 빈곤층을 비롯해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 사회적 문제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이들이 마음 편하게 병원을 방문해 친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행복한 마음과 몸을 되찾을 수 있는 병원이 돼야 하고, 실제로 이러한 시스템과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정책을 만들고 재정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모두 한 목소리를 내야만 합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위해 치열하게 투쟁해야 합니다."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우리는 양심에 따라 사랑과 선의를 위해 행동하는 의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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