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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분업화된 대학병원 암 오진 분쟁 가능성 커(1)

기획 분업화된 대학병원 암 오진 분쟁 가능성 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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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8.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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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률 산책 ②
암 오진으로 인한 의료분쟁 (1)

[의료법률 산책]은 의사 출신 제2호 변호사라는 이정표를 세운 김성수 파트너 변호사(법무법인 지평)와 지평 의료팀 변호사들이 돌아가며 쓰는 의료법률 전문칼럼이다.

김성수 변호사는 1985년 서울의대 의학과 2학년 때 민주 개헌을 요구하는 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옥고를 치르면서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1995년 3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서울의대는 1998년 사법연수원(27기)을 마친 김성수 변호사에게 복학을 허용했으며, 2000년 의사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다. 법무법인 지평의 파트너 변호사인 김성수 변호사는 노사관계·지적재산권·보건의료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의료법률 산책]에서는 한의사들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의 법적 문제·암 오진시 의사의 책임·정신과 환자의 강제입원시 주의사항 등 의료행위와 관련된 의사의 법적 책임을 비롯해 제약·바이오산업과 관련된 법적 이슈도 다룰 예정이다.

의료법률 산책 ② 암은 치료가 어려운 질병이다. 과거에는 불치병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래서 소설이나 영화에서 주요 인물들이 젊은 나이에 사망할 때에는 암이 자주 등장한다. 1970년대 제작된 미국의 영화 러브스토리(Love Story)의 여자 주인공 제니퍼가 백혈병을 진단받은 후 사망한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 김성수 변호사·의사(법무법인 지평)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말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아버지'의 주인공 한정수는 췌장암 진단 후 오래 살지 못하고 사망한다. 소설이나 영화 뿐이 아니다. 실제로도 유명인사가 암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례가 드물지 않다.

아이폰 개발로 거의 전설이 되다시피 한 스티브 잡스나 법률가들에게 신화적 선배로 기억되는 조영래 변호사도 암으로 한창 일할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이런 기억 때문일까. 지금도 암진단을 사형선고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의학의 발달로 상당수 암은 조기에 진단되어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5년 이상 생존이 가능하다. 최근 갑상선암의 경우 5년 생존율이 거의 95% 이상이 되어 과잉진단 논란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의학의 발전은 암 역시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그리고 치료를 통한 생존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기 진단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하여 이견이 없다. 이에 따라 조기 진단이 가능했음에도 이를 간과했다가 병기가 상당히 진행된 후에 암 진단을 확인하고 치료가 제대로 되지 못한 경우에 환자나 유족들의 원망이 생기게 된다.

나아가 그와 같은 진단의 지체로 인해서 법적인 책임을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경우에 환자의 암을 의사가 유발한 것은 아니다. 의사가 치료를 시행하는 도중에 유발하는 수술 중 혈관손상이나 투여하는 약제의 부작용과는 책임의 사유나 정도가 다르다.

암 진단의 지체는 손해를 유발한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손해를 막지 못한 책임을 추궁한다. 그래서 대체로 출혈이나 감염, 약제부작용 유발 사례보다는 책임을 인정하는 판례가 드문 편이다. 의사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해도 그 책임의 크기는 통상적 의료과실 사건에 비하여 경하게 보는 편이다.

대체로는 조기에 진단됐다고 해서 암의 완치가 가능했을지에 관해 확신하기 어렵고, 암 자체는 의사의 과실로 발생한 것이 아닌 점 등이 고려된 것이다.

실제 사례를 소개한다. 55세 여자환자가 왼쪽 발목 바깥쪽에 점(nevus)이 생겨서 1㎝ 정도로 점차 커지자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 피부과 외래를 방문했다. 외래 당직의사가 점절제술과 조직검사를 시행한 결과 양성질환인 '멜라닌세포 모반증'으로 진단됐다.

▲ 일러스트=윤세호 기자

6개월 정도 지난 후 수술부위에서 점이 재발했다. 2차로 발생한 점에 대하여는 대학교수가 수술을 시행했으며 역시 멜라닌세포 모반증으로 진단됐다. 그 후 다시 1년이 경과해 동일부위에 점이 세 번째로 발생하면서 출혈까지 생겼다.

의료진은 지혈 치료를 먼저 한 후에 '악성흑색종 의증' 등으로 진단한 후 수술로 절제했다. 6개월 후 네 번째로 점이 다시 생겼다. 의료진은 수술은 다음으로 미루고 조직검사 먼저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환자와 보호자는 당황했다.

6개월 전에도 조직검사를 시행한다고 했는데 또다시 조직검사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 것이다. 의료진 역시 당황했다. 지난 3차 수술이 이뤄진 6개월 전에 조직검사를 실시하면서 병리조직검사 보고서를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다. 그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었다.

진단:악성흑색종, 종양 크기:2.0×0.5cm, 미란(ulceration):없음, 침범깊이:5mm, 침범레벨:클라크분류 5등급(V), 절단경계면 침범:없음, 림프관 및 혈관 침범:없음.

환자 측은 의료진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고 다른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의뢰했다. 서혜부 림프절에 전이 소견이 나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폐와 간 그리고 뼈로 전이됐다. 환자는 항암제 치료를 받다가 악성흑색종 확인 후 1년 3개월만에 사망했다.

환자의 유족들은 의료진이 조직검사의 결과보고서를 제 때에 확인해 환자측에 알리고 조기에 광범위 수술 등 적극적인 치료를 시행하지 못한 점을 문제 삼았다. 의료진이 병리보고서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흘러간 6개월 동안 환자의 암 병기는 2기에서 3기로 진행된 것이다.

그에 따른 치료성적의 차이도 이미 보고되어 있었다. 5년 생존율에 있어서 2기는 70∼80%인 반면 3기는 20∼67%라고 알려져 있다.

법원은 피고가 악성흑색종의 병리보고서 내용 확인 및 고지 그리고 적절한 치료 시행 등을 하지 못한 과실을 인정했다. 1심에서는 의료진(피고)의 책임비율을 20%로 인정했고, 항소심에서는 30%로 인정했다.

이 사건처럼 암은 병기가 낮은 단계에 비해 높은 단계에서는 치료가능성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암 진단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는 조기에 진단을 위한 검사를 실시하고, 결과 확인과 환자에게 알려주는 행위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이런 원칙이 모두 준수되는 것은 아니다. 세부 과목으로 나눠져 있고, 다수의 의사들이 분업적으로 일 하는 대학병원들이 이런 검사결과를 간과할 위험이 높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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