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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벌제라는 이름의 덫 "비상구는 없다"
쌍벌제라는 이름의 덫 "비상구는 없다"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4.08.08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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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이트 쌍벌제 이후 판결 경향…입증 못하면 의사 '패'
수수금액 클수록 처분 불이익, 공연·숙박 등 방식 '불문'

#1. 충남에서 내과를 운영하는 A원장. 올해 초 그는 2개월간 면허를 정지하는 행정처분을 통보받고 망연자실했다. 과거 모 제약사로부터 4차례에 걸쳐 현금으로 받은 200만원이 문제였다. 원장은 300만원 이상을 정지처분 기준으로 내세웠던 보건복지부 발표를 인용하며 억울함을 주장했다.

#2. D제약사 영업본부장은 최근 검찰 압수수색으로 USB 출력물을 빼앗겼다. USB에는 평소 관리해온 수백 명의 개원의에게 제공한 음악회 관람 티켓과 강원도와 용인 인근 숙박 시설비를 대신 내준 명단이 들어있었다.

최근 삼일제약 리베이트 사태로 보건복지부가 의사들에게 소명 제출을 요구해 논란이 된 가운데, 다양한 형태의 리베이트가 수사망에 올라 법적공방까지 이어지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2010년 11월 의료법 개정으로 제약회사 등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의료인까지 처벌하기로 하는 이른바 '리베이트 쌍벌제'가 시행되면서 수사당국이 바짝 고삐를 쥐는 모양새다.

사법부는 의약계의 리베이트 관행에 대해 "건전한 유통체계 및 판매질서를 왜곡시키고, 이로 인한 비용을 일반국민에게 전가시킨다는 점에서 비난가능성이 크다"는 일관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본지가 쌍벌제 이후 최근 판례를 분석한 결과, 리베이트 혐의가 인정된 의사의 경우 수수금액이나 형태, 급여 적용 여부와 상관없이 형사상 불이익은 물론 행정처분이 내려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 법에서 의약품 판매 촉진을 목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제공받았다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사 벌금액→리베이트 수수액 행정처분 기준 변경

첫 번째 사례에서 A원장은 자신이 수수한 금액이 복지부가 발표한 면허정지 처분기준을 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

A원장이 제출한 증거자료는 2011년 8월 복지부가 배포한 보도자료. 당시 복지부는 리베이트 수수액을 기준으로 행정처분을 내리겠다는 방침을 전하며 300만원 이상일 때 면허자격을 정지하는 처분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변화는 이전까지 관련 형사사건에서 선고된 벌금형 액수를 행정처분 기준으로 삼던 관행에서 진일보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통상적으로 형사사건이 종료되면 검찰이 수사기록을 행정청에 넘겨주는데, 복지부에서 별도의 사실관계 확인 없이 기록만으로 처분을 통보해온 것은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지적이다.

신태섭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형사와 행정은 엄연히 별개 사건"이라면서 "복지부가 수사기록을 받으면 자체적으로 검토하고 조사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는데, 수사기관 통보에 따라 일률적으로 처분을 내리는 것은 문제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경제적 이익'은 무엇이든 수사·처분 대상 가능

그렇다면 수수한 금액이 복지부 제시 기준에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던 A원장은 왜 패소한 것일까?

법원은 300만원 이상을 수수한 의사들에 한해 정지 처분을 내리겠다는 복지부 발표는 "일응의 방침을 세운 것일뿐"이라며 A원장의 주장을 배척했다. 쌍벌제 시행 이후 금품수수 행위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죄질이 좋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두 번째 사례에서 해당 제약사와 영업본부장은 약사법 위반으로 기소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사례에서도 재판부는 "쌍벌제 시행 중 탈법적 방법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에 대해 죄질이 가볍지 않다"며 선고 이유를 밝혔다.

현금이나 상품권 대신 음악회 티켓과 숙박 프로그램, 동아제약 사건으로 수면 위에 떠오른 동영상 강의료도 의사에게 '경제적 이익'이 됐다면 언제든 집중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단 얘기다.

이에 대해 고한경 변호사(법률사무소 찬란한 아침)는 "제약사에서 리베이트 방식이 교묘해진 건 공정거래위 적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지만, 쌍벌제 이후 '경제적 이유'라고 분명히 법에 명시됨으로써 판례를 통해 표면화되고 있는 과정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고 변호사는 "이전까지는 리베이트로 의사를 형사처벌하는 의사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쌍벌제 시행으로 경제가치로 환산할 수 있는 이익은 다 리베이트로 보겠다는 게 수사당국의 의지"라며 "사실상 법망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급여-비급여 불문…"사람 아닌 기관 처벌 불가" 맹점

적발 항목은 건강보험 급여적용 여부를 불문한다. 

청주지방법원은 지난달 지역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B원장이 "비급여 항목에도 리베이트를 금지하는 것은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 확보와 의료비 절감이라는 목적에 맞지 않는다"며 신청한 위헌심판제청을 기각했다.

급여대상에서 제외된 비용과 관련된 의료기기라고 해서 의료비 절감이나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투명성을 제고할 필요성이 없다거나 적다고 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B원장은 환부유착방지제 M상품을 납품 받는 대가로 20여회에 걸쳐 3억 5000여만원을 받아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제공받았더라도, 사람이 아닌 기관이 받은 것이라면 결과는 달라진다. ‘의료기관’이 경제적 이익을 받은 경우 처벌할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3부는 지난 5월 대학병원에 의료기기 판매가 일부를 돌려주는 방식으로 수십억원대의 리베이트를 지급한 의료기기 업체와 연루된 병원 관계자들에 "현행법상 의료기관 개설자나 종사자가 리베이트를 받는 경우만을 처벌하고 있다"며 전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수사 성립 근거 제약사로부터…자백범위 줄여야"

수수금액이 올라갈수록 처벌 수위도 높아진다. 대구지방법원은 지난해 인공관절 개수와 척추 관련 의료기기 매출액에 비례해 5억7000여만원의 현금을 챙긴 모 의료재단 병원장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리베이트 사건으로 집행유예 없이 실형이 선고된 것은 이례적이다. 신태섭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리베이트 수수금액이 1000만원을 넘어가면 형량이 무거워진다"며 "수수 규모가 클 경우 실형이 선고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행정처분을 통보 받았다가, 무죄를 입증해 승소한 경우도 있다.

부산 소재 대학병원 신경외과 교수인 C씨는 모 제약사에서 2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면허정지 처분을 통보 받았다가, 청탁 받았다는 의약품과 실제 처방량이 일치하지 않은 사실을 밝혀내 처분을 면했다.

수사기관이 제약사에서 확보한 명단 등을 통해 대상을 정하는 것을 고려할 때, 일명 '배달사고' 등으로 받은 사실이 없으면 증거를 확보해 법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이다.

오승준 변호사(법무법인 원일)는 "리베이트 수사가 성립되는 근거는 제약사의 자백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수사기관의 통보를 받고 갔다면 섣불리 인정하지 말고 주변 전문가나 수사를 받아본 의사에게 조언을 구하라"며 "자백범위를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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