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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너도 겪어보면 알게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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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8.02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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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태훈 전공의(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이비인후과·R3)

▲ 공태훈 전공의(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이비인후과·R3)

"나 요즘 목이 잘 잠기는데 목 좀 봐줄래?"

1년 전 친한 동료 전공의로부터 진료 요청을 받았다. 편한시 간에 언제든지 오라는 말을 해놓고 진찰을 해줬다. 아니나다를까 성대에 결절이 작게 자라 있었다. 여느 환자들에게 하듯이 우선 보존적 치료를 하자고 하고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음성을 아껴쓰라는 말을 해줬지만 그가 그럴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음성 질환으로 내원하는 여느 환자와 마찬가지로 그는 걱정을 많이 했다. 말을 계속 해야 하는 직업인데 어떻게 말을 안하지. 그냥 수술하는게 더 낫지 않나.

그럴 때 마다 나는 어차피 걱정을 하던 안하던 나으려면 말 많이 하지 않아야 하고 발성을 할 때 성대에 무리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답은 정해져 있기에 그대로 해야할 일만을 생각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는 의사였지만 내 앞에서는 환자로 앉아 있었고 그는 분명히 '환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지난 겨울의 내가 떠올랐다. 지난 겨울에 나는 한창 눈 덮힌 하얀 겨울 산의 정취에 심취해 주말마다 인근의 악산(惡山)을 찾아 왕복 5시간씩 등산을 하곤 했는데 어느날 산에 다녀온뒤 걸을 때 마다 무릎이 아파 힘들었다. 괜찮아 지겠지 했지만 2주가 넘도록 낫지 않자 정형외과 선생님께 진료를 받았고 초음파 결과 인대가 부분 파열됐다는 소견을 들을 수 있었다.

수술 할 정도는 아니고 무릎에 무리가지 않도록 잘 쉬면 증상은 사라지고 몇 개월 지나면 회복 된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나는 쉽사리 초음파실을 나오지 못했다. 등산 이제 가면 안되나요. 저는 스노우보드를 좋아하는데 그럼 남은 겨울동안 스노우보드도 못타나요. 타면 안되나요. 무리 안하고 타면 괜찮지 않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마찬가지였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답은 정해져 있기에 그대로 무릎에 무리주지 않을 일만을 생각하면 되는 것인데 무리하지 않는 가벼운 등산은 다녀도 괜찮지 않을지. 낮은 슬로프에서 타는 스노우보드는 즐겨도 되지 않을지. 만약 그랬다가 더 심해지거나 정말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떡할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만나는 환자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가 진료실 밖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든 어떤 사람이든 내 앞에서는 환자로 앉아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같이 공감하기 힘들정도의 걱정이나 구체적인 질문은 업무적으로 의사들을 난감하게 하고 그 때문에 숨기지 못한 불편함은 환자들을 서운하게 한다.

내 목에 성대결절이 생겼다 생각하고 내 무릎의 인대가 다쳤다고 생각하면 치료계획만 설명하고 진료를 마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성대결절이 생긴 의사는 어떻게 하면 말을 적게 할 수 있을지. 목소리를 아낄 수 있을지 같이 생각하고 걱정하고 일정수준 이상의 함께 도출 할 시간이 필요하다.

환자가 받은 새로운 몸상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얘기를 들어주고 지지해주는 동반자가 될 시간이 필요하다. 짧은 시간에 진료를 하는 현재의 진료현실이 개탄스럽다. 짧은 시간에 끝내야 하는 진료에 환자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저질 진료를 하고 있는 스스로도 부끄럽다.

아직 전공의 신분으로 일반진료를 맡고 있어 그나마 진료 환자 수에 제약을 덜 받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때 까지 설명해주고 공감해줄 수 있는 신분이지만 전공의를 마치고 어느 위치에 있건 진료환자수에 대한 압박을 받는 진료를 해야 한다면 나 역시 실망스러운 진료를 해야할지도 몰라 안타까움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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