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가는 길이 분주했던 지난 추석 연휴. 본가가 서울인 K원장은 환자 진료를 위해 병원 문을 열었다. 환자의 발길이 뜸해질 오후 무렵 한 남자가 진료실 문을 밀었다.
모 프로 스포츠 구단을 이끄는 단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남자가 밝힌 이름은 김영철. 김 단장은 K원장에게 "선수들의 건강검진 결과를 체육회에 보고해야 한다. 시일이 급한데 검사를 해 줄 수 있냐"고 접근했다.
김 단장은 자신이 경복고를 졸업했으며, K원장과 같은 건물 윗층에 개원하고 있는 방사선과 검진센터 S원장과도 잘 아는 사이라고 밝혔다. 김 단장은 S원장의 형님 얘기까지 꺼내며 친분이 있는 사이임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K원장은 "S원장이 경복고 출신이며, 형님 얘기도 익히 전해들었던 터라 김 단장이라는 사람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더욱이 "서울대병원에도 경복고 출신 동기가 있는데 막역한 사이"라는 김 단장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공교롭게도 K원장의 남편이 서울대병원 스탭으로 근무하고 있던 터였다.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K원장은 남편 명함까지 한 장 건넸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김 단장은 "경미한 접촉사고가 났는데 7만원만 빌려달라. 공휴일이라 은행 문이 닫혀 난감하다"며 손을 내밀었다.
명함이 다 떨어졌다며 전화번호를 적어준 김 단장은 "추석 연휴가 끝나면 계약서를 쓰러 오겠다"고 말한 뒤 K원장이 건넨 현금 7만원을 받아든 채 진료실 문을 나섰다.
물론 연휴가 끝나고 일주일이 넘도록 김 단장은 오지 않았다. 적어준 번호에서는 없는 국번이라는 메시지만 흘러 나왔다.
이와 비슷한 유형의 소액 사기 사건이 최근 경기도 분당의 모 내과와 동대문구 신설동의 모 외과의원 등 세 군데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기범은 소액의 피해금액은 대부분 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교묘히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토요일 오후 개원가를 노리는 소액 사기사건이 정부에 치이고, 제도에 목졸린 개원의들의 가을을 더욱 스산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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