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29 15:21 (금)
청진기 병원은 안전한가?
청진기 병원은 안전한가?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4.06.23 12:30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중식(한림의대 교수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 엄중식(한림의대 교수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병원=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피터 프로노보스트(미국 존스홉킨스의과대학 마취과 교수·환자진료혁신센터장)가 저술한 <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원제: Safe patients, smart hospitals)를 보면 오랫동안 미국 최고의 병원으로 선정되고 있는 존스홉킨스병원에서 환자들이 여러 가지 잠재적 위험에 노출돼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흥미롭게 기술돼 있다.

필자는 몇 년 전 질병관리본부의 컨설턴트로서 유럽의 병원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예외 없이 '환자안전'과 '감염관리'라는 두 개의 축이 병원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구성과 운영의 원칙이자 기준임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병원들은 어느 정도일까? 

1990년대부터 시작된 병원들의 대형화 또는 특화된 전문 병원으로의 진화는 여러 가지 논란을 일으켰지만 과거 공급자 위주의 병원 환경을 일부 개선하는데 성공했다. 또 국내외 병원 인증 평가에 병원들이 참여하며 환자의 권리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향상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감염관리 영역은 병원 경영진 입장에서 보면 비용만 들어가고 생기는 것이 없는 귀찮은 걸림돌 같은 존재이다. 과거 '원내감염(Nosocomial infection)'이라는 용어가 '병원감염(Hospital-acquired infection)'을 거쳐 최근에는 '의료관련감염(Healthcare-assoicated infection)'이라는 용어로 정착한 것을 모르는 분도 아직 많은 형편이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발생한 혈류감염·인공호흡기 관련 폐렴·수술부위감염·요로감염 등의 의료관련감염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발생률이 결코 낮지 않으며 실제로 매일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노령 인구의 증가, 고형암이나 혈액종양환자의 증가, 장기이식이나 면역억제제를 장기간 투여해야 하는 면역저하자의 증가는 의료관련감염에 취약한 환자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병원 환경의 변화를 예고하며 이에 대한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다.

거기다가 의료기술의 발달에 따른 다양한 침습적 조작의 증가와 인공관절과 같은 의료기구의 삽입 증가로 인해 의료관련감염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의료관련감염을 일으키는 원인 병원체는 바이러스·세균·진균 등 모두가 가능하지만 최근에는 광범위 항생제에도 내성을 가진 다제내성균에 의해 의료관련감염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의료관련감염이 발생한 환자에게 적절한 항생제 요법 치료를 어렵게 해 환자의 유병률과 사망률을 높일 뿐만 아니라 환자의 정신적 고통과 신체적 손상을 증가시키며 치료 기간이 장기화됨에 따른 의료비용의 증가로 인한 사회적 부담을 가중시킨다.

또 병원 입장에서는 병상 이용률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의료관련감염으로 인한 분쟁이나 소송에 시달리게 되고 환자를 책임져야 하는 의료진도 심리적 위축과 고통을 겪게 된다.

최근 미국의 경우 의료관련감염 발생률은 약 5~6%이며 이로 인해 매년 적어도 50억 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국내 연구에서도 의료관련감염 발생률은 3.7~15.5%, 의료관련감염 1건당 추가 재원일수는 평균 12일, 병원감염 1건당 최소 65만원에서 최대 636만의 진료비가 더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중 약제비가 51.4~83.2%로 대부분이 항생제 사용으로 인한 비용이었다.

문제가 이렇게 심각함에도 우리나라 병원의 감염관리 인프라는 대형병원에서도 충분히 구축돼 있지 않으며 중소병원의 경우에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의료관련감염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1차적 책임은 당연히 병원에 있다.

그러나 단일보험체계로 수가 결정의 권한이 거의 전적으로 국가에 있는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을 고려하면 감염관리에 필요한 비용과 인력에 대한 책임을 병원에만 전가할 수 없다.

이웃 일본의 경우 감염관리 인프라를 갖추고 감염관리프로그램을 운용하는 병원의 경우 입원환자 1명당 4000엔을 병원에 지급해 감염관리활동을 활성화시키고 있다. 이는 감염관리의 당위성은 물론이고 감염관리를 통한 비용절감 효과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연평균 126만 9595건의 요로 카테터 삽입이 이뤄지는데, 전국병원감염감시체계 결과에 따르면 카테터 관련 요로감염의 평균 감염률 2.01/1000device-days로 카테터 관련 요로감염 발생건수는 최대 3만 5726건으로 추산된다.

이를 치료하는데 추가 진료비용도 연간 약 362억 9000만원이 드는 것으로 추계됐다. 이 연구에 따르면 적극적인 카테터 관련 요로감염의 예방을 위해 약 38억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필요한데 적극적인 예방활동으로 카테터 관련 요로감염을 30% 정도 감소시키는 경우 약 108억원 이상의 추가 치료비용을 절감시킬 수 있다는 산술적 결과가 나온다.

이는 카테터 관련 요로감염 예방을 위한 추가 비용 38억원의 3배를 절감하는 효과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감염관리에 투여된 비용이 실제 의료관련감염으로 발생하는 치료비용을 절감해 비용 편익이 충분하다는 연구가 많이 나온 상태이다.

쓸 것은 쓰고 아낄 것은 아껴야 한다. 환자의 안전을 위해 투자하는 비용을 아까워한다면 병원이나 정부나 도덕성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이므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 국민이 믿고 이용할 수 있는 병원, 환자들이 필요한 치료를 안전하게 받고 건강한 몸으로 돌아갈 수 있는 병원을 만드는데 더 주저할 이유가 없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