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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19 14:31 (금)
故 박승철 선생님을 보내드리며…

故 박승철 선생님을 보내드리며…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4.06.18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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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철 교수는 1965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내과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양대 의대 내과 부교수를 거쳐 고려대의대 내과 과장·대한감염학회장·대한백신학회장을 역임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보훈병원장을 거쳐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에서 근무했다.

2003년 보건복지부 사스대책자문위원장, 2009년 국가신종플루대책위원장 등을 맡아 전 국민의 건강을 지켜왔다.

우리나라 최고의 전염병 연구 권위자이다.

엄 중 식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선생님, 벌써 보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평안하신지요?

보름 전 휴일 늦은 오후 휴대폰으로 들어온 선생님의 부음을 보고 너무나 망연자실했습니다. 이렇게 떠나시다니요. 선생님께서 병석에 누우신 지도 모르고 지낸 시간이 죄스러웠고 면회를 거절하신다는 말만 듣고 한 번 찾아뵙지도 않은 제가 너무도 한심해 용서가 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감염내과 의사로서 살아가게 된 것도 선생님의 칭찬으로 결정됐던 것 같습니다. 전공의 1년차 여름이 지나도록 늘지 않는 실력과 피폐해지는 정신으로 내과 의사가 나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혼란과 갈등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1994년 가을, 감염내과 주치의가 되며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첫 날부터 작은 일에도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 주신 선생님 덕분에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고 제가 정말 일 잘하고 공부 열심히 하는 전공의인 줄 착각했습니다. 그 착각 덕분에 전공의 1년차를 무사히 마쳤고 이후에도 감염내과에서 근무를 할 때마다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넘치는 칭찬과 격려를 주셨기에 무사히 전공의 과정을 마쳤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칭찬과 용기를 주신 후학이 비단 저 뿐이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내리신 뿌리에서 자란 모든 제자들이 선생님의 칭찬과 격려로 줄기를 세우고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일찍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신 후 기생충학 교실을 거쳐 내과 전문의로서 교수의 길을 걸으셨으며 특히 우리나라 감염내과의 기초를 닦으시고 발전에 헌신하셨습니다. 1990년대 후반 아무도 생각조차 않은 인플루엔자 대유행을 이미 예측해 2008년 시작된 신종 인플루엔자 대유행에 대비토록 하셨고, 그 이전 사스(SARS) 유행에도 우리나라의 안전을 위해 선봉에 서서 이끄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 중에 이뤄지지 않는 것이 없고 선생님께서 준비하신 모든 것들이 크게는 나라를 보호하고 작게는 모교의 감염내과 교실을 살찌우는 거름이 됐습니다. 그 높은 혜안과 식견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나이 마흔이면 이마에 내가 뭐하는 사람이다'라고 써 붙이고 다녀야 한다고 누누이 말씀하셨는데 마흔이 훌쩍 넘은 불초 제자는 이마에 뭐하는 사람인지 아직도 써 붙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으니 선생님의 가르침에 보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문적인 가르침은 말 할 나위도 없거니와 틈틈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실 때에는 시골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해 주는 덕담처럼 삶의 지혜와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공하려면 일곱개의 "ㄲ"을 가져야 한다며 '꿈'·'깡'·'꼴'·'꾀'·'끈'·'끼'·'꾼' 등을 하나하나 재미있게 설명하시던 선생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며,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자기 관리에 철저하신 분이셨습니다. 늘 걸어 다니셨고 운동을 거르지 않으셨으며 산을 사랑하셨습니다. 처음 뵈었을 때부터 마지막까지 군살이 붙으신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승에서 헤어지는 것이 더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선생님께서 당분간 찾지 말라고 당부하신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을 붙잡을 수는 없었지만 조금 더 아름답게 이별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후회가 덜 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 지금이라도 찾아뵈면 호탕한 웃음소리와 큰 격려로 방안을 한 가득 채우실 것 같습니다. 선생님을 보내고 나서야 선생님이 저희에게 주신 사랑과 선물들을 알 것 같습니다. 잠시 헤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다시 뵐 때는 조금 더 나은 제자가 되어 있겠습니다.

선생님, 편안히 가십시오. 못 다하신 책임과 사명은 저희 후학들에게 맡겨 주십시오.

국화꽃 향기와 함께 삼가 선생님 영전에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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