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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조건 없는 행복의 훈련

청진기 조건 없는 행복의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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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6.1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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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향주 (세연가정의학과의원 아크로마인드연구소 원장·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겸임교수 )

▲ 송향주 (세연가정의학과의원 )

"선생님 나 그동안 3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어요. 그냥 죽고 싶어요"
그 젊은이의 엄마도 옆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이런 말을 했다.
"저도 같이 죽으려고 했어요"

순간 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으로 당황했고 수초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 젊은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우리 병원에 다닌 나의 가장 오래된 클라이언트로 성장배경과 삶의 궤적을 나와 함께 한, 지금은 20대 중반의 똑똑하고 유명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하는 나에게는 친구와 같은 클라이언트였다.

엄격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이 젊은이의 아버지는 자식이 심적인 갈등이 있을 때 "나도 살기 힘들다. 너는 공부만 하면 되는데 뭐가 걱정이야? 눈앞에 고지가 보이는데"라고 말하곤 했다. 젊은이는 그동안 자기만을 바라보며 뒷바라지 한 아버지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아버지의 기대가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이 젊은이는 아버지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져서 대화를 피하게 됐고, 이번에 망친 성적은 그를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지게 한 것이었다.

아들이 너무 힘들어하기 때문에 그 고통을 같이 하겠다고 같이 죽으려 했다는 엄마를 마주하며 난 말없이 안아 주면서 말했다.

"그 친구는 나에게도 자식입니다. 20년 동안 옆에서 기쁨과 아픔을 같이 했어요."

그리고 엄마에게 말했다. 아들에게 같이 죽겠다는 말은 앞으로 절대 하지 말고 "만약 네가 죽으면 엄마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줄 거야. 이 엄마는 평생 그 아픈 십자가를 가슴에 안고 힘겹게 살 것이야"라고 정확히 말하라고 주문했다.

완벽하고 엄격한 아빠에게는 아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과, 인생에서 성공이라는 목표보다 그 목표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더 높은 가치가 있어야 실망하지 않고 살 수 있음을 전했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면서 오로지 아들의 사회적 성공을 기다린 아버지에게도 이 사건은 많은 충격과 혼란을 주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아들이 이 사회에서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줬으면 하는 가족의 가치는 아들이 꼭 똑똑한 박사가 돼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가치를 이루기 위한 많은 다양한 방법을 자식에게 선택하게 하며, 이제 부모는 앞에서 끌거나 당기지 않으면서 뒤에서 자식이 힘들면 밀어주고 말없이 동행하는 것이 더 큰 사랑과 배려라고 생각해 본다.

그 젊은이에게 나는 "이렇게 네가 힘들 때 나를 찾아주어서 고맙다. 난 언제나 네 옆에 있으니 힘들면 언제든지 와!"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손을 잡고 무슨 일이 있어도 죽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서로 눈물이 맺혔고, 나는 그 친구를 꼬옥 안아줬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너의 사회적인 성공도 중요하지만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더 소중한 가치라고….'

이 시대는 우리에게 '조건화된 행복'의 공식들만을 알려준다. 이러한 조건적인 행복은 외부적인 조건에 좌우돼서, 더 많은 돈과 명예와 권력을 갖게 될 때만 행복의 감정을 준다.

그런데 외부조건은 항상 변하기 때문에 행복은 유지될 수 없게 되고, 조건화된 행복 추구는 절대로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의 삶을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조건화된 행복은 일견 매력적으로 보이나 탐욕의 무한경쟁으로 빚어지는 불행한 전문가를 양산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조건 없는 행복'의 추구에 있다고 생각한다. 조건화되지 않은 행복의 추구는 부정적인 정서까지도 기꺼이 느끼면서 살아가는, 즉 생생하게 살아있음 자체로 풍요롭고 충만하며 의미 있는 삶의 추구이다.

무조건적인 행복은 우리를 집착에서 벗어나게 해서 주위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고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의 가치를 존중하고, 봉사하고 세상의 고통을 치유하는 대열에 나서게 한다. 나의 가족, 이웃, 동료와 동반하는 삶을 인내심을 가진 인격적 배려와 함께 살게 한다.

누구에게나 자식은 조건으로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 무조건적인 행복을 전하는 지혜로운 부모가 이 시대에 필요하다.

나는 오늘도 한 사람과의 소중한 만남을 허락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지혜를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 작은 진료실이 지혜를 나누고 기쁨에 충만한 인간을 향해 서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초대와 조우의 장소임을 확인한다.

나무가 있으면 새가 날아와 쉬고 물이 맑으면 달이 와서 쉬는 곳이 된다는 어느 스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또 내 에너지가 차고 넘쳐야 다른 이에게도 스며들 수 있다는 진리를 순간순간 느끼며 행동에 옮기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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