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일신기독병원
탐방 일신기독병원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2.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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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9월 17일 문을 연 일신기독병원이 개원 50주년을 맞았다.
일신기독병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호주장로교의 한국 의료선교 역사와 매견시 목사라는 인물과 마주하게 된다.

1865년 1월 8일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매견시 목사는 1894년 바누아투에서 호주장로교 선교사로 일하다 한국 선교의 부름을 받았다. 1910년 한국 땅에 첫 발을 내디딘 매 목사는 1905년부터 한국에서 호주장로교 선교사로 활동했던 켈리 부인과 결혼, 슬하에 네 딸(헬렌, 캐서린, 루시, 실라)과 외아들 야곱을 뒀다.

매 목사는 호주장로교가 맡긴 부산 선교구의 경남 동부지역 52개 교회를 도맡아 관리하는 한편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데 몸을 아끼지 않았다. 매 목사는 외아들 야곱을 디프테리아로 잃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척박한 한국 땅에 깊은 애정을 쏟았다.

1938년 정년을 맞아 30여년 동안 긴 봉사의 여정을 마친 매 목사는 "다시 돌아오마"라는 약속을 남긴 채 고향 호주로 귀국했다. 매 목사의 한국 사랑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됐다. 슬하의 네 자매 가운데 선교사였던 헬렌과 캐서린을 한국으로 보냄으로써 2대에 걸쳐 한국과의 오랜 인연을 계속 이어갔던 것. 1956년 7월 2일 호주 멜버른에서 별세하기 전까지 매 목사의 한국 사랑은 그칠 줄 몰랐다.

아버지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은 헬렌과 캐서린 자매는 이름도 한국식인 매혜란과 매혜영으로 바꿀 만큼 아버지 못지 않은 봉사와 희생 정신으로 전쟁의 상처에 신음하고 있던 한국 땅에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데 앞장섰다.

전쟁의 포화 속에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던 여성 의료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인 혜란·혜영 자매 선교사는 호주장로교와 각계의 후원을 이끌어냄으로써 1952년 9월 17일 일신기독병원의 모체인 일신부인병원을 개원, 산부인과 진료를 시작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 문을 연 일신기독병원은 반세기 동안 가난과 질병에 신음하고 있던 한국 국민, 특히 여성들에게 한 줄 희망의 빛을 안겨주며 성장을 거듭했다. 현재 320여 병상의 아담한 규모지만 26만여명의 신생아가 병원을 거쳐갈 정도로 산부인과 분야만큼은 전국적인 유명세를 자랑하고 있다.

사회봉사에 남다른 관심을 쏟아 IMF 경제위기가 한창인 1998년 노숙자 지원시설인 소망관을 개관하는가하면 극빈자 무료진료와 지역 사회 저소득 주민을 위한 의료봉사에 솔선하고 있다. 1962년 조산사 수습기관으로 지정된 이래 2,411명의 조산사를 배출했으며, 343명의 전문의를 양성하는 등 교육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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