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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비극, "맹골 물길의 세월호"

청진기 비극, "맹골 물길의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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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6.0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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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수(연세이비인후과의원 의료윤리연구회장 )

▲ 홍성수(연세이비인후과의원 의료윤리연구회장 )

어떤 깨달음을 얻길 바라며 이런 참사가 벌어졌을까? 무조건 '잘 살아 보자'는 일념으로 오늘에 이르렀으나 물질과 외양만 그럴 듯 할 뿐이다.

진정 잘 산다는 것이 사회전반 구석구석 얼마나 많은 요소를 고루 갖춰야 하는 지 대비하지 못함에 분노했다.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자녀들을 참혹하게 앗아가는 최악의 충격이었어야 했을 만큼.

이보다 더 신화적이고 비극적일 수는 없다. 비극은 운명적이다. 비극의 쓸모는 인간의 무지몽매와 탐욕과 게으름을 드러내는 현시이자, 예언이며 가장 강력한 경고이다.

튼튼한 철학적·사회적·정치적·경제적 기반 위에서 진정 제대로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 교훈이다.

대못을 박듯 터키의 광산이나 방글라데시의 배와 다를 바 없는 사회 수준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며, 이제 어디 가서 감히 잘 사네, 세계 몇 위 선진국입네, 좋은 나라네 거들먹거릴 형편도 안 되는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다.

비극의 운명적 기원

비극은 어느 날 갑자기 벼락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참사의 근원적인 문제 인식은 마침내 정치인, 관료의 방자한 권한과 그 권한의 양날의 칼인 '규제와 특혜'를 마음껏 즐기던 '관피아', 이를 감시하고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었어야 할' 소위 전문가, 학자 그리고 언론의 책임 방기로 모아졌다. 이미 다 알고 걱정하던 일이다.

공산 독재, 국가 독점이 아닌 한, '수요-공급의 원칙' 그리고 '성실한 각자의 역할과 그에 합당한 제 몫의 보장'을 통해 가장 합리적이어야 할 민간 영역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얼마나 심각한 수준으로 망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와 함께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제도적 문제와 사회 구성원 각자의 윤리와 도덕 그리고 전문성이 얼마나 취약한 지 역시 보았다.

지금 비판의 대상이 된 정치가, 관료들은 반성하고 있을까? 또 다른 세월호의 원인제공자일 수 있는 다른 영역들은 자기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고 있을까? 미리 스스로 앞장 서서 개혁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복지부동으로 견디고 있을까? '우리는 별 일 없겠지, 일 터지면 그때 가서 보자'는 심산일까?

후배가 지난 연휴에 연안 여객선을 탔는데 그나마 승객 인원수는 헤아리지만 일일이 본인 확인을 하지 않아 그 이유를 물으니, 한 시간 안팎 운항을 하는데 본인을 확인하자면 두 시간도 더 걸려 승객들이 난리가 난다고 손사래를 치더란다.

그뿐인가? 활동 분야가 다른 친구들을 만나보면, 다들 자기네 분야가 다음 번 세월호가 될 것이라 침을 튀기며 빠짐없이 정치가와 공무원 그리고 '규제와 특혜'라는 악마를 언급한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자체가 악마가 득시글거리는 유령선, 세월호로 뒤뚱거리며 조류와 해무 사이로 정처 없이 표류하고 있는 셈이다.

비극으로부터 악마를 물리치는 영웅 신화의 탄생

'(하느님의)선함이 드러나려면 디테일에 철저해야 한다(God is in the detail)'라는 격언은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Devil is in the detail)'라고 비틀어졌다. 지금 우리는 각자 자기 분야에서 디테일에 얼마나 철저한지, 디테일 구석구석 뿌리 깊게 박혀있는 악마를 물리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 봐야 할 때이다. 어쩌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의료 분야는 '가격 통제와 제도적 간섭 그리고 해당 전문가 배제'로 세월호 인명 피해는 비교도 될 수 없는 국가적 재난을 향해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이다. 너무나 뿌리 깊고, 너무나 느리고, 너무나 광범위하기에 그 실체조차 눈에 안 들어 와 모른 척 하고 넘어가기 가장 좋은 분야이기도 하다.

만에 하나 잘못돼도 영원한 국민 호구, 만만한 희생양인 10만 의사들이 있지 않은가? 지금 대한의사협회·대한의학회·대한병원협회·보건복지부·국민건강보험공단·국민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등 의료계 핵심 당사자들은 과연 기본과 원칙을 지키고, 미래 비전을 위해 본분과 최선을 다 하고 계신지 간절하게 여쭤보고 싶다.

우리나라 모든 분야에서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확연하게 달라져야 한다.

말로만 '미안하고, 잊지 않고,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다' 하면서 비극의 책임 추궁과 교훈만 난무하고 정작 각자 자기 분야에서 아무런 실천적 변화도 이루지 못하면, 악마는 '그럼 그렇지' 흐뭇해 할 것이고 우리는 정말 낯을 들 수 없이 우리 아이들에게 두고두고 미안할 것이다. 여기저기 수 많은 세월호가 끊임없이 침몰할 테니까.

(사족 : 팽목항에 추모 공원을 조성하고 자료실과 교육관을 건립해 대대손손 절대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가족들 마음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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