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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삶

깨달음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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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5.02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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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신(부여현대내과)

▲ 박철신(부여현대내과)

한 수행자가 '삶은 무엇인가? (what's the life?)'라는 화두를 들고 산속에서 면벽수도를 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록 깨치지 못해서 하산하고 만다. 그때 그 시절 완행열차를 타고 귀향하는데 잠이 쏟아진다. 그 때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 "오징어, 땅콩, 삶은 계란 있어요!" "오징어, 땅콩, 삶은 계란 있어요!"…. 그 소리에 화들짝 잠이 깬 수행자가 '삶은 계란이구나!(The life is an egg!)'. 무릎을 '탁'치며 곧바로 깨쳤다고 한다.

화두는 깨친자들의 언어이니 무명을 벗지 않고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수도자들에게 화두는 정신집중을 위한 방편일 뿐이지, 화두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자신이 깨치면 그것이 좋은 화두이지 화두가 좋다고 깨치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의 습에 젖어있는 우리의 상식과 지식을 버리지 않고서는 화두를 깨치기 어렵다.
무심(無心)에서 던진 말을 유심(有心)으로 이해할 순 없는 것이다.

제자가 스승인 조주화상에게 질문했다.
"개에게도 불성(佛性, 깨달을 수 있는 성품)이 있습니까?"
그러자 조주화상이 "무(無)"라고 대답했다.

다른 제자가 다시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그러자 조주화상이 이번엔 "유(有)"라고 답했다.
모순된 대답 같지만 잘못됨이 없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한 것은 이제 공부를 갓 시작한 제자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써 너도 열심히 공부하면 깨칠 수 있다는 'you can do it'의 희망의 메시지를 준 것이고, '무(無)'라고 대답한 것은 공부가 무르익은 상근기 제자에게 유와 무를 떠난 공(空)의 세계를 알려주고자 '무(無)'자 화두를 던진 것이다.

질문자의 근기에 따라 상대적인 방편법문을 한 것이다.

이 세상 만물은 항상 우리에게 무언의 법문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공부한 만큼 받아들일 뿐이다.벚꽃이 만발했다가 비바람에 우수수 꽃비되어 날릴때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생각에만 머물러 빙그레 웃을 여유 조차 없다면 그것 또한 옳지 않다.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해야한다.
내세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내세의 구원만을 위해 현세를 부정하고, 수행한답시고 자신을 학대하는 것도 옳지 않다.

내생의 환희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이생은 내생의 밑거름이니 수목장의 나무들은 시체를 거름삼아 잘도 자란다. 이생에서의 삶을 잘 살아야 한다. 악을 짓지 말고 선을 행해야 하며 사랑하기 힘들다면 미워하지는 말아야 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마태복음 11장 28절)'는 예수의 말대로 사랑과 자비 밖에 인간이 이 세상에 남길 만한 것은 없다. 인간은 우주와 자연에서 나와서 결국 고향으로 되돌아가 우주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죽음을 부정한 진시왕도 틀린 것이고, 이 세상은 불안과 고통뿐이니 인간 최대의 미덕은 자살이라고 말한 니체도 틀린 것이다. 자연은 인간을 좋아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부모가 죽어도, 내가 죽어도, 내 자식이 죽어도 하늘은 그대로 높고 푸르다. 햇빛은 밝게 빛나고 세상은 그저 여여(如如)할 뿐이고 장송곡 소리와 아기 탄생의 웃음소리가 공존하는 곳이 이 세상이니, 세상은 인간만을 따로 떼놓고 봐주지 않는다. 허리케인이 지구를 휩쓸어도 하늘은 울지 않는다. 그렇다고 웃지도 않는다.

자식이 깨달음을 얻어 성자가 되면 부모도 자식에게 큰 절을 올려야하는 것이 부모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의 우주만물의 이치이다. 감나무에서 홍시보다 땡감이 먼저 떨어지는 수도 있듯이, 내가 한때 부모님의 부모였고 내 자식이 나의 부모였음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는 이미 깨달아 있었는데 철이 들면서 욕심이 눈을 가리더니 근심·걱정·불안과 고통이 깨달음의 지혜를 무명으로 또다시 덮어버렸다.

나라고 생각하는 이 몸뚱이는 내 것이 아님을 알고 그동안 살아왔던 거짓과 잘못들을 참회해야 귀신장난에 놀아나질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과 우주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내 고향인 우주만물의 법칙을 모르고 있었으니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우주만물의 원리를 알고 그에 맞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깨달음이다. 우주의 생각과 내 생각이 같다면 깨친 것이다.

내가 곧 우주임을 알고 자비와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산다면 그것이 곧 깨달음의 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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