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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황혼녘 한의학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청진기 황혼녘 한의학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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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4.2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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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수(연세이비인후과의원 의료윤리연구회장 )

▲ 홍성수(연세이비인후과의원 의료윤리연구회장 )
지난 4월 9일, '한의협 정책토론회(송성철 기자, 의협신문)', '한의인재, 실업자(서민지 기자, 메디칼옵서버)' 두 개의 기사에서 "진단의 정확성을 확보하고 환자 안전과 소비자 만족도를 제고(김진현)", "인접 학문과의 교류와 통섭(김장현)", "서울대학교 한의과 대학 신설(김지호)"이라는 발언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본말전도, 한의학의 현대 진단장비와 의료기기 사용 요구

한의사들이 자기정체성과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현대 진단장비와 의료기기 사용에 목을 메는 행태에 이제 분노나 경멸을 넘어 연민을 느낀다.

생년월일시로 사주를 보고 환자의 안색을 살피고 진맥을 하고 촉진을 한 후, 심오한 음양오행의 우주론적 가설이나 사상체질이라는 경험칙에 기반해 좌우 비대칭과 상하 열기-한기의 뭉침과 풀림 그리고 경락과 기의 흐름을 설명하다가 '느닷없이' 심전도를 찍고 초음파로 훑고 CT사진을 검토하고 내시경을 들여다 본다면, 이 황당한 맥락과 논리의 부조화를 현대화니 과학화니 통섭이라 우길 것인가? 진맥을 심전도로, 경락을 초음파로, 침 자리를 CT로, 복부 촉진 소견을 위내시경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현대 진단장비와 치료기기의 타당성과 유효성은 의학이 '동일한 과학적 맥락에서' 지난 200여 년 과학 전반의 성과를 도입해 개발한 것이다.

한의사가 현대 진단장비와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한의사에게 '현대의학적 지식 기반과 질병에 대한 진단-치료 개념이 완비되어 수용하고 활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자격의 문제이다.

"배우면 되고, 이미 오래 전부터 모든 한의대 교육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럼 그게 의과대학이지 왜 한의과 대학이어야 하느냐"고 되물을 수 밖에 없다. 그 속내가 양방 흉내내기, 업혀가기, 몽니 같아 애정만큼 서글프다.

자기정체성 찾기, 과학적 근거

한의학에 대해 '비과학'이라는 지적을 억울하고 고깝게 받아들이며, 그 대응 논리로 '민족', '전통', '전래' 같은 전근대적인 감성적 호소를 하거나 '수 천 년 임상시험의 최종 결과'라거나 심지어 '해보니까 되더라'라는 궤변만을 주장할 일이 아니다.

진정 한의학이 인체를 다루는 고도의 유용한 과학이기를 원한다면, 여타 과학 분야의 비판자들을 납득시킬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한의학적인 우주관, 인간관 그리고 질병에 대한 이해와 이를 기초로 한 진단 및 치료 방법의 타당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오늘날 환자 치료에 적용 가능할 것으로 확신하거나 기대되는 항목에 대한 보편적 인과율(정상인의 생리 기전에 대한 설명과 각 질병의 병리 기전에 대한 해석이 타당한지, 치료 성공의 기준이 무엇인지, 치료 방법의 과학적 근거가 무엇인지, 치료 실패의 이유가 무엇인지, 진단명에 따른 환자 모집단에서 어느 정도의 성공률을 유지하는지)을 밝히고 근거를 마련했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설사 다 버릴 수 밖에 없을지라도.

(서양)의학은 전지전능하고 완벽한가? 절대 아니다. 그럼 무엇이 다른가?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 즉, 가용한 모든 과학적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검증을 하고 이해 가능한 근거를 찾아내어 축적하는 노력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환자에 대한 해악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성·안정성·유효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연구와 개선이 지난 200여 년 동안 늘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의학적 개념의 차용과 현대 진단장비와 의료기기의 사용은 그런 취사선택의 과정에서 과학적 입증의 도구와 과학적 해석의 기반으로서만 유용할 것이다.

무조건 일단 제발 '한의사들에게도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하라'고 우길 일이 아니다. 일선 한의원 진료 현장을 살펴보길 바란다. 위태로워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정체성을 포기하고 있지 않은가 안타깝다.

한의학의 미래

한의학은 이전까지의 여러 문헌이나 전승 그리고 민간속설까지 잡다하게 채집, 편저한 것일 뿐인 '동의보감'이라는 신비에 스스로 갇혀있지 말고, 이름만 빌려왔을 뿐 실재 인물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소설적 허구, '허준의 허상'을 깨부수어야 겨우 과학적 활로가 열릴 것이다. 너무 늦지 않았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10여 년 전 그토록 우수한 인재였던 젊은 한의사들이 현재 실업자로 전락했음은 정체성 정립 실패의 결과이지 사태의 본질이 아니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미 비아그라의 등장과 한의학 몰락의 상관관계는 의료시장의 소비자가 등을 돌려 한의학의 효용 한계가 밝혀졌고 한의학과 지원자의 질적-수적 급락은 되돌리지 못 할 것이다. 대입 수험생 학부모가 제일 잘 안다. 누구 탓을 하겠는가? 이제라도 민족주의, 국수주의적 발상으로 사회적 비용과 인력 낭비, 의료계 전반의 혼란 그리고 환자의 피해를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따져 보는 것이 순리이다.

비효율적인 분야를 의과대학과 통합하여 일말의 여지를 남기느냐, 아니면 아예 버리고 갈 것인가를 근본적으로 숙고해야 하는, 언젠가 오리라 누구나 예상했던 바로 그 때가 왔다고 본다. 너무 늦게 왔거나, 누군가에 의해 너무 늦춰졌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한의사 협회와 보건복지부의 부창부수, 황당한 발상인 '서울대학교 한의과대학 신설'에 대한 교육부와 서울대학교의 향후 반응이 자못 궁금하다.

마지 못 해 한 구석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설 전통 한의학 보존 연구소(영문 이름까지 지어봤다, SNUMC Korean Traditional Herb Medicine Reservation and Research Center)' 개설 정도로 말막음을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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