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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없이 걸어온 길…노숙인들의 '대부'

후회없이 걸어온 길…노숙인들의 '대부'

  • 최승원 기자 choisw@doctorsnews.co.kr
  • 승인 2014.03.1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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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건 제30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자

▲ 환자를 가족처럼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심으로 진료에 정성을 다하는 박용건 과장. ⓒ김선경기자 photo@kma.org
"의사는 어차피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벌 것 다벌고 백발이 돼서야 봉사에 나서면 후회하지 않을까?."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아내와 두 딸을 책임진 가장으로 "애들 대학도 보내야 하고 시집도 보내야 하는데 생계는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걱정도 앞섰다.

그때부터 답을 얻기 위해 기도에 들어갔지만 아무리 기도를 해도 기도에 대한 응답이 없었다. 자신보다 믿음이 깊었던 아내에게까지 기도를 부탁했다. 아내는 철야기도까지 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지만 아무 메시지도 얻을 수 없었다.

철야기도를 마친 아내를 데리러 간 버스 안에서 결국 "그물을 붙잡고 있거나 내던지거나 하루에 세 끼 먹는 것은 매한가지 아니겠어"라는 생각과 성가복지병원을 설립한 수녀님들과 인연을 맺고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일 거라 믿고 일을 저질(?)렀다.

제30회 보령의료봉사상 수상자인 박용건 성가복지병원 내과 과장을 7일 만났다. 그는 봉사의 삶을 선택해야 했던 13년 전의 그때를 생각하면서 막상 일을 저질렀더니 걱정하던 것들은 어떻게든 수습이 됐다고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은 이제 아빠가 수입이 없으니깐 내 힘으로 대학을 가야 한다며 열심히 공부하더니 4년 장학금에 총장상까지 받더라고요. 의사가 부족할때는 제가 졸업한 경희의대 동문들이 십시일반으로 내일처럼 도와줬어요. 10여년째 김장을 수백포기씩해서 보내주는 분들도 계십니다.

무엇이 부족하다 싶으면 신기하게도 늘 채워졌어요. 기적이라면 기적이겠죠."

물론 이런저런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내와 아이들이 모든 걸 이해하고 오히려 나를 격려해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진료비를 한푼도 받지 않는 성가복지병원은 주로 알코올성 간질환을 앓고 있는 노숙인들이 넘쳐난다. 대부분 삶에 대한 애착이 약하다보니 진료에 대한 수용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만삭 산모처럼 복수가 차서 곧 죽을 것처럼 들어왔다가 완쾌돼 열심히 살겠다며 병원 문을 나선 사람이 그날 저녁, 계단 앞에 술에 쩔어 쓰려져 있는 경우도 봤어요.

약을 잘 먹어라, 술을 먹지마라 이런저런 권고를 해도 거의 안지킨다고 보면 돼요. 천장에 술을 숨기기도 하고 입원시켜 놓으면 도망갔다 다시 들어오고… 한번은 화장실에서 담배를 몰래 피다 병원에 불을 낸 적도 있어요."

그런 일들에 화가 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박 과장은 "안타깝지만 다시 환자를 붙잡고 진료하는 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환자가 내 말을 잘따라주고 마음을 고쳐먹고 그런 건 하늘의 뜻이라고 봐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환자를 진료하는 것 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그러지고 튕겨나가는 환자들도 사랑스러워지고 오십이 넘은 사람들인데도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하하하."

자신이 13년간 봉사하는 삶을 산 것보다 자원봉사자들과 후원금만으로 13년을 버티고 있는 성가복지병원이야말로 기적이라고도 말했다.

"지금이야 아파트들 사이에 병원이 자리잡고 있지만 옛날는 미아리는 완전히 변두리였죠. 당시 성가복지병원이 이 근처에서 유일하게 건물이라 부를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고 김수환 추기경도 수녀님들이 진료비를 한푼도 받지 않는 병원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말리셨대요. 하지만 수녀님들의 고집이 오늘날의 성가복지병원을 있게 한 거죠."

보령의료봉사상 대상수상자로 선정돼 "얼떨떨하다"면서도 "상을 받았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성가복지병원에서 계속 환자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후배 의사들에게는 "자신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뿌리치지 말고 힘닿는대로 도와주면 된다"고 말하고 "의사가 환자에게 모든 신경을 쓸 수 있도록, 환자만을 위한 삶을 살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13년전 인테리어 공사에 들어갔다 뒤엎은 병원은 어떻게 됐는지 물어봤다. "어떻하긴 뭘 어떻해. 팔아서 그동안 생활비로 다썼지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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