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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베푸는 세상은 그냥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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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4.03.1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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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의료봉사상 30주년…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12월의 매서운 바람을 가르며 골몰길을 돌고 돌아 길을 물어 찾아간 곳은 천주교 살레시오수도회다. 구릿빛 얼굴에 유난히 하얀 치아가 눈에 들었던 그는 "길 찾기 어렵지 않았냐"며 손수 끓여낸 녹차 한 잔을 내밀었다.

40∼50도를 오르내리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살고 있다는 그는 냉수 한 잔을 죽 들이키며 "이렇게 시원한 물 한 잔 먹을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따뜻한 차 한 잔이 언제 식었는지도 모르는 사이 그는 "수단에는 2주만에 기타와 드럼을 연주하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아이도 있다"며 아이들 자랑에 신나 했다.

▲ 보령의료봉사상 제정을 알린 <의협신보> 1985년 3월 1일자 3면 사고.

이제는 고인이 된 이태석 신부와 처음 조우했던 2005년 겨울, 살레시오수도회에서의 따뜻한 차 한 잔의 인연은 보령의료봉사상으로 이어졌다.

'돈보스코 성인'을 닮고자 했던 이태석 신부가 수단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교육자로, 가난하고 헐벗은 현지인들의 건강을 지키는 의사로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디딤돌 역할을 한 것이 '보령의료봉사상'이다.

2007년 3월 21일 의협신문 창간 40주년 기념식과 함께 열린 제23회 보령의료봉사상 시상식에는 한창 아프리카에서 봉사 중인 그를 대신해 어머니가 참석했다. 이 신부의 보령의료봉사상 수상은 수단의 미래이자 희망인 청소년과 주민의 아픔을 위해 평생 함께 살고자 했던 소박한 꿈을 세상에 널리 알린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아프리카 의료봉사 이태석 신부 소박한 꿈 알린 계기

1985년 3월 김승호 당시 보령제약 사장은 <의협신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본보와 함께 보령의료봉사상을 제정하게 된 취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김 사장은 "척박한 땅을 풍요롭게 가꾸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야 말로 사회를 지탱해주는 뿌리요, 기둥이요, 우리 모든 이의 희망"이라며 "보령의료봉사상은 신뢰받는 의사상(醫師像)을 확립하고 '인류건강을 위한 기업'이라는 보령의 기업이념을 실천하기 위해서 제정했다"고 밝혔다.

1회 수상지인 유일성 원장을 비롯해 대부분 역대 수상자들은 의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고향마을과 탄광촌을 묵묵히 지키며 상록수 같은 삶을 살았다. 심장병 어린이와 한센인들의 아버지로 때로는 노숙인들의 주치의로 기꺼이 그들이 내민 손을 마주잡았다. 해외의 더 어려운 환자들과 눈을 맞춘 의사들에게도 보령의료봉사상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보령의료봉사상이 주는 또 다른 의미는 나눔을 실천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그들을 존경하는 문화가 뿌리내리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1985년 처음 보령의료봉사상이 제정된 이후 아산상(1989년)·JW중외박애상(1993년)·한미참의료인상(2002년)·한미자랑스런의사상(2008년)·성천상(2013년) 등이 잇따라 신설,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의료인들을 격려하고 있다.

참된 의사상 확립…'나눔' 통해 행복한 세상 만들기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자원봉사활동은 일방적으로 '내미는 손'이 아닌,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맞잡는 손'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을 위해 자신이 어떤 무엇인가를 희생(돕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행복하고, 함께 즐거워지는 의미를 담은 '나눔'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진 전 의료윤리연구회장은 "의료봉사는 병들고 어려운 환자들에게 의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한 행동'이자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사랑을 전하는 가장 진솔한 소통의 방법"이라며 "하지만 이러한 선행은 의도의 선함과 진정성이 아닌 자기 만족이나 성취감,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면 뜻이 퇴색해 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겸손하지 못한 의료봉사는 오히려 환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깊은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

이 회장은 "선행을 할 때도 도움을 받는 환자의 감정과 인격을 존중하고, 겸손해야 한다"면서 "사랑 안에서 의술을 전하는 의사, 겸손함과 남을 배려해 주는 따뜻한 의사, 이런 분들이 우리사회가 바라는 굿 닥터"라고 언급했다.

선행 할 때도 환자 감정·인격 존중해야

지난 30년 동안 보령의료봉사상과 인연을 맺은 316명의 굿닥터들이 이 땅에 뿌린 '행복 바이러스'는 우리나라를 넘어 소외받고 있는 지구촌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보령의료봉사상의 역사가 앞으로 50년, 100년 역사를 쌓아가기 위해서는 의료봉사 역시 새로운 보건의료환경에 걸맞게 체계화·조직화의 순방향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 범의료계 의료봉사 네트워크가 그것이다. 체계화와 조직화를 통해 모두가 함께 행복한 세상을 위한 더 넓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박용준 글로벌케어 회장은 <보령의료봉사상 30년사> 특별 좌담회에서 "그동안 너도나도 중구난방 식으로 해외봉사를 한다고 말들이 많았다"며 "이제는 한꺼번에 경쟁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순서와 지역, 절차를 정하고, 어떤 지역에서 어떤 환자를 집중적으로 돌본다는 계획을 미리 정해 봉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의료봉사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를 배려하는 작은 실천이 밑바탕이 돼야 자신의 선행을 감추는 진정한 '대의(大醫)'와 윤리를 실천하는 '윤리적 영웅(ethical hero)'들이 늘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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