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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아픔 인술로 승화 가야문화 되살린 상록수
이산 아픔 인술로 승화 가야문화 되살린 상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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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3.1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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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유일성 원장
▲ 제1회 유일성 원장

보령의료봉사상을 처음으로 빛내준 제1회 수상자는 경상북도 고령 영생의원의 유일성 원장이다. 유 원장은 1957년 경북 고령군 보건진료소 소장으로 처음 부임한 때부터 보령의료봉사상을 받을 때까지 28년 동안 고령읍민과 함께 호흡했다.

그는 1922년 평안북도 영변 출생으로 1·4 후퇴 때 월남한 실향민이었다. 그에게 고령은 제2의 고향이었던 셈이다.

1961년 영생의원을 개원한 이후 이산의 쓰라림을 되새기며 노인들에 대한 의료봉사에 적극 나선 유 원장은 1980년 무렵에는 고령군뿐만 아니라 달성군·합천군·거창군 등 인근지역까지 널리 알려졌다.

매월 3일을 무료 진료일로 정해 환자들을 돌봤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는 수시로 순회 진료에 나서는 것은 물론이고, 한번에 20∼30일 분의 약을 무료로 처방해주는 경우도 흔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유 원장은 그 지역의 불우청소년 지원 사업에도 깊이 관여했다. 당시 고령군 성산면에 있던 국제재활원(중중장애인시설)은 뇌성마비·지적장애·소아마비 등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안식처였다.

유 원장은 이들의 재활자금으로 매월 40만 원을 기부하고 수시로 방문해 재활의 꿈을 키우는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보살폈다. 보령의료봉사상 상금도 이들의 재활 장학금으로 전액 희사했다.

유 원장은 1974년에 창설된 고령문화원의 초대 원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보여줬다. 1979년에는 고령·거창·합천 등 대가야 문화를 꽃피운 지역의 인사 400여명이 발기해 설립한 '대가야문화권개발추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지역문화 발전에도 힘을 보탰다.

유 원장의 활동은 해외에도 알려져서 1985년 11월 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청년대회에서 미국의 세계평화박애운동본부가 수여하는 세계평화공로상을 받게 된다.

수상 이후에도 매년 시상식에 참석해 후배 수상자들을 따뜻하게 격려해줬던 유 원장은 2000년 11월 17일 7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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