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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 곧은 뜻 대물림…육영사업에 온 힘

선친 곧은 뜻 대물림…육영사업에 온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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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3.1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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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조영호 원장

▲ 제4회 조영호 원장

충북 영동군 황간면에서 1914년 태어난 영창의원 조영호 원장은 도립대구의원 외과에서 잠깐 근무한 것을 빼고는 1942년부터 줄곧 고향을 지키며 평생 봉사의 삶을 살았다. 1988년 3월 21일 보령의료봉사상을 받기 이전에 이미 40여 년간 영동군의사회장을 맡아 회무를 돌본 지역 의료의 산증인이기도 했다.

1937년 대구의학전문학교(경북의대 전신)를 졸업한 조 원장이 고향 지킴이를 자처하게 된 것은 선친의 영향 때문이었다.

일제 때 전매국에 근무하면서도 창씨개명을 거부할 정도로 곧은 신념을 지켰던 선친은 황간중학교를 설립하는 등 지역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조 원장은 그런 선친의 일을 돕자는 뜻에서 고향에 영창의원을 개원하고 토박이로서, 이웃으로서, 의사로서 인간애를 다졌다.

선친의 곧은 성격을 대물림한 조 원장의 성품은 병원 운영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치료비가 있든 없든 환자를 우선 치료해주는 데서 보람을 찾았던 조 원장에게는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 돈이 없다고 치료를 받을 수 없다면, 그것은 평등이 아니다.

의사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경제력이 있고 없고를 가리지 않고 당연히 치료해줄 의무가 있다"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었다. 친구나 동기들이 학계에서, 대도시에서 이름을 떨치고 경제적 여유를 누릴 때 황간에 묻혀 이웃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살아온 조 원장에게 경제와 인술이 동일시되는 세태는 개탄의 대상이었다.

 

조 원장은 선친의 유업을 이어서 황간고등학교 설립에 앞장섰다. 사실 황간과 같은 벽지에 인문계 고등학교를 유치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진학을 위해 외지로 나가야 하고, 그에 따른 경제적 부담으로 진학을 포기해야 하는 학생들이 많은 실정을 안타깝게 생각한 조 원장이 발 벗고 나서서 결국 고등학교 설립을 이뤄냈다.

개교 후에는 학교 육성회장을 맡아 부지 8000평을 기증하는 한편, 중·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조 원장의 장남은 고려의대 산부인과 교수(구로병원)를 지낸 조수용 고려대 명예교수이다. 뒤로 넘긴 백발에 흰 눈썹이 썩 어울리던 선비 풍모의 조 원장은 향년 99세를 일기로 2012년 5월 24일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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