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차윤근 박사
"나는 의사로서, 또 사회복지사로서 평생을 어두운 인생의 뒷길에서 고생하고 소외당한 사람들과 같이 살아오면서 불우한 사회의 이면상을 많이 경험했다. 이에 따라서 나의 성품과 삶의 태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차윤근 박사는 저서 <아쉽지만 후회 없이 달려온 길>에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압축했다.
보건사회부 보건국장·의정국장, 두 번에 걸친 국립소록도병원장·국립의료원장·보건사회연구원 초대원장·대한나관리협회장·대한결핵협회 사무총장·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한국어린이재단 회장·한사랑마을 보건복지 고문·한국복지재단 명예회장 등 다채로운 삶의 편린이 "불우한 사회의 이면상을 많이 경험"하면서 "나의 성품과 삶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말 속에 녹아 있다.
누구보다 많은 일을 했지만 겸허하고 청렴한 성품과 태도를 잃지 않은 차윤근 박사가 제18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을 수상했다.
1918년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나서 1942년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한 차 박사는 불혹에 접어든 1958년 국립소록도병원에 처음 부임했다. 당시에 그곳에는 6100여명의 환자가 살고 있었다. 소록도의 자연은 아름다웠지만, 환자들은 가난했고 주거지는 불결했다.
일단 그들의 수입원이 되는 돈사와 계사를 숙소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옮겨야 했다. 연료도 장작에서 석탄으로 바꾸도록 했다. 차츰차츰 나아지는 생활과 더불어 건강에 늘 관심을 가져주는 차 박사가 그들에게 고마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고 차 박사가 국립보건연구원 교수로 발령 났을 때는 소록도 환자들이 너나할 것 없이 그의 유임 데모에 나서기도 했다. 빈틈없는 그의 치료와 열정으로 소록도가 새롭게 변모했던 것이다.
차 박사는 1985년 5월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신월리 소재 6만 평의 대지에 2213평의 현대적 시설을 갖춘 '어린이재단 한사랑마을'을 설립하고 중증 장애아들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한센병 환자들로부터는 '아버지'로 불렸고 장애아들로부터는 '할아버지'로 불렸던 차 박사는 2008년 3월 21일 9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