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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 진료'에 담긴 뜻 "재물은 영원할 수 없다"
'1000원 진료'에 담긴 뜻 "재물은 영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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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3.1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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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김경희 원장
▲ 제20회 김경희 원장

"지난해 봄 몸이 좋지 않아 이제 진료를 그만둬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계속 끌고 오면서 이렇게 좋은 상을 받게 돼 너무 기쁩니다. 내가 탈 수 있는 '막차'를 놓치지 않았으니 운이 좋은 거죠. 의사협회에서 의사에게 주는 상이라 더 보람을 느낍니다."

2004년 '상계동의 슈바이처'로 잘 알려진 은명내과의원 김경희 원장은 제20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을 받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1920년 서울에서 태어나 1943년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한 김 원장은 해방 후 서대문구 중림동에 내과의원을 열었다. 1956년 일본 교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미생물학)를 받고 1958년 귀국한 뒤 서울역 뒤편에서 내과의원을 개원했다. 그런 뒤에는 신림동·답십리·청계천·망원동 등지의 판자촌을 돌며 무료 진료를 해왔다.

김 원장에게 '슈바이처'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상계동 1000원 진료'때문이었다. 어려운 이웃이 많은 동네를 물색하던 김 원장은 1984년 3월 상계동 부근 수락산 자락의 판자촌에서 은명내과를 개원하게 된다. 김 원장은 이 곳에서 의료보험이 실시되기 전인 1989년 7월까지 1000원만 받고 진료했다.

김 원장이 1000원 진료를 한 이유는 "어떤 재산도 개인이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1996년 6만 5000여평(감정가 53억 원)의 땅을 모교인 연세대에 기증했다. 무소유의 철저한 실천이었다. 

 

김 원장의 봉사활동은 2000년 5월에 만들어진 '은명마을'에서 두드러졌다. 서로 흩어져서 거주하고 있던 독거노인과 극빈층을 돕기 위해 김 원장이 '특구'로 지정하고 이름 붙인 곳이었다.

이곳에는 100여 세대의 극빈가정이 모여 살면서 김 원장의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김 원장은 주민들에게 발생하는 사소한 사고까지 손수 나서서 해결했다.

2004년 12월 28일 은명내과의원은 폐업신고를 했다. 고령인 김 원장이 건강이 나빠지면서 자신의 뒤를 이을 의사를 구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 평생을 바친 '상계동 슈바이처'는 60여년 들고 있던 청진기를 그렇게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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