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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어머니'에서 소외된 이웃의 벗으로
'케냐의 어머니'에서 소외된 이웃의 벗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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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3.1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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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유루시아 수녀
▲ 제21회 유루시아 수녀

아프리카 케냐를 비롯해 국내외의 소외받는 지역에서 평생 의료봉사 활동으로 삶을 일관해 온 유루시아 수녀가 2005년 제21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을 받았다. 유 수녀는 20년간 케냐의 오지를 누비며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면서 '케냐의 어머니'로 불렸다.

1990년대에는 중국에서 7년간 의료봉사를 펼쳤고, 그 뒤에는 다시 서울 영등포에 있는 요셉의원에서 행려병자·알코올중독자·극빈자·외국인노동자 등과 함께 했다. 어렵고 힘겨운 이들을 찾아 평생을 바친 것이다.

1931년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난 유 수녀의 본명은 유우금이다. 1955년 수도여자의과대학(고려의대 전신)을 졸업한 유 수녀는 1957년 부산 일신기독병원에 근무했으며, 2년 뒤 미국으로 건너가 피어리아 감리교 병원과 위스콘신대학교 성모병원에서 산부인과 레지던트를 수료했다.

그 후 산부인과 레지던트 수련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유 수녀는 '케냐 정부와 독일주교회에서 돈을 모아 케냐에 병원을 짓는데, 의사 한 명과 간호사 세 명을 찾는다'는 메리놀수녀회의 편지를 받고 케냐행을 선뜻 지원했다. 그렇게 떠나서 흐른 20년 세월이 그를 '케냐의 어머니'로 만들었다.

전기도 없고, 물도 없고, 먹을거리도 넉넉지 않은 그 곳에서 유 수녀가 맞닥뜨린 질환들은 대부분 영양실조·폐병·설사병·나병 등의 후진국 병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소아 사망률이 50%에 달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하루에 세 시간밖에 못자면서 300명의 환자들을 돌봐야 했고, 수술이 있는 날이면 꼬박 수술실에 갇혀 있기 일쑤였다.

20년 케냐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 유 수녀는 메리놀수녀회의 규율에 따라 3년 동안 미국으로 선교 교육을 떠났다.

그후 한국에 들어와 서울 영등포의 요셉의원에서 3년 반 동안 노숙인·알코올 의존증 환자 등을 돌보다가 1996년 중국 선교 개척지에서 7년간 의료봉사를 하면서 중국동포 젊은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중국에서 돌아와서는 다시 요셉의원에서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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