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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말 민영화가 문제인가

시론 정말 민영화가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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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3.0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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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훈정 (대한의사협회 감사)

▲ 좌훈정 (대한의사협회 감사)

요즘 우리 사회의 큰 화두는 민영화다. 철도민영화 논란으로 인한 철도 파업으로 몸살을 앓았고 의료민영화 공방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자리에 가더라도 민영화에 대한 얘기가 한 두 마디쯤은 나오기 마련이고, 민영화에 대한 날선 비판과 성토를 하지 않으면 지식인이 아닌 것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최근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철도를 비롯한 공기업들의 민영화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다.

하지만 시계 바늘을 10여 년 전으로 돌려보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민은 국가 기간산업의 민영화에 오히려 손을 들어주었다. 실제로 포항제철·한국통신·한국담배인삼공사 등이 POSCO·KT·KT&G 등 민간기업으로 바뀌었다.

또 금융시장 개방으로 은행은 물론 우리 대기업들의 많은 지분이 외국인들에게 헐값으로 넘어갔다. 당시 이를 기획하고 집행했던 정당이 현재 민영화에 대해 격렬히 반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민영화는 그 시대와 상황에 따라 선악의 기준이 달라진다. 만약 지금 민영화가 '악(惡)'이라면 그 반대의 개념인 국영화(또는 공영화)는 '선(善)'이어야 한다. 과연 그럴까.

국영기업이나 공기업은 국가의 주요 기간산업이나 사회간접자본 등을 생산·운영하는데 있어 적합한 방식이다. 그러나 그 비효율성과 방만한 경영 등이 주요 단점으로 지적된다. 많은 공기업들이 엄청난 적자를 국민의 혈세로 메우면서도 비상식적인 복지 혜택이나 성과급을 지급해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제 공기업은 공공재를 공급하므로 적자가 당연하다는 주장은 거의 폐기되고 있다. 우리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들이 차츰 공기업들을 민영화하고 있다. 민영화로 인한 단점보다는 공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이 국민에게 더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섣부른 민영화로 인해 재화나 서비스 가격이 앙등하거나 정부의 통제가 어려운 독과점의 폐해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국·공영화가 선이 아닌 이상, 민영화도 악이라고 볼 수 없다. 요컨대 민영화의 선악은 정치적인 목적이 아니라 경제적인 결과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

민영화의 선악은 시대와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면 의료민영화에 대해 살펴보자. 국민은 '의료민영화'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갖고 있다. '식코(Sicko)' 같은 선전 영화가 의도한 선입견 때문인지, 대한민국의 의료가 민영화되면 의료비가 폭등하고 아픈 사람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의료민영화는 그 전제부터가 잘못됐다. 우리나라 의료기관들 중 민간의료기관이 차지하는 비율이 90%를 상회한다(병상수 비율도 거의 비슷하다). 의사를 비롯한 의료 인력들 역시 국가가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민간에서 배출된다. 한 마디로 우리 의료는 원래부터 민영화가 되어 있었다.

다만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 사회보험 형태의 단일 의료보험이 운용되고 있는데, 굳이 표현하자면 '의료보험 공영화'가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이 실제로 걱정하는 것은 의료민영화가 아니라 '의료보험 민영화'이다. 현재 우리 의료보험(국민건강보험)은 '저부담 저급여'를 위시한 수많은 단점들에도 그럭저럭 20년 이상 이어져왔기에, 국민은 지금껏 받아온 의료서비스 조차도 민영화 이후에는 제대로 받지 못할까 걱정하는 것이다.

기실 국민건강보험의 부족한 점들을 메우기 위해 개인들이 가입한 보완적 민간의료보험이 2011년 기준 약 17조원으로, 건강보험료 수입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비록 보완적이라고는 하나 단기간에 이정도 급성장한 것은 국민이 현재의 건강보험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우리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률과 획일적인 서비스 등을 개선하기 위해 대체적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정부는 당분간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대체적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국민소득이 더 증가해야 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도 늘어나야 한다.

또 '민영화'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나 거부감도 많이 씻어내야 한다. 항상 여론과 표를 의식하는 정부로서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일이다.

국민의 걱정은 의료민영화가 아니라 의료보험 민영화

지금 논란거리 중 하나인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 등이 사실 의료민영화와는 무관하다고 보는 이유가 그것이다. 의료법인 자체가 이미 민영화된 것이고, 거기서 자회사를 통한 수익을 추구한다고 해서 기존의 각종 법인들이 의료기관의 부대사업으로서 운영하고 있는 수익사업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맹장수술비 1000만원' 같은 선정적인 구호가 들리니 이를 괴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민영화는 시대적 상황과 경제적인 효과 등을 고려해 추진해야 하고, 결과에 따라 득실을 평가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선악은 아니다. 요컨대 방식이 문제지 민영화가 나쁜 건 아니다. 국민이 걱정하는 '의료보험의 민영화' 역시 필요성이 대두되면 그 때 국민적인 합의를 통해 가부를 결정하면 된다.

의료보험의 민영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건강보험만으로도 국민이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끔 건보 재정을 튼실하게 하고, 또 의료공급자인 의사들 역시 만족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를 만드는데 경주해야 한다.

특히 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 등 필수의료에 지원자가 줄어들고 건보 적용이 되지 않는 미용성형 등에 우수한 인력들이 몰리는 것은 지금 의료제도에 크나큰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정부든 정당이든, 시민사회 단체든 민영화가 두렵다면 민영화의 필요성이 대두되지 않게끔 평소에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기업의 적자와 방만한 경영이 민영화를 불렀듯이,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민영화를 부르는 것이다.

무엇보다 건보 재정을 확충하고 공단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며 의료서비스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수가를 현실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건강보험만으로도 충분합니다"라고 외쳐야지 뜬금없는 괴담이나 퍼뜨려서는 도리어 정치적인 선동으로 비춰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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