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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후성 유전학으로 본 새로운 삶

청진기 후성 유전학으로 본 새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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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2.1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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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향 주 박사(세연가정의학과의원아크로마인드연구소 원장·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겸임교수 )

▲ 송향 주 박사(세연가정의학과의원)

수년전부터 당뇨 관리를 받고 있는 A씨가 수개월 동안 치료 중단 후 오랜만에 나타났다. 그동안 어머니가 수년 동안의 당뇨 합병증으로 앓다가 돌아가셔서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도 같은 당뇨의 합병증으로 몇 년 전 돌아가신 기억이 났다.

A씨는 많이 지쳐 보였다. "선생님, 부모님이 모두 당뇨 합병증으로 돌아가셨으니 나도 같은 병으로 죽겠죠? 당뇨는 치료되는 병이 아니라는데 치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난 당뇨병 유전자가 있는데 약 먹고 운동한다고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그가 그동안 치료를 중단한 이유이다.

이렇게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자 또는 가족력 때문에 '난 안돼. 그리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어'라고 단정 짓고 삶을 게으르게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과연 사람은 자신이 갖고 태어나는 유전자에 의해 일생의 특성이 정해지는 건가? 2010년 타임지의 머리기사 제목이 생각난다. " Why your DNA isn't your destiny?" 스웨덴의 외딴 지역인 노르보텐 주민을 대상으로 100년 동안 3대에 걸쳐 수명에 관한 연구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이 지역이 3대에 걸쳐 흉년을 겪었을 때와 풍년을 겪었던 해가 있었는데 그때 어떤 시기에 경험을 한 주민이 오래 살았는지를 조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풍년에 잘 먹고 살았던 경험이 있는 주민이 그렇지 못한 주민보다 수명이 짧았는데,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자식과 손주까지도 풍년을 겪지 못한 주민의 자식과 손주보다 수명이 10년 정도나 짧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유전자가 돌연변이로 바뀐 것이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사람의 신체·감정·생각·행동적 특성을 무엇이 결정하는가?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전해지는 유전인자가 개개인의 삶의 특성을 통제한다는 다윈으로부터 시작된 '유전자 결정론'은 DNA가 바로 유전인자임이 밝혀졌다.

그 후 DNA의 집합체인 게놈을 완전히 파악하려는 인간게놈프로젝트(1990~2001년)로 절정에 이르렀다. 인간게놈프로젝트로 약 2만 4500개의 유전자가 발견됐고 각 유전자를 구성하고 있는 기다란 줄모양의 DNA는 여기저기에 스위치가 있어서 어느 스위치가 켜지는가에 따라서 2000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단백질이 만들어질 수 있음이 밝혀졌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에서 유전자 결정론의 심각한 결함이 지적됐고, 이것은 유전자가 자신의 기능을 on·off 할 수 있는 자가스위치 기능이 없다는 것이다. 즉, 환경에서 무엇인가가 유전자를 켜 주거나 꺼 주어야만 하는 것으로 이때 유전자의 활성을 조절하는 환경요소가 에피게놈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염기서열을 변화시키지 않고 유전자활성을 조절하는 것으로, 이 부분의 연구가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후성유전학이다.

이러한 후성유전학의 발전으로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우리에게 무한한 희망을 주는 소식이다. 인간이 유전자결정론에 의한 게놈에 의해 통제되는 생화학적인 기계일 수밖에 없는 수동적 존재에서 DNA라는 설계도의 변경 없이도 환경자극의 주체인 몸과 마음에 의해서 유전자 활성이 변동될 수 있는 능동적 주체로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에피게놈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연구자들은 어떤 환경이 유전자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는 100년이 더 걸릴 연구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도 부모로부터 받은 게놈이 나의 삶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능동적으로 주어진 게놈을 잘 이용하는 데에 삶의 성공이 달려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지평을 열고 있다.

노르보텐 주민에게 나타난 현상은 후성유전학으로 풀이될 수 있고, 후성유전학적 변화가 염기서열 변화 없이도 후대에 전달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이야기는 2010년 타임지에 " Why your DNA isn't your destiny?" 라는 제목으로 발표됐다.

지금은 에피게놈 프로젝트가 진행 중 이지만 인간은 축적된 삶의 경험으로 유전자활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즉, 나의 몸과 마음을 잘 훈련시키면 신체·감정·생각·행동적 특성이 바뀌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과 같은 암에 대한 다양한 치료방법이 덜 발달됐던 시기인 1985년 Lancet에 발표된 연구를 보면 암 환자의 삶에 대한 태도에서 절망한 환자는 20%의 생존율을 보인 반면, 병마와 적극적으로 대처한 환자는 70%의 생존율을 보이고 있다.

즉, 병에 대한 적극적 수용과 태도가 암의 생존율에 영향을 준 것이다.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수행능력을 펼치면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 적절한 마음가짐에 있는 것이고 이 마음가짐은 훈련으로 향상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부모의 유전자를 핑계 삼는 것 보다는 후성유전학의 관점에서 보면 적극적인 몸과 마음의 관리로 타고난 유전자의 바탕위에 삶을 최고의 경지로 살 수 있는 선택이 바로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오늘도 순간순간을 깨어 있으며 해야 할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삶이 나의 좋은 유전자를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위대한 작곡가는 영감이 떠오른 뒤에 작곡하는 것이 아니라, 작곡을 하면서 영감을 떠올리고 매일 작곡을 한다고 한다. 그들은 영감을 기다리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위대한 선인들은 그들의 유전자를 훈련시키는 법을 미리 알았던 지혜로운 선배들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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