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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의대교수는 어떻게 범죄자가 됐나

잘나가던 의대교수는 어떻게 범죄자가 됐나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4.02.08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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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사건' 주치의 세브란스병원 박모 교수 실형 파장
법원 "진단서는 건강상태 확인의 가장 신빙성 있는 자료"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의 주범인 윤길자씨(69)의 남편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67)과 형 집행정지를 받을 수 있도록 허위진단서를 작성해준 혐의로 기소된 박모 연세의대 교수(55)에게 실형이 선고돼 파장이 일고 있다. 

법원은 주치의 박모 교수의 허위진단서 작성 혐의를 상당부분 인정하면서도 "비정상적이고 반복적인 형 집행정지와 연장 결정으로 인한 합법적 탈옥이 진단서를 작성한 의사에 의해서만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양형 이유를 밝히면서 집행유예 없이 징역 8월을 선고했다.

이번 사건은 현행법상 허위진단서 작성죄와 관련해 의사의 재량권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를 진지하게 조명한 첫 사례로 주목할만하다. 그간 허위진단서 작성은 보험금 수령을 목적으로 한 진단서 의뢰 등 비교적 판단 근거가 명백한 경우에만 적용돼왔다.

서울서부지법 제12형사부 김하늘 부장판사는 7일 선고에서 "의료계에서 상당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던 의료인이 전혀 사실에 없다기보단 조금씩 (사실을) 바꿔가면서 진단서를 작성한 사례로, 어디까지를 허위진단으로 볼 것인지 선도적 판결이 될 것"이라며 "재판부에서도 고민이 많았다"고 밝혔다.

◇진단서 작성의 의미=재판부는 판결 이유를 설명하면서 진단서의 정의를 '기본적으로 환자의 건강상태에 대해 전문가인 의사의 판단을 담은 일종의 감정서적 성격'을 담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때 '허위'에 대한 판단은 사실에 관한 것이든, 규범에 관한 것이든 불문한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다.

김 부장판사는 "박 교수쪽 변호인은 윤길자씨가 수감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이 규범적 문제이고, 사실 판단이 아니기 때문에 허위진단서 작성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는 의사 자신이 가진 전문지식에 대한 기본적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허위사실 판단의 객체가 된다"고 밝혔다.

나아가 진단서는 형사사건에 있어서 상해죄나 민사사건의 손해배상 범위를 판단할 때 뿐만 아니라 국가유공자 해당 여부, 산업재해 판별 등에서도 중요한 증거가 된다.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데 있어서 가장 신빙성 있는 자료이기 때문에 허위진단서 작성 시 해당 의료인을 형사처벌하는 규정을 특별히 두고 있으며, 이로 인해 처벌을 받을 경우 의료법상 결격 사유로도 규정돼 있는 것이다.

◇당시 정황·타과 소견으로 사실 검증=박 교수는 이날 선고에서 문제시된 세 차례의 허위진단서 발급 혐의 가운데 유방암 수치 관련 소견을 기재한 첫 번째 건을 제외하고 2건에 대해 유죄가 인정됐다.

2010년 7월 진단서에서 '압박 골절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라고 기재했지만 앞서 타 과에서의 진료 당시 "요추 상태가 안정돼 더 이상 다른 치료를 요하지 않는다"는 소견이 있었고, 윤씨가 입원생활을 하면서도 가족과의 식사를 이유로 무단이탈 하는 등의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방송 등에서 쟁점이 된 마지막 진단서에 기재된 내용 역시 실제 윤씨의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해당 진단서에서 박 교수는 '환자가 67세 고령으로 네 차례 수술 등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와 신체적 허약 상태, 퇴행성 골다공증, 불면증, 파킨슨병 진단 등으로 수감생활이 몸 상태에 극심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썼지만, 이는 다른 의사의 증언과 엇갈린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병명에서 특히 파킨슨병 진단에 대한 부분은 명백히 신경과 협진결과에 반하는 허위"라면서 "치료가 끝났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부분에 대해 마치 환자가 현재에도 그러한 병을 앓고 있고 집중적 입원치료를 요하는 것처럼 허위사실을 기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동선 다르다" 금품 수수 혐의는 무죄=주치의와 영남제분 사이에 오간 돈은 없었을까. 

양측 기소 당시 검찰은 류 회장이 미화 2만 달러를 인출한 날 박 교수가 1만 달러를 입금한 사실과, 같은 날 세브란스병원 인근 음식점에서 류 회장이 점심값 10여만원을 계산한 사실로 미뤄 금품이 오갔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세브란스병원 조사 결과 당시 피고인 동선이 거의 다 파악됐다. 당일 오후 12시 35분까지 수술을 한 것으로 돼 있는 박 교수가 44분까지 음식점으로 이동해 식사를 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직접 증거가 전혀 없다"며 배임수재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윤씨의 형집행정지를 공모하고 백억대에 이르는 회사 및 계열사 자금을 빼돌리거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구속기소된 류 회장에게는 징역 2년이 선고됐다. 실형이 선고된 것에 강한 유감을 표시한 박 교수측은 항소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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