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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사들은 사회적 영향력을 어떻게 얻어냈나?

미국 의사들은 사회적 영향력을 어떻게 얻어냈나?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4.01.17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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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환자 신뢰 속 정부 개입 효과적으로 차단
타 직종 '포용', 철저한 자기규제 → 권익 향상

 ⓒ의협신문 김선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09년 미국의사협회(AMA) 연례회의에서 의료보험제도와 관련된 연설을 한 사실이 우리나라 의료계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의사협회 행사에 보건복지부장관 조차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우리 현실과 대조됐기 때문이다.

AMA 행사의 대통령 연설은 미국 의사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의사들이 국민의 절대적 신뢰를 받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는 나름의 역사적 배경이 있으나, 한국 의료계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분도 있다는 지적이다.

조병희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주최로 16일 열린 '의협, 어디로 나아가야 하나?' 주제 토론회에서 미국 의사들이 사회적 영향력 확대를 위해 추구했던 방향을 소개했다.

가장 먼저 미국 의사들은 교육개혁을 통해 의사가 의료의 전문가이자 연구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한 사실을 꼽았다. 의사를 단순한 '직업인'에서 '전문가'로 격상시켜 비전문가를 의료시장에서 축출하는 명분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의협이 '의학협회'란 명칭을 '의사협회'로 바꾼 것은 스스로 아쉬운 부분이라는 지적이다. 조 교수는 "'의사협회'가 의사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기관으로 비춰지는 것과는 달리 '의학협회'는 연구자 집단, 즉 전문가들의 소사이어티라는 의미가 강해 직업인으로서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의학의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전해준다"고 말했다.

특히 의사-환자간의 관계 구축이 의사의 사회적 영향력 증진에 매우 중요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경우 의료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초기부터 의사-환자 관계를 철저히 수립함으로써 정부가 의료에 개입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 주도로 의료보험제도가 만들어지면서 의사들은 환자와 신뢰관계를 구축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시장에 내몰리게 됐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의사들은 의사-환자 관계라는 밑천이 없는 상황에서 국민 없이 외롭게 싸워야 하는, 외톨이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의사가 아닌 직종에 대한 포용 역시 사회적 영향력 향상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경우 간호사가 의사의 지도아래 처방까지 내릴 수 있는 실질적 역할을 보장하고 있는데, 미국 의사들은 이를 의료영역의 침범으로 보는게 아니라 의료시장 밖에서 유사의료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차단효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조병희 교수 ⓒ의협신문 김선경

조 교수는 "우리나라 의사들은 의료시장을 너무 협소하게 그려놓고, 의사가 아니면 절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며 "이는 의료영역 밖에서 유사의료시장을 창출하는 결과로 이어지며, 궁극적으로 의사의 영향력 축소로 귀결된다"고 밝혔다.

이 밖에 의료시장이 체계적으로 분할돼 의사들끼리 경쟁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성해야 하며, 의사 사회 스스로 의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사회적 명분을 쌓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조 교수는 "미국에서는 특정 의사의 의료사고 이력, 환자에 지급한 보상액 등을 모두 공개돼 있다"며 "의료과오를 공개하는 것이 오히려 환자들에게 신뢰를 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진행중인 의사들의 투쟁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타냈다. 조 교수는 "의사들은 우리나라 의료의 가장 큰 문제점을 '저수가'라고 보고 있는데, 근본적인 문제는 대형병원, 즉 의료자본 세력이 의료시장을 독과점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수가를 올린다는 것이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일차의료가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현 정부의 의료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지 않고, 의사들이 노조와 연대하고 있는 보기드문 상황에서도 정부의 강력한 정책추진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 뒤에 더 큰 세력, 즉 자본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의료계 관계자들은 의협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다양한 내부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원중 대한개원의협의회 기획이사는 "국민이 의사들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된 데는 과거 의사들이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봉사·기부 등 사회환원에 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조경희 대한의학회 보건교육이사도 "의료계가 국민건강을 위해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는지, 우리 자체의 반성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제도 개선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김영완 충청남도의사회 대의원회 의장(대의원회 대변인)은 변호사협회를 예로 들며 "의협의 개별 의사를 대표하는 단체에 머무르지 않고, 병협·개원의협·의학회·여자의사회·시도의사회를 모두 아우르는 의료계 종주단체로 격상될수 있도록 의협 자체 정관 개정은 물론 의료법 개정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 앞서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은 "의료제도의 후퇴를 막아내지 못한 원인은 우리 의료계 스스로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의료의 기본적 원칙과 가치가 붕괴되는 현 시점에서 외국 의사단체가 걸어온 길을 밴치마킹해 앞으로 의협이 나갈 길을 모색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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