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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은 왜 '총파업'이란 극단을 선택했나

의사들은 왜 '총파업'이란 극단을 선택했나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4.01.1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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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 결행되면 집단휴진 14년만에 재현
의사 옥죄는 제도 봇물, '벼랑끝' 절망감 팽배

 ▲1월 11일 '총파업 출정식'에서 의료계 대표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다짐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가 총파업을 결의했다. 정부가 원격의료·영리병원 허용 정책을 철회하지 않고, 건보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약속하지 않을 경우 오는 3월 3일부터 전면적인 휴진투쟁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총파업 돌입 여부는 의협 전회원의 여론 수렴을 거쳐 결정키로 했으나, 현재 분위기로는 파업 강행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총파업이 실제로 감행된다면 이는 2000년 2월 의료계 1차 파업투쟁 이후 14년 만이다.

의사들이 극한 선택에 이르게 된 배경에는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왜곡이 더 이상 방치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절망적 위기의식과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40년 가까이 지속돼 온 원가 이하의 저수가 체제는 의사들에게 비보험·편법진료를 강요하며, 최선의 진료가 아닌 경제적 진료를 택해야 하는 양심의 갈등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법적 의무인 건강보험 국고지원금을 최근 10년간 9조원 가까이 미납하면서도, 정부는 오히려 건보재정 안정화란 미명 아래 진료를 통제하는 온갖 규제와 감시로 의사들의 소신진료를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

의사들을 쥐어짜 만들어낸 건보재정 흑자분은 보장성 확대정책에 대부분 소요되며 정부의 생색내기에 일조한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건강보험 재정의 누적 흑자는 11조77억원으로 사상 처음 10조원을 넘어섰다. 정부는 이 흑자분 역시 박근혜정부의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재원으로 쏟아붓겠다는 계획이다.

교과서에 따른 진료는 '부당청구'로 삭감되기 일쑤고, 시도 때도 없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이닥치는 심평원 직원들의 고압적이고 무분별한 현지조사는 의사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고 있다. 의대에서 심평원 심사지침을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하는게 낫겠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의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의사들은 이렇다 할 법적·제도적 보호장치 없이 의료사고의 위험 속에 떨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의 외면은 외과계열 기피 현상을 더욱 심화시켜 분만시설이 부족한 분만취약 지역이 2012년 기준으로 전국에 48곳이나 되는 기현상을 낳았다. 산모가 아기를 낳다 사망하는 비율인 모성사망률이 2008년도 대비 2011년도에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에 대한 죄책감은 의사 혼자의 몫이다.

 ▲2013년 12월 15일 여의도 문화공원에서 열린 '전국의사 궐기대회'에는 3만여명의 의사들이 운집했다. 

거부할 수 없는 협상...의사는 노예인가?

의료전달체계의 붕괴가 동네의원을 벼랑끝으로 몰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한 진료비 비중은 2002년 병원급 의료기관 50.69%, 의원급 의료기관 49.31%로 엇비슷했으나, 10년이 지난 2012년 현재 57.69%와 32.31%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감기 같은 가벼운 질환자를 놓고 대형병원과 동네의원이 경쟁한 결과다. 사정이 이런대도 정부와 지자체는 1차의료기관을 보호하는 대신, 보건소·보건지소를 확충하고 진료기능을 강화함으로써 동네의원의 몰락을 부채질 하고 있다.

극심한 경영난으로 인한 동네의원의 폐업이 줄을 잇고 있다. 2012 기준 하루에 동네의원 4곳이 문을 닫았다. 2011년도에는 의원은 1821곳이 개원했고 1625곳이 폐업해 하루 445개꼴로 간판을 내렸다. 심각한 경영난은 의사들로 하여금 힘들게 갈고 닦은 전문 지식까지 포기하게 만든다. 외과 전문의가 '외과' 간판을 걸고 개원하는 것은 자살행위이며, 산부인과 전문의가 분만 대신 피부미용치료에 몰두하는 세태가 돼버렸다. 

물가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수가 인상률은 의료계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라는 요식행위를 거쳐 매년 '협상'이란 이름으로 둔갑된다. 의사에겐 협상에 참여하지 않을 권한도, 협상 결과를 거부할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정부는 마치 은전을 베풀 듯 매년 한 자리수 초반의 인상률을 던져준다. 지난해 6월 결정된 2014년도 의원급 의료기관 수가 인상률 3.0%가 유형별 수가협상 도입 이래 역대 최고치다.

저부담-저수가-저급여를 적정부담-적정수가-적정급여의 선순환 구조로 바꾸자는 의료계의 목소리는 십수년째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고 있다. 국민의 조세 저항이 뒤따르는 보험료 인상 대신, 이미 고착화된 저수가 기조를 유지하며 의사를 쥐어짜는 것이 정부로선 매우 편리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최근 2년간 의사들의 절망감 극에 달해

의사의 목을 조이는 상황은 2012년 들어 더욱 노골화 됐다. 2012년 7월 포괄수가제 강제 확대시행에 대해 의료계가 의료의 질 하락과 그에 따른 국민건강 폐해를 우려하며 반발하자, 정부는 이를 의사들의 수입과 결부시켜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했다. 의협이 토요 집단휴진을 결의하자, 보건복지부 공무원은 '의협 집행부 교체명령을 내릴수 있다'는 망말로 협박하기도 했다.

2013년 초부터 본격화된 리베이트쌍벌제의 소급 처벌은 의사들에게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안기고 있다. 합법이라는 영업사원의 말에 속아 졸지에 전과자 신분이 될 위기에 처한 동료를 보며 의사들은 가슴을 치고, 무엇보다 가족 같던 환자들의 의심 가득찬 눈초리에 괴로워해야 했다.

단순 성추행 만으로도 10년간 의료기관 개설 및 취업을 금지하는 아청법(아동및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역시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 악법이라고 의사들은 성토한다. 벌금형만 받아도 사회적 사망선고나 다름 없는 10년 의사면허 정지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연이어 터진 진료실 폭행 사건과 이를 바라보는 시민단체의 삐딱한 시선에 울분을 삼켰다. 2012년 8월 경남 양산의 여자 신경정신과 의사가 환자가 휘두른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고, 2013년 2월과 7월에도 의사가 환자의 흉기에 찔려 생명을 위협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응급실에서 전공의가 환자나 보호자에게 폭행 당하는 일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로 일상적인 풍경이 돼버렸다.

의사를 폭행하는 행위는 결국 환자의 피해로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국회에 제출된 '의료인 폭행 방지법'은 정작 환자단체의 반대로 발목 잡혀 있다. 의료인 폭행 방지법을 '의사 특혜법'이라 부르는 환자단체 대표는 '매맞기 싫으면 의사 하지 말라'는 발언으로 의사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2000년 6월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잘못된 의약분업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결의대회'. 전국에서 4만5000면의 의사들이 참석했다. 

성난 의심(醫心)에 기름 부은 '원격의료'

짓밟힐대로 짓밟힌 의사들의 자존심이 분노로 바뀌어 분출되기 시작한 것은 정부가 원격의료 허용 추진을 본격화하면서 부터다. 포괄수가제 강제 시행과 마찬가지로 정부는 의료계의 주장을 철저히 외면한채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를 허용하기 위한 입법절차에 들어갔다. 여기에다 사무장병원의 합법화가 예상되는 의료기관 영리자법인 설립 허용 방안의 국회 통과가 임박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의사들의 위기감은 급속히 팽창했다.

의협이 지난해 9월 전국의사대표자회의를 열어 비상체제로 전환한데 이어 11월 11일 '의료계 총체적 위기상황' 선언과 대정부투쟁을 선포한 이후 의사들의 결속력은 가속화됐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3만명에 달하는 의사들이 모여 12월 15일 여의도 문화마당을 가득 메운 것은 현재 우리나라 의사들이 처한 절박한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정부 투쟁이 2012년 포괄수가제 반대 투쟁 당시와 비교해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정부에 대한 불신이 정도가 훨씬 더 크다는 점이다. '의정협의체'를 제안하며 화해의 제스쳐를 보낸지 불과 일주일도 채 안돼 원격의료·영리병원 홍보 광고를 언론사에 대대적으로 게재하는 보건복지부의 이중성에 의사들은 치를 떨고 있다.

이번 기회를 도화선으로 왜곡된 건강보험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에 나서자는 의협 지도부의 투쟁 노선에 대다수의 의사들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투쟁에 대한 의지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의료계 투쟁이 의사의 전문가적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한다. 11일 의료계 총파업 출정식에서 "나는 양심을 지키고 싶을 뿐이다!"라고 외친 한 의사의 절규는 현재 의사 사회의 분위기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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