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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삶 낯선 세계를 느끼고 공감하며 "그들이 내게로 왔다"

다른 삶 낯선 세계를 느끼고 공감하며 "그들이 내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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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2.0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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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품고 뭍으로 돌아오다'
박수현의 선박의사 체험기 ⑤

 

식사 시간·항해 상태·정박 예정지·선상행사 계획 등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지만 그 중에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뭐니 뭐니 해도 학생들 이야기다.

"닥쌤, 우리 학생들 중에 수업중에 아주 하루도 빠짐없이 잠을 자는 아이가 있어. 깨우고 혼내고 벌을 줘도 그냥 끊임없이 자는 거 있지."

"나 누군지 알겠다. 내 시간에도 계속 자."
"그런 애들은 의지가 없어서 그래. 요새 애들 약해가지고…."
한참 동안 뒷담화가 이어지다가 마지막 토스는 나에게 넘어온다.
"닥쌤, 걔 뭐 병이 있는 거 아닌지. 한번 불러서 이야기 좀 해보면 안될까요?"

사실 고백하건대 나도 유명한 잠순이였다. 엎드려 자지 않은 수업시간을 세보는 게 쉬울 정도로 '수업중'엔 '수면중'이었고, 집에서도 취침시간이 하루의 반 이상이 될 정도로 많이 잤다.

한 때는 1:1로 대화를 하다가 졸 정도였으니 내게 잠병·수면병, 혹은 기면증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 집중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즐겁게 놀 때는 잠은 아주 드물게 나를 두드렸으니 이것은 다른 문제였으리라.

잠이 많은 아이

그를 불렀다. 키가 크고 건강해 보이며, 얼굴이 하얗고 준수한 외모의 남학생이다. 먼저 수면건강 상태를 물었다. 사실 배 안에서는 3교대 근무이기에 수면 시간이 일정할 수가 없다. 그것도 8-8-8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4시간씩 근무를 바꿔야 하니 더욱 몸의 일정한 수면 패턴이 깨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들어보니, 그는 다른 스케줄의 친한 학생들과 이야기 하고 싶고 놀고 싶어, 그나마의 수면 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모양이었다. 항해 전에도 원래 잠이 많아 고민이었다고 한다. 수면건강 교육을 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해줬다. 나 또한 잠이 많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는 것.

잠을 자는 것도 사실 기회비용이기 때문에 잠을 자는 대신 다른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선택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들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 또한 자신의 몫이 된다는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지금 당장 친구가 가장 중요한 것도 맞고, 그렇게 시간을 쓸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첫 실습 시간이다. 만일 자신의 의무시간을 잠으로만 채워 버린다면, 나중에 그 아이를 가르쳤던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에겐 '불성실하고 잠만 자는 아이'라고 기억돼 버릴 거라고.

다른 게 아니라 그게 너무나 안타깝다고….

인생의 중요한 시간, 그리고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평판을 막 만들어가는 시기를 그렇게만 보내지는 말자고 이야기 했다. 나는 특히 주입식 교육 같이 내가 수동적인 입장에 취해있을 때 많이 졸았다. 부끄럽지만 대학 땐 교수님이 '자네는 밤에 아르바이트 하나?'라고 물었던 적도 있다.

잠이 쏟아지는 것을 다 참을 수는 없었지만, 대신 나는 깨어 있는 동안엔 남들보다 4배 이상의 집중력을 들여 공부를 했다.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 잠순이가 아닌 또 다른 에너지 넘치는 매력과 모습을 보여주고 어필하기 위해 노력했다.

개인적으로 많은 교수님들과 의논하고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찾아가기도 하고, 여러가지 활동을 하며 조언도 구했다. 잠을 많이 자는 것이 안타까운 게 아니라, 지금 그의 이미지를 스승들이, 선배들이 그리고 다른 학우들이 '잠' 그리고 '불성실함'으로 기억하는 것이 속상하노라고 이야기 하며 오랜 상담을 마쳤다.

여러 사람의 노력에도 그는 여전히 졸았지만, 나중에 만난 그는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게 생겼다고 했다.

이 외에도 항해 중 상담을 요청 받은 적이 여러 차례 있다. 사실 나는 상담 기술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며, 정신과학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기 때문에 가끔은 내가 해줘야 할 말들에 대해 고민도 많았지만, 교육과 사람과의 관계에 관심이 많았기에 몇몇의 학생·직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악몽을 꾸는 아이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여느 때와 같이 오전 진료를 시작하기 위해 방안에 들어갔다. 진료실에는 '선생님이 주무시고 계실 거 같아서…정말 정말 죄송하지만 너무나 괴롭고 무서워서 새벽 우황청심환을 가져갑니다'라는 한 학생의 쪽지가 남아 있었다.

어제 분명 늦게까지 약품정리를 하느라 자정이 한참 지나서야 잤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궁금했다. 오죽했으면 그 새벽에 지하부터 맨 꼭대기 진료실까지 올라와서 약을 찾아가야 했던 것일까? 그를 불러서 한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전에 먼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학생인지를 물어봤다.

대부분은 평범하고 조용한 학생이라고 했다. 그러다 그와 바닷가 활동에서 같은 조에 있던 조교가 특이한 점이 있었다며 이야기를 해줬다. 며칠 전 단체 활동으로 바닷가에 간 적이 있는데 그는 다른 동료과 시간을 보내지 않고 바다로 들어가 얼굴만 내놓고 누워있더라는 것이었다.

뭐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바다에 빠지면 두 시간 이상은 바다에 떠 있어야 한다고 해서 연습해보고 있다고 했단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울상이 돼 나왔다고…. 다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바닷물이 자꾸만 코에 들어가서 떠있지 못하겠다고….

처음엔 이 이야기를 듣고, 좀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혹여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 우리는 살아가면서 대화를 통해 마음 한구석 스며있는 아픈 흔적들을 서로 보듬으면서 세상을 받아들이고 적응해 나간다. 선상 실습 교육을 받고 있는 한국해양대학교 학생들.

그러나 그를 불러 이야기하며 그 내재된 두려움의 실체를 알고 나니, 안쓰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항해에 대한 위험은 여러 사람으로부터 들어 많이 접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환경은 생각했던 것 훨씬 이상이었나 보다. 우리가 항해를 나가 있는 동안 실항사로 배를 타고 실습 나갔던 학생 하나가 바다에 빠졌다가 72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 실항사는 함께 배를 탄 학생들의 동기이자 친구였다. 이런 일은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실수로 떨어졌을 수도 있고, 중국이나 다른 동남아 선원들과의 접촉 중에 일어나기도 한다. 배는 놀이기구처럼 확실한 안전장치가 있는 게 아니다.

배 밖으로 얼마든지 떨어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심지어 떨어졌다 하더라도 배 안의 다른 이가 바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소식을 듣고 함께 걱정하던 72시간 동안 나 또한 엄청난 공포감에 빠져 있었으니 그의 두려움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리라.

이야기를 들어보니 항해를 시작하고 나서 매일 매일 꿈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쫓아와서 두려움에 잠을 청하기가 힘들었단다.

우황청심환을 가져간 그 날엔 꿈에서 또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로부터 한참을 쫓기다 겨우 집에 들어왔는데, 엄마가 칼을 들고 자신을 죽이기 위해 서 있었다고 한다. 도저히 무섭고 힘들어 그냥 깨어 있을 수가 없어 약을 가져갔노라며 계속 사과를 했다. 나는 혼내려는 아니라 그냥 어떤 이야기가 있었을까 궁금하고 같이 공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출항 전 상선 실습 중간에 중도 포기하고 내린 다른 친구와 같이 방을 썼다고 한다. 그 친구는 배의 끔찍한 사고 이야기, 죽을 뻔한 경험, 그리고 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위험과 두려움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줬단다.

실습도 가보기 전에 친구의 악몽 같던 기억들을 함께 공유한 그의 불안감은 출항 후 절정으로 치솟았던 모양이다. 이번 항해는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생각보단 힘들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2학기 때 가야 하는 상선의 실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숨이 막힌다고 했다.

지금 함께하는 동기들 마저 없다고 생각해보면, 주변의 사람들이 지워지고 자신 혼자 낯선 환경에 놓인다고 하면 너무 무섭단다.

우리는 누구나 불확실한 환경을 상상하면서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 막상 가서 부딪혀 보면 그나마 할 만한 데 말이다. 힘들 것 같았던 과정들을 잘 이겨냈고, 어려운 실습 항해 역시 반 이상 지나가고 있는데, 그 동안 힘들었던 시간을 잘 버텨 준 것에 대해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노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도 잘 버텨나갈 수 있다고 격려하며 그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나에게도 수년간 의학도의 시간이 그랬고, 병원에 처음 나간 실습이 그랬다. 의사가 되고 나서도 그 과정, 과정들은 항상 무서웠다. 그는 그 후에도 가끔 찾아왔다. 다행이 무거운 소식들은 아니었다. 악몽은 잦아들고 있었고 우리는 사소한 잡담을 나눴다.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나면 내가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게 된다. 처음 구급차에 동승한 환자는 DOA로 응급실에 도착하기 전 이미 사망했고, 사망선고 열 번째까지는 붕어눈이 되도록 울었다. 한 때는 과연 이래서 내가 의사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할 정도로 무뎌지지가 않았다.

그 때 마다 먼저 길을 걸어간 선배들은 소주 한 잔을 건네며, 마음 깊이 담아두었던 환자들의 이야기를 해줬다.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그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마법처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생명이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좀처럼 당연해질 수는 없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모든 선배의사들이 앞에서 그것을 봐왔고, 곁에서 지켜줘 왔고, 판정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그 보편성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면서 수용도를 높여줬는지…. 우리는 이렇게 대화를 통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작은 스크래치들을 서로 보듬으면서 세상을 받아들이고 적응해나가는 것 같다.

내 세계가 아닌 다른 이들의 세계를 느끼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빛을 내려주는 통로 같은 의사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또 다른 꿈을 품을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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