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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료윤리학회 "비윤리적 제도 바꿔야 산다"

한국의료윤리학회 "비윤리적 제도 바꿔야 산다"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3.11.3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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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문제를 개인윤리로 몰아세워…"정부 의료정책 실종됐다" 개탄
의료윤리학회·의료정책연구소 29일 특별심포지엄…새회장 박석건 교수

▲ 한정호 충북의대 교수가 의료계가 직면해 있는 암울한 현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심정지 환자를 살리기 위해 2명의 의사가 번갈아 가며 심폐소생술(CPR)에 매달린 수고의 대가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11월 29일 한국의료윤리학회와 의료정책연구소가 공동으로 마련한 특별심포지엄.

'의료계의 윤리와 현실'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한정호 충북의대 교수(충북대병원 소화기내과)는 "눈물이 날 정도로 힘겨웠던 CPR의 대가가 고작 7만 4000원"이라며 "비상식적인 수가로는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다양한 편법을 동원하고, 굳이 필요치 않은 비급여 진료와 검사를 할 수밖에 없음에도 의사 개인의 도덕이나 윤리 문제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한 교수는 "약 한 달 동안 매일 소독을 해야 감염을 막을 수 있는 개방성 골절 환자의 경우 인턴 의사 1명과 전공의 1명이 간호사 2명과 함께 수술장에 들어가 30∼60분 동안 생리식염수·소독약·거즈·붕대를 동원해 드레싱을 해야 한다"면서 "개방성골절의 드레싱 비용은 최대 7000원에 불과해 3만원 정도인 재료대는 물론 인건비·물품비·수술장 유지비 등은 전혀 비용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다른 곳에서 수익을 올리지 않고는 유지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다른 곳에서의 수익을 정부와 시민단체는 과잉진료·비윤리적 행위로 몰아세우고 있다는 것.

의료윤리학회는 파격적으로 이날 정기학술대회 주제를 '대학병원과 개원가의 현실과 생존'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의료계가 직면하고 있는 의료공급·의료전달체계·환자쏠림·비효율 등 다양한 현상이 발생한 원인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분명히 짚어야 한다는데 무게가 실렸다.

유상호 한양의대 교수(의학교육학교실)는 "환자에 대한 혜택이나 성과보다 의사가 수행하는 업무의 양(수익)으로 해당 의사의 성과를 평가할 경우 상업주의 실적주의의 덫에 걸려들지 않을 수 없다"며 "건전하고 상식적이며, 합리적인 사람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잘못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시스템의 문제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개원의이면서 의료윤리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홍성수 원장(경기도 성남시·연세이비인후과의원)은 "정부는 최선의 진료를 실천할 수 있는 제도와 여건을 마련하지 않은 채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선심성 정책을 펴면서 의료계를 법적·행정적으로 압박하고 있다"며 책무를 방기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다.

이와 함께 의사 사회 역시 "전문가 집단으로서 변화하는 의료환경과 사회적 요구에 걸맞는 윤리적 입장을 적극적, 선제적, 지속적, 체계적으로 확립하고 실천함으로써 자율성을 확보하는 대신 현실안주를 통해 스스로 사회적인 고립을 자초했다"면서 "대다수 선량하고 성실한 의사를 보호하기 위해 의협과 의료윤리학회가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 역시 "의료대란 사태에 대해 언론과 시민사회가 '윤리적 인간론'이 아닌 '윤리적 제도론'의 관점에서 접급했다면 윤리적 의료를 만들어 가는데 큰 힘이 됐을 것"이라며 "책임있는 보건의료정책 관련자들의 진정성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한국의료윤리학회 특별심포지엄에 참석한 각계 전문가들이 의료계의 현실과 윤리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은 다양했지만 지향점은 대부분 같았다.

이동규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은 "한국의 건강보험을 사회가 위험을 분산하는 의료보험으로 할지,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유럽식 의료보장으로 접근할 것인지 원칙과 철학을 분명히 가다듬어야 한다"고 밝혔다.

"의료정책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의료계와 병원계가 제각각 목소리를 낼 것이 아니라 한 데 모여 국민의 정서와 감성에 호소해야 한다"(조동찬 SBS 의학전문기자)는 의견과 "건강보험 재정이 남으면 치매검진사업이나 신약 항암제를 비롯한 새로운 보장성 강화 정책에 투입해 생색을 내려하지 말고 원가에 턱없이 못미치는 기존의 소독료·심폐소생술 등에 투입해야 한다"(한정호 충북의대 교수)는 지적도 나왔다.

정유석 의료윤리학회 교육이사는 "의협이 원격진료와 영리병원 반대를 주장하며 대정부 투쟁에 나섰는데, 과거와는 달리 반모임과 지역별 비상총회를 열어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단순한 의사들만의 반대가 아닌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슈를 잘 지적하고 있다"고 평했다.

의료윤리학회 개회식에 참석한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은 "원격의료의 도입은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현상을 가속화하고, 지방 중소병원들의 몰락을 초래해 의료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며 "대학과 학회가 의료계와 논의없이 강행하려는 정부정책을 함께 막아내는데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 박석건 신임 한국의료윤리학회장(단국의대 교수)
한편, 의료윤리학회 총회에서는 박석건 단국의대 교수(단국대병원 핵의학과)를 새 회장으로 뽑았으며, 신임 감사에 이원식 한국화이자제약 의학부 전무와 임채만 울산의대 교수(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를 선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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