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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환경 '개선'하려다 '개악' 될수도

수련환경 '개선'하려다 '개악' 될수도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3.11.25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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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교육연구회 23일 '근무시간 상한제' 조명…"지원없이 졸속 시행" 비판
준비없이 강행하면 수련교육 질 하락·기형적 외과의 양성…환자에게 피해

▲ 외과의사들이 '외과 전공의 근무시간 상한제,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길연 대한외과학회 부총무·우고운 한전병원 외과주임과장·서상균 중앙대병원 외과 전공의·김재중 대한의학회 수련이사.ⓒ의협신문 송성철
전공의들의 살인적인 근무시간을 줄여줌으로써 의료의 질을 높이고, 환자안전을 담보하자는 취지에서 추진되고 있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안'이 충분한 준비없이 졸속으로 강행될 경우 오히려 교육의 질적인 저하를 야기하고, 전문의들의 일자리를 줄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료시스템의 기반 마저 흔드는 악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대한외과학회 산하 외과교육연구회는 23일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의학회·전공의·외과학회·중소병원·의학교육 분야 관계자를 초청, '외과전공의 근무시간 상한제,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으로 빚어질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집중조명했다.

참석자들은 전공의의 수련근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방향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전공의 근무시간 상한제 시행으로 인한 수련환경의 개선으로 인해 질적인 저하 문제와 더불어 대체인력의 제도화·수련비용 지원 등이 먼저 개선되지 않으면 오히려 더 많은 부작용만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김재중 대한의학회 수련이사는 "전공의들의 업무를 줄여줄 수 있는 지원인력이 있어야 수련과 환자진료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간호사를 적절히 교육해 진료보조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공의 수련환경이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전공의 수련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도 했다. 김 수련이사는 "이같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련환경 개선을 밀어붙인다면 수련병원들은 수련의 목적보다는 진료에 투입되는 시간에 맞춰 수련환경을 개선하려 들 것"이라며 수련의 질적 저하를 우려했다.

서상균 전공의(중앙대병원 외과)는 "전공의 근무시간 상한제가 지켜지는지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더불어 표준근로계약서와 근무시간 상한제에 대한 국회 입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대체인력으로 거론되고 있는 전문간호사의 업무수행을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지 명확한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며 "전문간호사의 의료행위에 대한 기준을 정해야 하고, 기준에 대해 정할 때 전공의와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전공의 근무환경 개선이 위기에 놓인 중소병원에는 직격탄이 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외과 전문의의 설자리를 줄이고, 지역의료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우고운 한전병원 외과주임과장은 "국공립병원을 제외한 전국 중소병원의 대부분은 전공의 지원자가 없어 수련병원자격 취소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며 "이런 사태가 가속화되면 외과의사의 수련은 대학병원이나 대형병원 위주로 진행돼 기본술기나 소수술은 외과학회 연수교육에서나 수행하게 되고, 편향적인 수련교육을 받는 기형적인 외과의가 배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 과장은 "중소병원의 몰락과 부재로 인한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고, 외과전문의들의 일자리를 줄일 뿐만 아니라 병원 직원들의 실직으로 이어져 지역경제의 어려움과 국가의료시스템의 기반이 흔들리는 악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문제에 대해 대한외과학회의 대처방안을 밝힌 이길연 경희의대 교수(대한외과학회 부총무)는 "병원별 전공의 숫자를 감안할 때 진료지원 및 보조인력 없이는 근무시간 제한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며 진료지원간호사(Physician Extender)를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부총무는 "근무시간제한으로 전공의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중환의 경우 환자의 안전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미국 학계의 보고가 있다"며 "학회 차원에서 업무효율화를 모색하고, 외과인턴제 도입과 술기 교육센터를 비롯해 적은 시간동안 효율적으로 전공의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수련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공의 근무시간 상한제가 외과 전공의의 직업만족도 향상과 환자 안전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외과 교수의 업무량을 늘리고, 직업만족도를 감소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노혜린 인제의대 교수(의학교육학교실)는 "근무시간 상한제에 따라 전공의가 주어진 업무를 시간 안에 해낼 수 없게 됨에 따라 교수의 업무량이 늘고, 삶의 질 저하와 직업만족도가 떨어지게 된다는 보고가 있다"며 "전공의 교육시간과 연구시간도 줄어들고, 환자 진료의 연속성과 질 측면에서 교수들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노 교수는 "전공의의 삶의 질 뿐만 아니라 교수의 삶의 질 또한 보장하려는 노력과 함께 앞으로 근무시간 상한제에 의한 영향을 조사하고, 환자안전에 효과적인 교육과정을 체계화함과 동시에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학회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면서 "정책 개선을 위한 대정부와 이해관계자 관리 활동은 개인적인 인맥에 의한 노력보다는 조직이나 팀이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토론을 지켜본 각 대학과 병원 외과의사들은 근무시간 상한제를 별다른 준비가 없는 상황에서 졸속으로 도입해선 안된다는 의견에 무게를 실었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근무시간 상한제에 맞춰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결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왔다"며 "수술이 하고 싶어 어렵게 외과를 지원한 전공의들이 정작 필요한 수술을 해 보지도 못하고 수련을 마치는 부작용이 예상돼 진료보조인력으로 모자라는 인력을 채울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비용이나 제도적인 지원책은 없이 의료계에 피해를 주면서 생색만 내려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급기야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졸속으로 제도 시행을 밀어붙이기 전에 전국적인 서명운동을 펼치거나 전국의 외과의사들의 모임을 열어 강력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는 주문도 나왔다.

한원곤 대한외과학회 신임회장은 "1년 임기 동안 전공의 교육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올인하겠다"며 적극적인 의지를 밝혔다.

사회를 맡은 김선회 대한외과교육연구회장은 "과마다 특성이 있고, 병원마다 여건이 다 다른데 일률적인 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강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전문가단체에 맡겨 자율적으로 개선방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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