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보령수필의사문학상 대상작...'삼일'
제9회 보령수필의사문학상 대상작...'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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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1.1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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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보령수필의사문학상 대상작
손춘희(동아대병원 호흡기내과)

첫째 날, 우리는 모였다.

뇌사판정위원회 간사 간호사가 탁자 위로 유인물을 나누는 동안 빈자리가 채워졌다.

▲ 손춘희(동아대병원 호흡기내과)

"13세 여자, 뇌 교모세포종 환아입니다. 환아는 2년 전 수술 후 6차의 항암제 치료도 마쳤지만, 종양이 재발해서 수두증이 생기고 의식 상태가 악화돼 2주 전 보호자가 장기 기증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엔 뇌사 상태가 아니어서 요양원으로 이송했다가 어제 호흡정지가 올 것 같다고 재이송됐습니다. 현재는 기계환기 중이며 뇌파는 미세하게 감지되고 있습니다. 질문 받겠습니다."

앵커가 뉴스를 읽듯 간사 간호사의 진행은 명쾌했다.
"아직 뇌사 상태는 아니죠?"
"예."
"암 환자도 장기 기증할 수 있나요?"
"뇌 교모세포종은 전신 전이가 거의 없어 가능합니다."
몇 가지 의학적 질문이 오고갔다.
"법대에서 왔습니다. 서류를 보니 보호자가 할머니던데 부모가 없습니까?"
"아뇨, 부모님은 계신데 이혼 후 각자 재혼하셔서 할머니에게 맡겨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럼, 친권자가 할머니로 되어 있나요?"
"그것까지는……."
"확인해 보세요, 친권자는 아직 부모일 수 있으니까."
10분의 휴회 중 김이 회의실 옆 내 방으로 왔다.
"뇌사자 1명 떴다며?"
"야, 뜨는 게 뭐냐? 너 그럴 때는 독수리 같아, 뇌사자 신장을 노리며 빙빙 돌고 있는."

김과 나는 의과대학 시절부터 외과와 내과로 진로를 정했고, '생각 없는 외과 의사 놈' '꼰대 같은 내과 선생'이라며 서로를 놀려댔다. 그리고 그런 힐난은 진짜 외과와 내과 의사가 된 뒤에도 여전했다.

"문제가 있어, 친권자 동의 여부가 불확실해."
"그게 무슨 문제인데?"
"윤리적인 문제지, 이놈아. 동의 없이 어떻게 남의 장기를 떼냐? 생각 없는……."
"친권자의 동의가 그 아이 의사인 줄 누가 아는데?"
늘 그렇듯이 김의 비아냥거림은 내 가슴을 찌른다.
"시끄러워, 나가라 이놈아. 어차피 오늘 결정은 안 될 거니까."
회의장에 다시 모인 위원들을 보며 간사 간호사가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잘 알아봤어야 하는데……. 현재 친권자는 어머니로 돼 있고, 어머니는 재혼해서 포항에 계십니다. 오늘은 안 되겠고, 내일 오시는 대로 동의서를 받은 뒤 새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 일러스트=윤세호 기자

둘째 날, 나는 자신이 없어졌다.

김은 아침부터 내 방으로 왔다.
"야, 너는 수술도 없냐? 아침부터 빈둥거리고."
"신장이 없어 사경을 헤매는 환자 한 명을 구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 이 아침에 어디 있겠냐?"

"재혼해서 아이를 버린 어머니가 6년 만에 찾아와서 동의해야 되는 일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갑자기 정색을 한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김이 특유의 냉소적인 말투로 되받았다.

"그 6년을 부모가 같이 살았다면, 자기 아이가 장기 기증을 진심으로 원했는지 알 거라고 생각해? 스무 살도 안 된 아이들이 자신의 죽음과 타인을 위한 장기 기증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 거라고 보세요, 사려 깊은 우리 내과 선생님은?"

물속에 빠진 듯이 귀가 먹먹해졌다.
"어차피 부모의 결정이겠지, 뭐……."

"그렇지,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일곱 명을 구하고 하늘로 떠난 천사, 이렇게 신문에 나는 거야, 내과 선생."

"너는 이런 상황에서 신장 이식을 할 용기가 나니?"
김의 눈길이 내 얼굴을 지나 창문 너머 어딘가로 멀어졌다.

"너, 2차대전 때 원폭투하 조종사 얘기 아니?"
뜬금없는 질문에 머뭇거리는 내 대답은 기다리지 않고 김은 얘기를 이어 갔다.
"부기장은 원폭의 버섯구름을 보며 탄식을 했대, '오, 하나님 우리가 무슨 일을 저질렀습니까' 하고."
"하지만 기장은 죽을 때까지 자기가 한 일은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한 옳은 일이라고 주장했어."
그걸 왜 지금 얘기하느냐는 내 얼굴을 보며 김이 말했다.

"너는 기장이 밤마다 무슨 꿈을 꿨을 것 같아?"
"……."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도시 전체가 불바다로 되는 광경을 평생 잊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갑자기 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 수술실에서 살아서 피가 통하는 신장을 만져 본 적이 없지?"
"그래."

"따듯하고, 촉촉한 두 개의 신장을 떼어낸다고 생각해 봐. 내가 신장을 적출하는 순간에 환자는 사망하는 거야. 물론 이미 환자는 뇌사 상태이고, 소생의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내가 마지막 생명을 거둬내는 거야."

김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져서 저 먼 지평선 아래로 꺼져 가는 것 같았다. "첫 번째 뇌사자 신장 적출을 하고, 그날 밤에 몇 번을 깼는지 몰라. 꿈에서도 그 따듯한 신장의 온기가 느껴졌어."

김의 얼굴에 가끔 병원 앞 맥줏집에서 늦게까지 대작하던 외과 의국원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나는 그걸 용기라고 하지는 않아, 그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눙치지."
"……."
"매번 나는 그 일이 겁나거든."

오후 회의에서 간사 간호사는 뇌파가 아직 편평해지지 않아서, 내일 오전쯤 최종 뇌사판정을 내릴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리고 환아가 누워 있는 중환자실을 들른 나를 보며, 수간호사는 인공호흡기의 산소 수치를 최대한으로 올렸기 때문에 장기 손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 했다. 하지만 나는 인공호흡기를 점검하러 가지는 않았다.

김나영. 침대 머리에 적힌 아이의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봤다. 왜, 나는 한 번도 뇌사판정자를 보러 오지 않았을까. 침대에는 회의마다 신경과에서 보고하던, 뇌간 반사도 소실되고 뇌파조차 감지되지 않는 뇌사자가 없었다. 작고, 오랫동안 병에 지친 여자아이가 누워 있었다.

아이의 여윈 가슴 깊이 꽂힌 관 안으로 기계가 불어 주는 숨길이 규칙적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정신이 남아 있는 동안에 아이는 마지막까지 엄마가 보고 싶었을까? 우리가 함부로 아이를 버렸다고 얘기한 엄마가 멀리서 혼자 울지 말고, 다시 돌아와 안아 줄 꿈을 버리지 못했을까? 자다가 머리가 아파 깰 때, 그리고 천천히 굳어져서 움직일 수 없게 되는 팔다리가 죽음의 징후인 줄 알았을까? 아파 우는 손녀를 안아 누이며, 할머니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내 손끝으로도 아이의 따듯하고 촉촉한 신장이 느껴졌다.

셋째 날, 김은 수술장으로 향했다.

울산, 서울, 대구에서 장기 적출 팀들이 속속 도착했다. 전국의 병원에서 새 신장과 간과 각막을 갈망하던 환자들은 수술장으로 옮겨졌고,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김은 나를 보고 능글맞게 히죽 웃고서 돌아섰다. 김의 등을 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생각 없는 외과 의사 놈.'

원폭을 탑재한 B29 조종사는 출발 전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김처럼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인지, 용기를 내어야 되는 일인지를 모른다. 하나의 가치를 위해 다른 가치를 희생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는 더더욱 모른다.

하지만 나는 김이 무사히 귀환하기를 빌었다. 그리고 오늘밤은 술을 마시지 않고도 편안히 잘 수 있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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