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의 송가는 열정의 박동으로…"이제 출발!"
환희의 송가는 열정의 박동으로…"이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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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1.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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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품고 뭍으로 돌아오다'
박수현의 선박의사 체험기 ②
 

준비과정은 항상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된다. 배 안에서는 무엇이 필요하지? 어떤 것을 꼭 챙겨가야 할까? 배를 오래 타본 적도 없었고, 주변에서도 항해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기에 두어 달이란 과정 동안의 필수품에 대한 예측이 불가했다.

더군다나 게으른 탓에 전날이 돼서야 부랴부랴 짐을 싸려고 하니, 완벽하게는 커녕 상식 선에서의 물품이라도 제대로 챙겨갈 수 있을 지가 의문이었다. 다행히도 여학생들도 상당수 있고 교관 중 여자도 있다고 하니 일단은 가서 될 대로 빌붙어 보자는 심정 반과 해야 할 공부에 대한 교재나 열심히 챙겨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대강 짐을 꾸렸다.

출발당일.

짐 싸느라 잠도 거의 못 잤다. 늦게 오면 두고 갈 거라는 농담 반 진담반의 문자에 대한 긴장과, 단체 생활에 늦으면 안 된다는 책임감으로 꼭두새벽부터 부산행열차를 타기 위한 처절한 행군이 시작됐다. 제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으나, 아뿔사.

나만 온전히 도착했을 뿐,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 앞으로의 돈줄이 돼줄 신용카드와 달러가 든 작은 지갑을 잃어버린 것. 가진 건 정신 없어 미처 지갑에 넣지 못한 운전면허증과 국제 학생증. 여권은 이미 비자 발급 때문에 배에 제출한 상태였다.

면허증이라도 써서 통장이라도 새로 만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전화가 온다. 출입국관리국에서 나와서 당장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꼬이고 꼬인 첫 항해

처음부터 꼬여도 뭔가 꼬였다. 출발 전부터 갑자기 여행이 가난해진 느낌이었다. 현지 화폐를 구하기 힘든 것도 있어, 가서 달러로 바꾸거나 카드를 사용하려던 생각은 이미 물거품이 되고 있었다.

배에 한번 올라서면 마음대로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다들 출항 전 준비로 바쁜 지라 내 상황을 보고 할 수도 없었다. 혹시 개인 활동을 하다 두고 가면 어쩌나라는 생각에 나는 조용히 배 안을 지키고 있었다. 아직 시작도 하기 전인데 첫 바람이 참 세다.

지갑 분실로 긴장을 하고 있던 찰나 배 전체에 방송이 들린다. 슬쩍 밖을 내다보니 배 바로 앞에 하얀 제복과 구두로 한껏 치장한 그들의 모습에 햇살이 내리며 더욱 눈 부시다. 자로 대고 그린 것처럼 똑바로 줄을 서고, 정렬한 후 엄숙한 표정으로 선서를 한다.

문득 처음 실습 돌 때를 회상한다. 책이 뚫어져라 엄청난 양의 지식을 머리 틈에 닥치는 대로 밀어 넣다가 가운을 처음 받았을 때의 그 설렘이란…. 선배들이 힘들다며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정장 위 가운을 입고 다니는 모습이 얼마나 멋졌는지, 그 모습을 멀리서 동경만 하다가 병원에 처음 실습을 나가 하얀 가운을 갖춰 입었을 때 우리는 그렇게 가슴 벅찼다.

첫 승선을 축하해주기 위해 부모님과 지인들이 잔뜩 와서 갈채와 환호를 보내는 모습에서 나는 학생만이 가질 수 있는, 열정의 박동, 화이트가운 세레모니를 떠올렸다.

선서를 하고 항해 정보를 보고하고는 승선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부심과 막중한 책임감이 가득 느껴졌다. 배의 생활은 눈부신 제복만큼 편하거나 멋있지 않다. 꽤 긴 시간, 좁은 배 안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3교대로 당직을 서는 고된 훈련과 힘겨운 일정을 보내야 한다.

▲ 육지와 배에 연결된 리본을 자르는 순간 그들의 가슴에는 열정과 열기로 뒤덮인다. 그것은 그들이 앞으로의 항해를 버텨나갈 수 있는 힘이었다.

이러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지만 이를 위해 그렇게 공부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끝에 제복을 입고 항해를 할 수 있도록 승낙 받은 것이기에 그렇게도 엄숙했다. 그 모습이. 배에 승선한 그들은 육지와 배에 연결된 리본을 자르는 의식을 한다. 뭍에서는 후배들과 지인들이 환호를 보낸다.

"내빈객들에게 손을 흔든다."

방송이 나오자 환호성과 함께 육지와 바다가 연결된 그 지점은 온갖 열정과 열기로 뒤덮인 듯한 착각이 든다. 그것은 그들이 앞으로의 항해를 버텨나갈 수 있는 힘이었다. 그 응원과 지지는 그들을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어줄 버팀목 같은 것이었다.

누구 하나 어두움이 없었다. 밝은 그 표정 그리고 그들의 젊은 에너지가 내게도 뜨겁게 다가올 정도로 인상 깊었다.

'가운을 처음 걸치고 눈빛이 반짝거렸던 나는 지금 어디 있는 걸까?'

지금 나는 어디에 있을까?

이제 출발이다.
출항 첫날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 아침밥 시간은 오전 일곱시부터이니 얼른 내려오세요."

조금 더 자고 싶었는데, 고마운 마음에 눈비비고, 세수도 안하고, 머리도 부스스한 채 내려갔다. 선박 안의 밥은 놀라울 정도로 맛있었다. 게다가 이른 시간 텁텁한 입맛을 가시게 하기 위해, 남은 밥을 기계에 꾹꾹 눌러 만들어놓은 누룽지를 끓여 만든 뜨끈뜨끈한 눌은밥도 나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배 안에서의 식사 시간은 인원체크의 기능이 있었다. 복잡한 배 안에서 기관실에 갇히거나, 바다에 빠지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따로 인원체크를 할 수 없는 경우 식사시간에 없는 걸 보고 찾아 낸다고 한다.

식사자리를 서로 지켜주는 것도 함께 있다는 것을 서로에게 인지시켜주는 배려였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몰랐던 나는 꽤 많은 아침을 걸렀고, 항해 날 아침 조차 먹지 못해서 걱정을 많이 시킨 민폐형 인간이었다. 대신 인원체크를 하는 다정한 삼항사의 전화를 통해 살아있음을 늘 증명했다.

식사를 하고 나니 선장님이 부른다. 갑판 위, 일반인들에게는 통제구역인 배의 키를 잡고 운전하는 곳으로 불러 이것저것 설명을 해준다. 방향을 조절하는 키에 대해서도 배워보고 실제 잡아보는 영광도 누리며, 망원경으로 바다 넘어 수평선에 떠오른 다른 어선을 구경하기도 한다.

 

바람의 속도를 재는 기계, GPS를 알려주는 기계, 배끼리 연락을 하는 기계 그리고 커다란 해도에 갈 곳을 각도기와 컴퍼스로 표현해 놓은 선으로 된 여정. 3등항해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기계를 설명해준다. 배의 구조가 어찌나 복잡하고 경이로운지 눈이 반짝거린다. 나침반을 보니 바람은 남쪽에서 불고 우리는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실제 방향과 속력을 나타내주는 'true' 그리고 상대적으로 달리는 배의 입장에서 바람의 방향과 그 속력을 나타내는 'relative'모드. GPS로 위치를 파악하고는 해도에 표시하는 방법도 배운다. 해도는 딱 보기엔 일반적인 지도처럼 생겼지만, 자세히 보면 전혀 알아볼 수가 없다.

이 어려운 용어는 뭐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뱃길 이름이라고 한다. 이처럼 배가 가는 길 마다 고유의 이름이 있고, 지도의 바다 곳곳에 표시된 작은 숫자들, 그것들이 수심을 표시한 것이라는 신기한 사실도 알게 됐다.

주변에 어선이 있으면 망원경을 들어 관찰한다. 배의 주행과 속도까지도 모두 파악해야 배에 맞춰 우리 배의 속력과 방향을 재설정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깜깜한 밤에도 불이 켜진 위치와 색에 따라 배의 방향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배에서의 로망은 뭐니뭐니 해도 배의 키다. 만화나 영화에서만 보던 배의 키. 그 배의 키를 잡는 방법도 알려준다. 모드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수동으로 키를 잡고 방향을 맞추는 수동 모드, 목표한 방향을 맞춰두면 그대로 조정되는 자동 모드, 지점을 설정하고 가는 GPS 모드.

쉽게 생각하면 '자동으로 놓고 운전하면 되겠네'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주변에 수많은 어선들과 장애물들이 있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실시간 조정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정박을 위해 항구에 들어갈 때는 섬세하고 정확하게 접안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키를 잡고 현지에서 나온 도선사의 지시에 따라 운항하게 된다.

배는 커다랗기 때문에 핸들을 돌리는 대로 바로 방향이 바뀌지 않는다. 프로펠러가 바뀌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러더(rudder)가 툭툭 쳐서 방향을 바꾸기 때문에 멀리보고 여러가지 상황을 감안해 항로를 계산해야 한다.

모험심 넘치고 호기심 많은 나는 겁없이 직접 키를 잡아 본다.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손에 땀이 한줌 쥐어졌지만 잘한다고 응원을 해주는 바람에 열심히 잡아 보았다.

뱃길 마다 그들의 이름이…

주변에 한없이 멋진 수평선이 펼쳐진다. 장애물이 없기에 해가 지고 뜰 때면 태양이 커다랗고 붉은 쟁반처럼 관찰되는데, 정말 신기한 것은 일몰 때 나침반이 정확이 270도 내지 280도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배 안엔 별의 위치를 측정하는 천측기구도 있는데, 지금에야 GPS나 위성이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지만 예전엔 그런 기구가 없었기에 자연의 모든 것을 이용해 위치를 설정하고 방향을 잡아야 했다. 그래서 자연을 읽는 방법을 같이 배운다.

자연을 읽는 법은 모두 배우지 못했지만, 자연을 느끼는 법은 배울 수 있었다. 사방 곳곳이 별로 감싸고 있는 그런 느낌. 하늘이 둥글게 배를 감싸고 있는 듯한 별 융탄자로 덮인 바다. 그 안에 우리가 있었다. 시간을 타고 옛 뱃사람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밤이면 적막하고 깜깜한 고독의 항로.

모든 방향과 키의 책임이 갑판 위에 있기에 오감을 이용해 항로를 잡았을 옛사람들에 대한 경이로움이 별빛과 함께 내려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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