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19 17:45 (금)
19명의 '솔롱고스' 몽골 하늘에 행복을 새기다

19명의 '솔롱고스' 몽골 하늘에 행복을 새기다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3.10.21 09:56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남 진주 열린의사회 봉사단
몽골 헨티 반야어워 의료봉사를 다녀와서…
권현옥(경남 진주 권현옥 산부인과의원, 제29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

▲ 19명의 솔롱고스들은 몽골의 대초원에서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사랑과 추억'을 가슴에 담아 왔다.

추석연휴 때 열린의사회의 단장으로 19명의 봉사단을 이끌고 징기즈칸 나라인 몽골의 헨티 반야어워에 일주일 동안 다녀 왔다. 혼자가는 봉사는 순수의료봉사의 보람만 있지만 젊은 자원자와 함께 한 동행은 수련회처럼 몸도 마음도 즐거워진다.

이제는 베테랑(?)으로서 후배를 키우고 이웃과 함께 나눔을 같이 실천하는 것은 또다른 행복이었다.

의료진 5명(내과 장세창, 치과 서리나·정찬세, 한의사 정혜진) 약사 2명, 간호사 3명 등 젊은 봉사자들 9명이 마음을 모았다. 그들과 가족 몇몇이 일원이 되어 함께 떠난 목적지 헨티 반야어워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330㎞나 떨어져 있었다.

자동차로 10시간 이상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했는데 게다가 바퀴고장으로 3시간이나 초원에서 머물렀다. 밤이 되니 기온이 떨어져 두터운 외투를 꺼내 입어도 차안에서 조차 춥고 배고팠다.

오가는 차가 3시간 동안 한 대도 안보여 진료도 못해보고 초원에서 미아가 되는 게 아닌가 걱정도 했다. 밤늦게 마을로 도착하니 군수님과 마을 대표들이 입구까지 마중나왔고, 원래 저녁에는 단전인 곳인데 우리를 위해 불을 밝혀 놓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한달 전부터 마을을 청소하고 환영회를 준비했다.

처음부터 공항에서 짐을 빼앗겨 산부인과·치과 진료에 어려움을 예상했지만 오히려 정성어린 손길과 열정으로 더 큰 의미를 알게 됐다.

▲ 권현옥(경남 진주 권현옥 산부인과의원, 제29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

학교 기숙사에 한 방에 4명씩 배정받고 자다가 추워서 새벽에 깨도 불평하는 이가 없었고 밤에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 생존가능한 물만 먹고 식사는 3분 요리통조림으로 해결해도 웃음과 배려가 넘쳤다. 그저 행복한 동행에 감사했다.

주민들의 따뜻한 환영식에 가슴을 저리는 눈물을 흘리면서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고 싶어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19명이 최선을 다한 후회없는 축제였다. 물한바가지로 세수하고 양치해야 하는 실정에서 귀한 물로 일주일을 견디다보니 점점 몸은 더러워져도 마음은 더 맑아지고 있었다.

헨티반야어워 사람들은 대부분 건강했다. 주식이 고기이다보니 힘도 세고 감기나 잔병이 없었다. 특히 노인들이 관절염이나 디스크같은 노화현상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적었다. 그런데 고기·소금·술을 많이 먹다보니 간과 쓸개쪽의 통증을 많이 호소했고 위염환자가 많았다.

1000여명의 환자 중 가슴 저리는 사연을 가진 세 사람을 소개한다.

아홉살 소녀는 음식을 삼킬 수가 없어 영양제를 구하러 왔다. 올 봄에 집에 있는 농약을 잘못 먹어 식도와 장이 유착돼 울란바토르에 가서 수술했는데 목부터 배꼽까지 칼에 베인 듯 큰 흉터가 있었다.

물론 생명을 건진 것은 기적이지만 앞으로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영양부족으로 잘 클 수 있을지, 또 큰 흉터로 결혼은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우유와 오렌지 쥬스 등 액체류를 많이 먹으라고 일러주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두번째 환자는 비오는 날 3시간 말을 타고 먼 초원에서 가족대표로 찾아온 이였다. 이 곳은 일년중 5∼9월에만 통행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겨울이라 천막 생활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아이가 네명이라고 했다. 감기약·회충약·상비약을 챙겨주니 눈물이 글썽이더니 자기가 만든 요구르트 덩어리를 선물로 주고 떠났다.

세번째 환자는 38세의 예쁜 여자환자였다. 초음파를 보니 임신 3개월째인데 본인은 폐경이라고 생각하고 왔다. 이 곳에서는 18세 때 결혼을 해서 28세가 되면 보통 아기가 셋 정도 되고 더 이상의 출산과 유산은 본인의 선택이었다.

그녀는 35세까지 임신이 되지 않아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었다. 임신이라고 하니 처음에는 굉장히 놀라더니 처음이자 마지막이니 아기를 낳겠다고 하면서 돌아가는 뒷모습에 가슴이 저려 왔다.

마지막 돌아오는 길에는 전날 내린비로 버스가 고랑에 빠져 12시간을 또 길을 잃고 방황했다. 그러나 넘어진 김에 쉬어가고 어쩔수 없다면 즐기는 것이 현명하다는 마음으로 서로를 격려했다. 초원에서 모닥불을 피워 추위를 피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면서 견뎠다.

차 수리하는 동안 불안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단장이라 표시도 못내고 단원들을 즐겁게 해주고 기도했지만 마음은 조마조마 했다. 혼자의 희생은 겁나지 않았지만 18명의 안전을 생각하니 암담했다.

나 아닌 남을 위해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험해지지 않는다는 시 '전단향나무처럼'에서와 같이 동행한 젊은 친구들은 마음이 넓고 따뜻했다.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보는 듯 했다.

몽골초원에서 힘든 고비를 세 번 넘겼다. 초원이 바다보다 넓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동서남북으로 사람도 없고 천막도 없고 길도 없고 오로지 바람과 풀과 갈대와 간간히 보이는 양떼무리 밖에 없었다. 특히 마을 어귀를 벗어나면 휴대폰도 터지지 않아 사고가 나면 연기를 피우던가 긴 담요로 흔들면 주위에 있는 목동이 말을 타고 가다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다행히 돌아오는 길의 사고는 마을 어귀에서 1시간 이내에서 났기 때문에 군수와 마을 주민들이 초원으로 나와 저녁밥과 따뜻한 우유,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나무를 전해 주었다. 우리와 함께 밤 12시까지 같이 있어준 그들의 따뜻한 정은 푸른 초원의 맑은 하늘에 새겼다.

2013년 한가위 달빛 속에서 19명의 솔롱고스들이 몽골의 대초원에서 더이상 좋을수 없는 봉사와 사랑과 추억을 담아 왔다. 같이 동행한 몽골의 '솔롱고스' 19명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솔롱고스'는 무지개란 뜻이다. 꿈과 이상을 좇아 해가 뜨는 동쪽으로 떠난 바이칼 호수의 후예를 가르키는 애칭으로 부여·고구려의 후손을 말한다.

징기즈칸이 "마음을 다스리는자 세계를 제패한다"고 한것처럼 헨티몽골봉사는 우리에게 마음의 수련회였다. 잠시 천국을 다녀온듯 초원 한 곳에 머무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신은 여러개의 손가락을 준것처럼, 사람에게도 여러 가지 길을 주셨다"는 몽골속담이 마음에 남는다. 그들은 살아가는 모습과 문화는 달라도 인간답게 잘사는 행복은 '사랑'에 있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다시 한번 더 떠날 용기는 없지만 10여년간 해외봉사 25번중에서 더이상 좋을수 없는 보람과 행복을 얻었다. 몽골에서의 일주일은 비바람 끝에 핀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 이태준 선생 초상화

돌아오는 길에 100년전 의사 이태준 선생의 기념관을 볼 수 있었다. 몽골제국 훈장을 받은 이태준 선생은 연세대 2회 졸업생으로 안중근열사와 같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해 몽골에서 기독의원을 열었고 몽골왕 주치의를 지냈다.

그는 몽골 국민에게 서양의술을 전하며 존경을 받다가 독립운동자금의 근거지로 발각돼 일본군에 의해 처형된 분이다. 그 분을 예전에 알고 있었고 존경했는데 숙소 바로 옆이 기념관이어서 깜짝 놀랐다.

무사히 봉사 잘 마친 선물로 신이 주신 것이라 여기며 우리나라 의사들에게 알리고 싶어 사진에 담았다.

희망이라면 한 사람이 가다가 길이 되는것 처럼 우리의 초행길이 자꾸 이어져 의료오지에도 많은 봉사자가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