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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축복받지 못한 안타까운 출생
청진기 축복받지 못한 안타까운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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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0.1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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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재( 경기도파주병원 응급의학과 공보의)
▲ 최석재( 경기도파주병원 응급의학과 공보의)

결혼 3년 동안 임신이 되지 않아 불임에 대해 고민하다 어렵게 맞이한 첫째 아들에 이어 이번에 다시 3년이 지나서 어렵게 두 번째 임신에 성공했다. 아내가 입덧으로 고생이 심해 마음이 아프긴 하지만 초음파로 만나는 아기의 모습에 다시 한 번 감동을 느끼는 요즘이다. 둘째 임신 축하인사를 받으면서 작년에 경험했던 응급분만 건이 기억났다.

만우절이면서 동시에 일요일인 사월 초하루 늦은 저녁.
독감에 걸린 아기들이 응급실로 계속 이어져 오는 통에 진작부터 응급실은 혼잡한 상태였다.

대기 중인 환자 중에 등 쪽 하부 통증을 주소로 내원한 여자환자의 차트가 테이블에 올라와있기에 급한 환자는 아닌가보구나 생각하면서 보고 있던 환자의 차팅을 다 마치고 나서야 등 통증이 있다는 여자환자를 보기위해 4번 침상으로 발을 옮겼다.

그 곳에는 체구가 크고 몸이 무거워 보이는 30대 중반의 여자환자가 등을 보인 상태로 눕지 못하고 서서 침대 난간을 붙잡고 있었다.

"환자분 등이 많이 아프세요? 여기인가요?"
요추염좌인가 싶어 등을 두드려 보고 요로결석인가 싶어 양측 신장부위도 두드려보았으나 환자는 말을 잇지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일단 누워보시겠어요? 언제부터 이렇게 아팠어요?"
옆에는 보호자로 환자의 어머니가 함께 와 있었고 환자 대신 대답하길 최근 몇 달간 생리를 하지 않다가 오늘 생리를 하면서 등이 아프다고 했다.

"그럼 우선 소변을 좀 받아보셔서 임신반응 검사부터 나갈게요"하면서 환자를 돌아 눕히는데, 환자의 배는 딱딱하게 불러있었고 대충 눈대중으로 보기에도 그 배는 출산에 임박한 만삭의 산모의 것이었다.

그제야 환자가 무언가 내려오는 느낌이 난다고 말을 한다.
"언제부터 생리를 안 한거에요? 한 번도 검사 안받아봤어요? 임신 중인 것 같은데?"하면서 급히 내진을 위해 커튼을 치고 진찰용 장갑에 소독약을 묻히면서 환자 하의를 벗겼다.

"하아~ 하고 소리 내세요."
동시에 내진 중인 내 두 손가락 앞에는 아기 머리카락이 만져지고 있었고 이미 양수는 터져 없는 상태였다.

그제야 응급실에 흔치않은 큰 일이 났음을 눈치 챘다.
"이OO 선생님, 좀 도와줘, 여기 분만직전이야!"

일요일이라 함께 근무 중이던 의료진을 불러 모으면서 급히 대학병원 산부인과로 옮길 것을 생각해봤지만 초산이 아니고 이전 아기는 사산했다는 친정어머니의 한탄이 들려오는 것을 듣고 여기서 받아야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경산모인 경우는 초산보다 진행이 빠르고 태아 머리가 거의 내려온 상황에서 환자를 옮기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친정어머니의 입에서는 모진 얘기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휴, 이혼하고 그래서 아기 낳으면 안 되는데 우리 아기 못 키우는데 이걸 어째……."

"여기 소독할 거랑 태아 심박 모니터기, 신생아 베드좀 누가 가져와요"
급히 전화로 도움이 될 의료진을 부르던 이OO 선생이 마침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산부인과 과장님이 마침 병원 안에 있다가 내려온다고 했단다.

일단 내려오는 아기 머리를 잡고 산모에게 배에 힘을 빼고 호흡을 크게 하라고 하던 중 산부인과 과장님이 소독 장갑을 끼고 들어오며 "멀티야?" 하고 물었다. 산모가 경산모인가를 물어보는 것이다.

"네, 두 번째 출산이라 합니다. 아기 주수는 모르고 산전 진찰을 안 받은 상태입니다."
아기 머리를 잡고 있던 손을 인계받은 과장님은 준비된 소독가위로 회음절개술을 작게 넣었고, 환자 응급실 도착 10여분, 산부인과 과장님 응급실 도착 2분여 만에 아기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출생의 순간, 누구보다도 축복받고 사랑받으며 태어나야할 한 생명이건만 어수선하고 추운 응급실에서 미약한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아기는 2키로 남짓으로 작았고 바로 울긴 했지만 목에 탯줄을 두 번 감은 상태, 피부색도 청색증 상태로 전신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일단 탯줄을 잘라 아기는 소독포에 싸서 산부인과 과장님이 안았고 환자는 그 상태 그대로 분만실로 올려 달라 해 태반 반출 안 된 상태로 침대째 그대로 분만실로 출발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아기는 산모가 키우지 않겠다고 결정해 소아중환자실 치료 후 기관을 통해 입양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한다.

처음으로 응급분만을 경험했지만 아기에게 너무도 추운 세상을 알려준 가슴 아픈 날이었다. 아기에게는 이 모든 것이 만우절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그 아기는 잘 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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