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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외처방 환수, 약사 책임도 있다" 파격 판결
"원외처방 환수, 약사 책임도 있다" 파격 판결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3.09.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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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법, 백제병원 진료비 소송서 공단 부담비율 5:5 판시

원외처방 약제비 반환을 둘러싼 병원과 공단의 줄다리기에서 병원의 책임을 절반으로 줄인 상급법원 판결이 나와 병원계에 파장이 예상된다.

기준에 어긋나는 원외처방전을 발급했더라도, 의학적 안전성과 유효성 등을 갖춘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의약분업 시행 과정에서 국가가 후속조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잘못도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원외처방전을 발급한 행위가 불법이라면, 약사 역시 처방전에 기재된 조제약이 비급여 대상에 해당해 약제비를 급여비용으로 청구할 수 없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약사의 책임도 언급했다.

서울고등법원 제15민사부는 최근 백제병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논산시, 부여군을 상대로 낸 진료비 반환 소송에서 원심 대비 병원 책임을 대폭 낮춰 손해배상 책임비율을 50%로 판시했다.

재판부는 "의료기관의 원외처방이 비록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그 가운데에는 최선의 진료의무를 다하기 위해 당시 임상의학적 근거에 따라 진료한 것으로서 의학적 안전성과 유효성은 물론, 기준을 벗어나 처방할 필요성 등을 갖춘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눈에 띄는 점은 지난해 임의비급여를 예외적으로 허용한 대법원 판결 이전까지는 원외처방 발급에 관한 명확한 지침이 없었다며 의료기관의 사정을 배려한 점이다. 당시 대법은 "국민건강보험 틀 밖의 비급여 진료행위의 예외적 인정은 신중히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기준 불분명·경직…의료현실과 괴리 있다"

고등법원은 이 판결이 의료기관이 기준을 벗어난 원외처방전을 발급한 경우 이를 환자에게 설명하고 제3자인 약사에게도 비급여 대상임을 확인시켜 약사가 약제비를 직접 지급받도록 한다는 것인지 기준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판결의 법리가 의료인들에게 알려지기까지 기준을 벗어난 원외처방전 발급과 관련한 의료인의 행동준칙이 마련되지 않았고, 그에 관한 위법성을 인식할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판결문에서 요양급여 심사기준의 경직성에 따른 현실과의 괴리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재판부는 "요양급여 심사기준이 경직성, 의료현실과의 괴리 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에서 정한 급여기준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의료현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법조계에서 이미 공감을 표시했던 부분. 김연경 판사(인천지법 부천지원)는 지난해 의료법학회 학술대회에서 "법령상 어느 것에도 포섭되지 않는 진료행위는 실제로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서 규율과 현실의 간극을 꼬집은 바 있다.

재판부는 "별개의 요양기관인 약사의 요양급여 청구에 의해 발생한 손해의 모든 책임을 의료기관이나 의사에게만 부담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이 같은 문제는 의약분업 등 국가의 정책과 정책시행에 따른 후속조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국가의 잘못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면서 총 1억5000여만원을 병원에 돌려주라고 판시했다.

향후 입법과정서 병원에 유리한 근거로 사용 가능

이는 앞서 고등법원에서 지난 7월 경희대병원과 인제대백병원의 책임을 80%로 명시, 뒤이은 판결에서도 병원과 공단의 책임비율을 8:2로 제한한 소송결과에서 진일보한 것이라는 평이다. 병원계에서는 8:2의 비율이 굳어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현두륜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법원에서 요양급여 심사기준의 경직성과 의료현실과의 괴리를 인정한 첫 사례"라면서 "그 동안 다른 재판부에서 인정하지 않았던 책임제한 사유를 언급한 부분은 향후 다른 재판에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현 변호사는 "향후 관련 입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책임의 주체와 근거 등을 놓고 많은 논란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런 내용은 의료기관에 유리한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며 "원외처방은 단순히 공단과 병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환자·약국까지 포함한 4자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책임 또한 당사자가 1/4씩 분담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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