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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피해자 진료하다 중요사실 알게 되면..?

성폭행 피해자 진료하다 중요사실 알게 되면..?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3.08.29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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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액 검출 안됐다" 가해자 가족에 비밀누설한 수련의 유죄 판결
강요한 대법협 회장·박형욱 교수 '수련의와 법적 분쟁의 예방' 논문

#. 모 대학병원에서 수련 중인 A씨는 성폭행 피해자로 접수된 여성을 진료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처녀막이 파열되지 않았고, 정액도 검출되지 않은 것. 이러한 내용을 담은 진단서를 피해가족에게 준 A씨는 이후 병원을 찾아온 '가해자' 가족에게 피해자의 상태를 알려줬다.

이상의 사건에서 수련의 A씨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대법원은 "성폭행 가해자의 부모가 고액의 합의금을 편취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밀을 누설한 점은 인정되지만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다"며 유죄 취지로 판결했다.

형법상 직무처리 과정에서 알게 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 자격정지 또는 7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의료법에서도 의료인이 비밀을 누설할 경우 처벌이 명시돼 있다.

강요한 대학병원법무담당자협의회장과 박형욱 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는 대한의사협회지(JKMA) 최근호에 게재한 '수련의와 법적 분쟁의 예방' 논문을 통해 이 같은 사례를 포함한 인턴·전공의에게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분쟁 가능성과 주의점을 고찰했다.

과거 법원은 인턴의 경우 의과대학을 갓 졸업한 상태로 독자적 결정권을 거의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법적 책임을 상당히 제한해왔다. 그러나 십수년 전 인턴이 혈액봉지 관리를 소홀히 해 환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죄가 선고되는 등 의료현장에서의 다양한 법적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저자는 우선 환자와 의사 관계에 있어서 기본적인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환자 및 보호자가 정신적인 평온 상태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주의하라고 했다.

임상경험이 부족한 수련의는 자신도 극도의 긴장감과 피로감으로 육체적·정신적 여유가 없는 게 사실이지만, 말 한마디에 진료에 대한 환자의 신뢰성이 크게 높아질 수 있고 훼손될 수도 있는 만큼 소통에 신경 써야 한다는 조언이다.

또 의료과실과 달리 설명의무는 의사에게 입증책임이 있다는 점을 들면서 "의사가 설명의무를 이행했다는 것을 진료기록에 남기지 않으면 법원은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과거 하급심 강제조정 사례에서 의사가 설명동의서에 한자로 상태를 작성하고 환자에게 서명날인을 받았으나, 환자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는 점을 근거로 법원이 설명의무를 이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경우가 있다.

최근 환자들이 의료기관이나 종사자의 청결상태에 대해 예민하다는 것도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실제 병원 일반직원이 화장실을 사용하고 손 씻기를 하지 않는 것을 우연히 발견한 환자가 감염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민원을 제기한 사례도 있다.

저자는 "회진 중 수련의가 입은 불결한 복장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이를 소송에 이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청결을 외면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고의가 아니라도 진료과정에서 성추행 또는 성희롱을 당했다고 오해를 살 여지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가령 남자 수련의가 가임기 여성환자를 진료하는 경우 결혼 유무와 관계없이 적절한 진료를 위해 반드시 임신가능성을 질문하도록 돼 있음을 미리 설명해야 한다.

결론에서 저자는 수련의가 면허를 받아 의료행위를 적법하게 시행할 수 있는 의료인으로서 진료에 대한 법적책임을 부담한다는 점을 주지시키면서, 환자-의사 관계, 의사-의료 관계, 보건의료제도 측면에서 여러 위험을 인지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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