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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법인' 탈 쓴 무법지대…환자 장사는 계속된다
coverstory '법인' 탈 쓴 무법지대…환자 장사는 계속된다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3.08.26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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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석하면 현금" 부천 M의원, 묻지마식 영업 행태 원성
환자유인 등 유죄 판결 후 이름만 바꿔 개원…제도 허점

Cover Story

일주일에 세 번씩, 하루 4시간. 혈액 투석은 만성신부전증 환자들이 생명을 유지하는 보편적인 방법이다. 한 번 걸리면 직장을 계속 다니기 어려운 질환 특성상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경우가 많다.

상황을 고려해 정부에서는 2000년대 초반 환자 본인부담금을 10%로 대폭 줄였다. 혈액 투석에 책정된 의료수가는 15만원 정도. 환자가 1만 5000원만 내면, 투석을 해주는 의료기관은 나머지 금액을 보험급여로 청구해 받으면 된다.

이 같은 정책적 배려는 의료기관의 과잉 경쟁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일정수 이상의 환자만 확보하면 고정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이점으로 인해, 본인부담금을 받지 않거나 오히려 환자에게 돈을 주는 기형적 행태가 생겨난 것이다.

여기 경기도 부천시 개원가에서 악명 높은 M의원 사례를 소개한다. 사무장병원으로 혈액투석병원을 개원해 고용의사와 한바탕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이후 도를 넘은 환자유인 행위로 유죄 판결까지 받은 이 의원은 최근 인근 부지로 자리를 옮겨 여전히 '성업 중'이다.

신용불량 의사 A씨, 불법투석병원 덫 걸린 사연

신용불량자인 의사 A씨는 2008년 지인이 소개한 자본가 B씨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법인 인수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그는 "병원을 세우기 위한 준비를 끝냈으나, 인수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면서 우선 A씨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할 것을 부탁했다.

개설자 명의를 빌려주기로 한 기간은 반년 남짓. 1억원이 훌쩍 넘는 빚에 쪼들리고 있던 A씨는 월급 1200만원을 받기로 하고 이에 승낙했다.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의료기관을 개설한, 전형적인 '사무장병원'이었다.

B씨는 위암수술을 하고 2년을 쉬면서 다른 일을 찾던 비의료인 C씨도 끌어들였다.
브로커로부터 "혈액투석병원을 하면 돈을 번다"는 얘기를 듣고 자산 1억원을 보태 병원 운영에 뛰어든 C씨는 약속한 기간이 다가오자 B씨와 함께 N사단법인의 정관 변경절차가 마무리됐다며 A씨에게 명의 변경을 요구했다.

A씨는 애초 계약과 달리 월급 지급 등의 대우를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며 이들과 잦은 말다툼을 벌였다. 어느 날 진료실에서 끌려나오다시피 한 그는 결국 B씨와 함께 해당 지역 보건소에 찾아가 의료기관 양도양수서를 제출했다.

A씨를 해고한 B씨는 C씨와 함께 본격적인 환자 사냥에 나섰다. 투석환자들을 병원까지 태워다주고, 무료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1년 6개월에 걸쳐 적게는 15만원, 많게는 50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환자들에게 지급했다.

한 때 사무장병원에 고용됐던 의사와 병원 운영을 주도한 자본가, 그리고 브로커가 끌어들인 투자자. 지역 보건소의 고발로 나란히 법정에 선 이들 셋의 운명은 미묘하게 갈렸다.

최고형을 받은 이는 해고에 앙심을 품고 "의료기관 양도를 승낙한 적 없다"며 자본가 B씨를 고소한 의사 A씨였다.

▲ 일러스트=윤세호 기자

환자에게 돈 뿌린 사무장 "사회복지 차원?" 글쎄…

인천지방법원 제4형사부는 지난달 A씨가 무고죄와 의료법 위반, B씨와 C씨 및 해당 법인이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에서 이들의 항소를 기각해 실형과 벌금형을 선고한 1심을 유지했다.

A씨에게는 무고죄와 사무장병원에서 의료행위를 한 의료법 위반죄로 징역 10월과 벌금 200만원을, B씨와 C씨에게는 사무장병원 운영과 환자유인 행위로 인한 의료법 위반죄로 징역 6월과 벌금 500만원을 각각 선고한 것이다. 법인은 700만원의 벌금형을 받는데 그쳤다.

B씨가 징역 6월에 2년간 집행유예를 받은 것을 감안하면 실제로 A씨만 감옥살이를 하게 된 셈. 의료법 위반 보다 무고죄의 죄질이 상대적으로 무겁기 때문이다.

1심에서 재판부는 "A씨가 단 한 푼도 병원 설립에 투자한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M의원에서 명목상 원장으로 근무하게 된 것을 기화로 자신의 지분을 주장하다 마지못해 의료기관 양도양수서를 작성하도록 허락했음에도 B씨를 무고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무고죄는 형사사법작용을 훼손할 뿐 아니라 허위의 고소를 당해 피의자로 조사받게 되는 당사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범죄로, 엄중한 형사처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의료인이 아닌 자로부터 월급 1200만원 내지 600만원을 지급받은 것에 대해 부끄러워 할 줄 모르고, 각종 기관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수시로 진술을 번복한 행태를 보면 과연 의사자격증을 가진 자로서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A씨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을 하기도 했다.

반면 일관되게 범행을 인정하면서 잘못을 뉘우치는 태도를 보인 B씨에게는 높은 점수를 줬다.

재판부는 "법인지부를 통해 의료기관을 운영하기 위해 시설투자와 의료종사자 채용을 완료한 상태에서 법인허가가 지체되는 바람에 A씨를 고용한 형태로 병원 운영을 개시하게 된 범행경위에 참작할 사정이 있어 보인다"고 판시했다.

환자유인으로 인한 의료법 위반에 대해서도 "편법적으로 금전을 교부하는 등 그 수법이 교묘하고 불량하기는 하나, N법인이 다른 곳에 지원한 후원금액이 상당하고 대체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금원을 지급한 사정 등에 비춰 사회복지 차원에서의 지원 의사가 전혀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비교적 온정적인 판결을 내렸다.

선고에 불복한 A씨가 상고장을 제출하면서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됐다. 문제는 실질적인 사무장병원 형태로 운영되면서 마구잡이로 환자를 싹쓸이하는 M의원이 이 같은 형사사건에 수년간 휘말리고도 건재하다는 것이다.

"정직하게 하면 환자 다 뺏긴다" 시름 깊어지는 개원가

▲ M의원은 환자유인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을 받은 후 인근에 C의원으로 이름만 바꿔 다시 개원했다.

재판 추이를 지켜본 인근 개원의들은 유죄가 확정되자 "병원 문을 닫는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추측을 내놨다. 해당 법인이 형사처벌에 따른 행정처분을 피하기 위해 개설주체를 바꿔 인근 부지에 재개원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본지 확인결과 M의원이 C의원으로 이름을 바꿔 인근 부지로 이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 그대로 '이전'일뿐 개설주체는 N사단법인으로 유효했다.

수상한 점은 이전한 건물 1층에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 명의의 또 다른 의원이 개원했다는 점이다. C의원과 거의 유사한 명칭을 가진 이 의원은 투석전문을 내세운 C의원과 달리 내과·가정의학과·피부과 등의 진료과목을 명시하고 있다. 일종의 역할 분담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M의원의 2심에서의 유죄 판결과 이전 시기에 맞춰 출범한 정체불명의 의료생협은 "병원의 주인인 조합원과 지역주민을 위한 의료기관"이라며 온라인 카페를 개설하고 대대적인 조합원 모집에 나섰다.

원미구보건소 관계자는 "두 기관을 운영하는 분들의 정확한 관계는 알 수 없지만 예전부터 잘 아는 사이인 것 같더라"면서 "M의원에 대해서는 하도 불법행위를 호소하는 민원이 많이 들어와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고발도 당해본 곳이니 스스로 조심하지 않겠나"고 했다.

개원가에서는 실질적인 사무장병원이 돈을 주면서 투석환자를 유인하는 행위가 불공정할뿐더러, 의료의 질이 낮아진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비전문의를 고용해 질 낮은 의료장비로 무리한 투석을 시키고, 남는 돈으로 환자를 끌어들이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M의원에서는 재작년 투석을 받던 환자가 돌연 사망하면서 관리 소홀에 따른 의료사고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O신장내과 원장은 "식사까지는 제공할 수 있지만 돈을 주는 게 문제다. 브로커를 동원해 대학병원에서 한꺼번에 20∼30명의 환자를 빼가는 사례도 부지기수"라면서 "정직하게 하면 환자를 다 뺏기다보니 그런 병원들의 전철을 밟는 의사도 있다"고 전했다.

이 원장은 "당뇨환자가 많아지면서 신부전환자도 늘고 있는데, 환자들부터가 '이런 데서 하면 안 되겠구나' 깨닫고 빠져나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개인의원은 돈 주면서까지 투석하면 망한다. 저수가로 인한 폐해로 엉뚱한 데서 이익을 얻어가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유죄 판결 받아도 벌금만 내면 OK' 해결책은 없나

그렇다면 형사처벌을 받은 M의원에는 업무정지와 같은 행정처분이 뒤따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렇지 않다. 몇 백 만원의 벌금형으로 해당 법인은 법적 채무를 깨끗이 덜어냈다. 현행법상 환자유인으로 인한 의료법 위반으로는 업무정지를 내릴 수 없어서다.

오히려 M의원은 이러한 오명을 비웃듯 지난 5월 모 언론사가 주관한 글로벌 의료서비스 시상식에서 신장투석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대한투석협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현두륜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환자유인에 대한 행정처분은 자격정지만 규정돼 있다 보니 사단법인이 설립한 병원에 대해서는 업무정지를 내릴 수 없다"며 "법인 대표가 의사가 아니라서 자격정지를 내릴 수도 없고, 행정처분을 내릴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를 적절히 제재할 수 있으려면 병원 단위로 업무정지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 변호사는 "환자유인이 주로 사무장병원에서 이뤄지는 행태임을 고려할 때 개인이 아닌 기관에도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면서 "장기적으로는 비영리법인의 무분별한 의료기관 개설을 차단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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