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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닥터K
[기고] 닥터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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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8.1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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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종(경기 의정부 김연종 내과 원장)

▲ 김연종(경기 의정부 김연종 내과 원장)
의업을 숭상하면서도 문학에 이끌린 의사들이 함께 모였다.

의학과 문학이라는 다분히 이질적인 두 학문의 만남도 진정성을 매개로 한다면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의사와 환자의 관계처럼 말이다.

의사가 아닌 환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의학은 더욱 간절하고 절실해진다. 하지만 작금의 의사들은 더 이상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기억하지 않으며, 슈바이처를 가슴에 품지 않는다. 의업은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했고, 의사들은 돈 밖에 모르는 파렴치한으로 인식되는 현실 앞에서 고뇌하고 갈등한다.

이렇듯 의사와 환자 사이 깊게 패인 불신의 벽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서로 간에 신뢰를 회복하고 온전히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여러 대안들이 제시됐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의학과 문학의 만남의 장이다.

의학과 문학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고통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이고, 둘 다 치유를 목표로 한다는데 있을 것이다. 육체의 고통을 치유하는 의학과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문학의 만남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작년에 발족한 한국의사시인회가 첫 시집 <닥터K>를 올 여름 세상에 내놓았다.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를 사랑하는 의사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누구는 가운을 입은 채로 냉혹한 의료현장을 분석하고, 누구는 가운을 벗은 채로 따뜻하지만 낮은 삶의 현장을 들여다본다. 비록 의사시인들의 소박한 글쓰기이지만 시대를 배경으로 한 나름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잠시 의사가운을 벗어던진 닥터K들은 밤잠을 밀어두고 섬세한 인간애를 시의 행간에 심어 놓은 것이다.

마종기 시인은 시집의 서문에서 "과학자인 의사가 어떻게 환자라는 인간의 고통과 불안을 함께 아파하고 또 함께 눈물 흘리는지를 볼 기회가 왔습니다. 더불어 의사라는 인간이 목석이 아니고 어떻게 자신의 의지를 지키며 불완전한 자신을 깨워 이겨나가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조촐하지만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도 함께 마련했다.

의사시인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기에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글을 쓰는 고충을 자연스럽게 토로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육체의 병을 치유하는 의사들이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어루만질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 나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속 시원한 답을 내어놓지 못한 채 또 다른 고민 속으로 빠져들었다.

과연 문학이 치유의 효과가 있을까?

치유는 커녕 시 쓴답시고 의사의 본업에 충실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문학을 핑계로 오히려 환자에게 소홀히 대하는 것은 아닐까.

문학은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영원히 손아귀에 넣지 못하고 가슴만 태울지도 모른다.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문학의 역할에 대해 고심했지만 속내는 복잡해지고 내면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시를 쓰는 작업은 의지만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시가 내게로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펜을 잡고, 마우스를 움직이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 엄연한 사실을 운명이라고 단정 짓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시를 쓴다는 것이 아니런가.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태어났다는 시인 백석의 심정을 헤아려 보려했지만 쓸쓸한 등을 기댈만한 흰 바람벽은 찾지 못한 채 닥터K를 위한 변주만 계속 늘어놓아야 했다.

청진기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하던 그들은 <닥터K>를 앞에 놓고도 자꾸만 히포크라테스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 때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경험은 오류가 많으며, 판단은 어렵다. 의사는 그 자신이 올바른 일을 할 준비뿐만 아니라 환자와 간병인, 외부 여건을 치료에 협력하게 만들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초심으로 돌아가 의사의 직분에 더욱 충실 하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첫 번째 아포리즘은 외롭고 높고 쓸쓸함을 강조한 백석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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