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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오지랖(?)을 금지하는 사회

착한 오지랖(?)을 금지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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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8.1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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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경 의료전문변호사 (법무법인 LK파트너스)

▲고한경 의료전문변호사 (법무법인 LK파트너스)
얼마 전, 국내 유수 종합병원의 진료협력센터에서 조언을 구해왔다. 최근 옴(scabies)으로 의심되는 환자들이 인근 협력요양병원으로부터 꽤 많이 전원되고 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치료하면 될 것이지만 막상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환자들이 입원하고 있던 요양병원에 환자의 감염사실을 알리고 감염관리대책을 마련하도록 권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 것이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지만, 혹시나 요양병원에 환자의 감염사실을 알리는 일이 법률에 저촉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에 변호사의 자문을 받기로 했다. 의료법은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가 진료과정에서 알게 된 환자에 관한 사실이 유출·누설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보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의료인 등은 환자의 배우자·대리인 등이 환자의 동의서와 그 관계를 증명하는 서류를 첨부해 요청하는 경우 등이 아닌 한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거나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해서는 안되며, 그 다른 사람이 '의료인'인 경우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으로부터 진료기록의 내용확인이나 환자의 진료경과에 대한 소견 등을 송부할 것을 요청받은 때에도 원칙적으로 환자나 환자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송부해야 한다. 무엇보다 의료인은 의료를 하면서 알게 된 다른 사람의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환자의 옴 감염사실은 개인정보, 특히 건강과 관련된 민감정보라고 할 수 있는데,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법률이 예외로 규정하는 경우, 급박한 생명 신체의 이익을 위한 경우 등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동의가 필요하다.

즉, 의료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은 환자가 옴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협력병원에 알려주기 위해서는 환자의 동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의문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다른 환자가 발생할 것이 불 보듯 뻔한데도 일일이 동의를 받지 않으면 그저 손을 놓고 모른 척 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답은 아쉽게도 현행법상으로는 '그렇다'이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의료기관의 장으로 하여금 법정 감염병 환자의 발생을 보건소장에게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옴은 법정 감염병이 아니며, 위 법률이 '보건소장'이 아닌 협력병원에 그 사실을 알릴 수 있도록 정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환자의 동의 없이 감염사실을 협력병원에 알리는 것은 의료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어 변호사로서 다른 요령(?)을 제안하면서도 부정적인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환자들을 걱정하는 선생님들의 착한 참견과 오지랖은 그렇게 제지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문제는 개인정보를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지, 개인정보를 보호함으로써 다른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개인의 비밀을 어느 정도 희생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법익 사이의 충돌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법률은 그간 개인정보 침해사례에 대한 반성 때문인지 개인정보를 매우 엄격하게 보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백번 공감하며, 원칙적으로 정보주체의 의사가 우선돼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공익을 위해 의료와 같은 선의(善意)행위의 경우에는 엄격한 제한아래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법안도 함께 정비돼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무작정 금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일정한 목적·방법·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하면서도, 그런 요건이 충족되는 경우에는 사회적으로 개인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길도 마련해두는 것이 '진정한' 개인정보 보호가 아닐까. 부디 꼭 필요하고 착한 참견은 가려내어 권장할 수 있도록 법률이 정비돼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에 긍정적인 답변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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