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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표현의 '의학적 허용'은 어디까지일까?

시적 표현의 '의학적 허용'은 어디까지일까?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3.07.1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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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인하의대 교수 <문학과 의학> 6월호에 기고
신춘문예시 의학적 타당도 낮아…투병시인·의사시인 '사실적'

 
시에서의 창작의 자유는 어디까지일까. 현실과 다른 내용을 얼마든지 노래할 수 있는 시에서 질병과 죽음, 투병에 관한 표현은 얼마나 사실적일까.

시인의 의학적 지식과 감동이 부족한 채로 의학적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의도적으로 작품 속에 삽입됐을 때 시를 접하는 이들은 잘못된 사실에 감동받고 그대로 믿게 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주의깊게 살펴봐야 한다.

국내에 발표된 여러 시작 가운데 교과서·대표시선에 수록된 시와 함께 상대적으로 젊고 투병 경험이 적은 신춘문예 시인들과 투병시인, 의사시인의 작품 속에 나타난 의학적 타당도를 가늠해 보는 연구가 발표됐다.

시인이자 수필가로 의대에서 '문학과 의학'을 가르치고 있는 황건 인하의대 교수(인하대병원 성형외과·사진/김형묵·이국형)는 <문학과 의학> 6월호에 '질병과 죽음에 대한 한국 현대시의 표현과 그 사실성'에 대한 기고문에서 시의 영역에서도 '문학적 양심'·'진실'·'자기 진정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분석은 교과서·대표시선에 수록된 시(선작시) 988편, 2005~2012년 신춘문예 당선시 682편, 투병시인의 시 894편, 의사시인의 시 842편 등 모두 3402편을 대상으로 죽음에 대한 표현이 있는 시 41편에 대해 의학적 사실과 부합하는 것은 5점, 전혀 부합하지 않는 것은 1점으로 산정해 타당도를 평가했다.

먼저 41편에 나타난 질병 양상을 살펴보면 25가지 질병이 등장했는데, 가장 빈도가 높은 것은 암(11회)이었고 한센병(5회)이 뒤를 이었다. 이밖에 직업성 폐질환·손절단·얼굴경련·성병·자궁암·뼈종양·자폐증·협심증·조현병·기흉·식도협착증·안구건조증·심장마비·몽유병 등을 다루고 있었다.

질병증상의 표현에 대한 타당도에서는 평균 3.29±1.29점으로 나타났다. 평가 분야별로는 선작시 3.20±1.31, 신춘문예시 2.58±1.31, 투병시인시 3.67±1.41, 의사시인시 3.90±1.10 등이었다. 의사시인의 시가 타당도가 유의하게 높았으며, 다른 직군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의학적 사실과 다른 표현을 한 시들을 살펴보면 신춘문예시 <포도씨를 뱉으며>(김초영)에서 자궁암 말기의 어머니에 대한 표현 중 '자궁암 말기의 포도 냄새 올라오고'(실제로는 썩은 냄새가 나는 것과 반대로 달콤함에 비유), <모녀의 저녁식사>(윤진화)의 유방암에 걸린 어머니 때문에 식단이 모두 풀뿐인 채식이라는 표현(암환자가 채식만을 하게 될 경우 영양학적으로 불균형해지기 때문에 육식을 통한 적절한 단백질 보충이 필요), <검버섯>(이제니)에서 '검버섯은 이상한 냄새가 난다 좋다 아름답다'(검버섯은 지루성 각화증으로 피부의 양성질환일 뿐 냄새가 나지 않는다) 등이 있었다.

투병시인의 시 가운데 <누가 물으면> <복잡한 관계>(윤성근)에서는 '그러다 통증이 치받는 순간이면 나는 갑자기 딴 사람 몸에 들어온 혼령인 듯하여요' '본격적인 통증이 무슨 가솔린에 불길이 닿은 것처럼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등 처럼 실제 말기 대장암으로 투병하다 2011년 별세한 시인 본인이 느꼈던 통증에 대한 직접적 비유가 높은 타당도를 보였다.

의사시인의 시 <기흉>(김현식)에서는 '호흡과 함께 움직이는 물기둥, 그 진폭의 크기 만큼 요동치는 어미의 맥박……들숨이 허무의 공간으로 빠져나가고 날숨이 갇혀 버리는 함정. 산소 결핍증을 앓는 소년이 뛰고 있다' 처럼 기흉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생리현상과 증상을 전문가의 이해를 바탕으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황건 교수는 "같은 시인이라도 자신이 겪은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과 타인의 간접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타당도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며 "신춘문예에 발표된 시인들의 타당도가 낮은 반면 오랜기간 투병을 통해 질병을 관찰한 투병시인과 의사시인의 시는 타당도가 높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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