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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70주년 맞은 백병원
탐방 70주년 맞은 백병원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2.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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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사립병원사와 궤를 같이하는 백병원이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백병원의 역사는 일제하의 암울한 시기였던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설립자 백인제 박사는 1899년 평북 정주에서 나서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오산학교를 졸업했다. 애국항일투사들이 줄줄이 배출된 오산학교 출신답게 경성의전 재학 중 3.1운동에 가담, 옥고를 치르고 퇴학을 당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항일운동을 한 이력 때문에 복학하여 수석졸업을 하고도 2년간 무보수로 일한 후에야 의사면허를 받을 수 있었다.

백인제 박사의 뛰어난 수술 실력은 만주 일대에까지 자자했다. 장폐색증에 있어서 상부장관의 감압술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행할 만큼 한국 외과학의 개척자로 명성을 쌓았던 백인제 박사는 경성의전 주임교수를 맡아 후학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932년 우에무라 외과를 인수한 백인제 박사는 의료혜택의 폭을 넓히고 의료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장기적인 구상을 구체화하는데 열중했다. 이러한 구상은 유럽과 미국 의료계를 둘러본 직후 한국의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을 만들겠다는 집념에서 출발했다.

백인제 박사는 1941년 경성의전 교수직을 사직하고 30병상 규모의 백외과의원으로 새롭게 기틀을 닦았다. 1946년 병원이 정상 궤도에 오르자 한국 최초의 민립 공익법인으로 전환, 개인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결단을 내렸다. 강철왕 카네기와 석유왕 록펠러가 재단을 설립하여 사회에 재산을 환원하는 모범을 보였던 것처럼 공익법인 설립에 추호도 망설임이 없었다.

그러나 민족의 비극 6.25전쟁의 아수라장 속에 백인제 박사는 납북되는 비극을 맞는다. 백인제 박사의 납북 이후 백병원은 사양길에 들어서고 있었다. 일본식 건물을 개조해 쓰던 백병원은 지붕 여기저기에 빗물이 새는 지경으로 노후돼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현대식 종합병원의 틈바구니 속에서 백병원은 개원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고 만다.

큰아버지 백낙환 박사의 권유에 이끌려 의사의 길을 걷게됐고, 1939년부터 1950년까지 한솥밥을 먹으며 특별한 사랑과 두터운 신뢰 속에 성장했던 백낙환 이사장(인제대)은 어떻게든 백병원의 설립 정신을 이어야 한다는 일념에 무희망 퇴원 환자와 같은 상태에 놓인 백병원 소생에 매달렸다. 원장, 외과과장, 당직의사, 그리고 가장으로서 1인 4역을 자청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백병원은 1975년 3월 장장 7년여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한 신축공사를 끝낼 수 있었다. 백인제 박사의 유지를 기필코 받들고야 말겠다는 백낙환 이사장의 외고집과 독일에서의 의사 생활도 접고 귀국, 백병원 중흥을 위해 헌신한 고 백낙조 전 이사장의 사심없는 의기투합이 오늘날 백병원과 인제대를 탄생시킨 계기가 됐다.

서울 백병원이 본궤도에 오르자 백낙환 이사장은 설립자 백인제 박사가 꿈꾸었던 교육분야로의 진출을 모색했다. 제 2의 도약 청사진을 담은 부산 프로젝트는 1977년 정부가 의료혜택을 확대하기 위해 민간병원 건립 지원계획을 발표하고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 구체화됐다. 고심을 거듭한 끝에 부산 사상공단이 위치한 개금동에 3,600여평의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협소한 공간이었지만 인제의과대학과 부속 부산백병원의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1979년 1월 학교법인 인제학원이 설립됐고, 2개월 뒤에 의과대학이 개교했다. 초대 이사장에는 고 백낙조 박사가, 초대 학장에는 설립자의 수제자 중 한 명인 전종휘 박사가 취임했다.

학교명칭은 인술로써 세상을 구제한다는 인술제세(仁術濟世)에서 빌어왔다. 부산백병원도 이 해 6월 완공돼 최하진 박사가 초대 원장으로 부임했다. 백인제 박사의 수제자인 장기려 박사도 부산백병원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부산백병원의 성공적 개원으로 자신감을 얻은 백낙환 이사장은 1980년부터 종합대학 설립을 위한 장기발전계획을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11만평의 경남 김해 캠퍼스를 확보하고 1982년 교명을 인제의과대학에서 인제대학으로 변경했다. 꾸준히 학과를 증설해 나가 드디어 1989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함으로써 설립자 백인제 박사의 꿈을 실현하는 전기를 맞았다.

1989년 상계백병원에 이어 1999년에는 일산백병원을 건립했으며, 2001년 동래백병원을 인수함으로써 5개 병원에 2,800여 병상을 거느린 사립병원의 대표주자의 하나로 발돋움하게 됐다. 5개 백병원에는 450명의 전문의와, 1,000여명의 의료진이 연간 250만명을 진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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