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의료인문학 교육
특집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의료인문학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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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6.1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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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role of doctors 우리나라의 현황과 과제. 끝.
"의인문학은 취미나 선택이 아닌 필수"
의료윤리에 대한 의사와 국민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Global role of doctor연구팀'과 손잡고 <Global role of doctor>를 주제로 신년기획을 진행합니다.
세계의학교육연맹은 각 나라별로 시대의 변화에 따른 의사의 역할을 규명하기 위해 'Global Role of Doctor in Healthcare'라는 과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의사전문직 고유의 가치(value)와 의무(duty)에 관한 내용을 구체화 하고, 상징화하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이번 과제는 의사는 물론 일반사회 모두가 수용할 수 있도록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아직 바람직한 의사상이 정립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놓고 볼 때 매우 의미있는 과제입니다.

'Global role of doctor연구팀'은 지난 2년 동안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와 재단법인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지원을 받아 '대한민국 의사의 역할과 덕목'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신년기획 <Global role of doctor>는 의사전문직의 가치와 의무를 정립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편집자주>

 

▲ 한희진 고려의대 교수 ( 의철학/의사학 )

먼저 우리가 '의학'이라고 부르는 이론과 실천의 분야는 'Medicine'이란 서양의 학문과 문물의 번역어이다. 'Medicine'은 지난 수세기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돼 왔지만 전통적으로 'Medicine'은 의학(Medical Science, 의과학·지식), 의술(Medical Technology, 의기술·수기·술기), 의료(Medical Practice, 개인과 사회에 대한 실천)의 종합이라고 규정된다.

달리 말해 온전한 'Medicine'이란 인간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과학적 지식, 이 지식에 근거해 제작된 의료기기와 이 기기를 활용하는 기술, 이 지식과 기술에 의해 환자 개인과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실천이 합해진 것이란 말이다. 

'의학'이란 번역어는 '의과학'이란 표현의 축약형이며 'Medicine'의 세 가지 필수 구성요소 중에 지식의 차원만을 주로 지칭한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의학'은 'Medicine'의 번역어로 부족하고 부적당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일상적으로 '의학'이라고 말하면서 협의의 의학만을 일컫지 않고 실제로는 의술과 의료가 포함된 의미로 사용한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생의학적인 자연주의 의학과 산업화 및 상업화된 의술이 'Medicine'의 전인적이고 인본적인 실천을 저해하는 상황에서 '의학'이란 표현은 은연중에 'Medicine'이 추구해야 할 목표를 편협하게 왜곡할 위험이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Medicine'에 관한 인문학적 연구와 교육에 종사하는 국내의 여러 전문가는 'Medicine'의 번역어로 차라리 한자어 '의(醫)'가 더 적당하지 않느냐는 주장을 하고는 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Medicine'의 번역어로 '의학'이란 표현보다는 좀 낯설고 불변하더라도 '의(醫)'를 사용해 보고자 한다. 

의인문학(醫人文學, Medical Humanities)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교육돼야 하는가? 
서양에서 인문학 또는 인문과학(Humanities)은 라틴어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후마니타스는 문자 그대로 '인간다움'을 뜻하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래로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지식과 덕목을 의미해 왔다.

오늘날까지 인문학은 전문적인 직업교육 이전에 고등교육, 즉 대학교육에서 반드시 교수돼야 할 '교양'으로 간주되고 있다. 르네상스 이후 근대과학이 출현하면서 인문학은 자연과학과 구별되는 분야를 지칭하게 됐고 20세기 이후에는 인문학에서 법학·정치학·경제학 등 사회과학도 분화됐다.

결국 가장 전형적인 인문학의 세부분야는 우리나라에서 이해되고 있는 바와 같이 '文(문학), 史(역사), 哲(철학)'이다. 

'Medical Humanities'는 20세기 후반에 북미를 중심으로 새롭게 각광 받기 시작한 의학과 인문학의 융·복합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상적으로 '의료인문학'이라고 불리고 있으나 의료는 의(醫)를 구성하는 세 가지 필수 구성요소 중에 하나일 뿐이므로 'Medical Humanities'는 '의인문학(醫人文學)'이라고 번역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

인문학의 정의에 비춰보면 의인문학은 의(醫)와 관련된 역사, 철학, 윤리 등의 분야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분야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의(醫)의 고유한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특성 때문에 의인문학에서는 인문학의 대표 분야인 문학보다는 철학의 세부분야인 윤리학이 더 중요하게 연구 및 교육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의인문학은 미국에서 유래한 것이고 서양 의학과 인본주의(Humanism) 사상이 기원한 유럽에서는 사실 이 분야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에서 의인문학 과목의 수와 시간은 우리나라 의과대학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적다.

문제는 프랑스에서의 의인문학 교육을 실제로 체험하지 못하고 이런 자료만을 검토하면 프랑스 의과대학에서 인문학을 중요시 않는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이런 오해를 풀고 프랑스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의과대학에서 인문학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의학교육의 역사와 현실을 잠시 살펴봐야 한다. 

우리에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한 철학자로만 주로 알려져 있는 데카르트(Ren맯 Descartes, 1596~1650)는 17세기에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등 자신의 기초의학 연구 성과에 근거해 '동물-기계론'이란 혁명적인 이론을 제안했다.

이 이론은 의학에서 인간의 신체를 기계로 이해하고 기계처럼 다루는 것을 윤리적으로도 정당화했고 이로 인해 자연과학으로서의 의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근대 의학의 수립과 발전에 대한 데카르트의 결정적인 기여를 인정해서 유럽 최고의 의과대학 중에 하나인 파리 5대학의 대학명은 '데카르트 대학'이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기계론적 이해와 접근은 인간을 도구화하고 인간을 소외시키며 인권을 무시하는 결과까지 초래했다. 이 문제에 대해 이미 데카르트 당대부터 여러 철학자와 의사가 비판을 했고 의학에서 인본주의를 보존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력하게 제기됐다.

아울러 이 시기에 의(醫)의 본질이 과연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반성이 새롭게 이뤄졌다. 예를 들어 18세기의 유명한 의사이며 의철학자인 카바니스(P.-J.-G. Cabanis, 1757~1808)는 오늘날까지도 프랑스 의학교육, 의료제도, 의학연구의 토대가 되는 의(醫)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이제 왜 프랑스 의과대학에 의인문학 과목이 많지 않은지를 해명할 수 있다. 현재 프랑스 의과대학의 교수뿐만 아니라 의료기관의 의사는 줄곧 인문학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의대학생이나 전공의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전공 분야의 역사·철학·윤리를 통합적으로 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초의학의 생리학 수업에서는 현대 생리학의 기초 지식이 전수되면서 동시에 생리학의 역사·철학·윤리가 함께 교육된다. 즉 실험실 생리학이 발생하게 된 계기와 발전과정, 실험이 충족해야 할 논리적 조건과 실험의 인식론적 한계, 동물생체실험이 초래하는 동물권의 문제 등이 하나의 생리학 과목에서 교육된다는 것이다.

임상의학에서 외과학의 자연과학적 지식이 교육될 때면 내과학과 외과학의 구분이 어떤 과학적, 정치사회적, 경제적 논쟁 속에서 이뤄졌는지를 먼저 역사적으로 검토하고 과연 이 구분이 정당한지를 철학적으로 반성해 본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전쟁이 외과수술의 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고 오늘날 외과 전공을 기피하는 전세계적인 추세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무엇이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지 등이 하나의 외과학 수업에서 함께 검토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현대 의인문학이 기원한 프랑스에서는 의인문학이란 별개의 학문 및 교육뿐만 아니라 사실상 의인문학이란 학문명 자체도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의(醫) 자체를 인문학이라고 정의하고 그렇게 교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醫)를 자연과학적 차원으로 제한함으로써 의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미국의 전철을 밟고 있다. 즉 인성과 교양이 부족함에 따라 몇몇 의사가 초래한 문제를 겪고 나서는 그 동안 도외시했던 인문학을 의과대학과 의료기관에 의료인문학이란 이름으로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유럽 의학사만 잘 검토해 보았어도 미국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았을 것이란 이유에서라도 의학사는 모든 의사에게 필수적인 지식이다. 

물론 의과대학과 의료기관에서의 의인문학 교육이 의사를 얼마나 교양 있고 윤리적으로 만드는지를 실증적으로 입증할만한 근거(Evidence)가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두 세기 동안 의과대학과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의료계 전체에서 인문학 교육을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실시해 온 프랑스 의료계를 우리나라 의료계와 비교해 보면 장기적으로 의인문학 교육의 효과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면 과연 의과대학과 의료기관에서 의인문학 교육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프랑스 의과대학, 의료기관, 의료단체에서 이뤄지고 있는 의인문학 교육의 역사와 사례를 살펴보면 우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의대학생과 의사가 인문학을 최종적으로 전공할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고등교육기관이나 진료연구기관이 주관하는 교양으로서의 인문학 교육은 최근에 유행처럼 각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여러 인문학 강좌나 주로 주부와 어르신을 대상으로 백화점이나 구청 등에서 진행하는 교양 강좌와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한 사회의 지식인으로서 참된 엘리트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의사에게 인문학적 교양은 취미나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이다. 

인간학으로서의 의(醫)의 필수 구성요소인 의인문학은 다른 기초의학이나 임상의학 과목만큼이나 전문적으로 교육돼야 한다. 미래에 생리학자가 될 것을 기대하고 생리학을 교육하거나 외과전문의가 될 것을 예상하고 외과학을 교육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전문성은 유지하며 생리학과 외과학이 교육되듯이, 의인문학도 일종의 취미나 선택과목처럼 교육돼서는 안 될 것이다.

의과대학의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교육과정이 대중을 대상으로 한 각 방송사의 수많은 건강정보 프로그램과는 그 수준과 실증성에서 분명히 달라야 하듯이, 의과대학에서의 의인문학 교육도 인문학 대중 강좌와는 그 수준과 실증성에서 차별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의과대학의 의인문학 교육은 학력이 고려되지 않고 취미 생활에 가까우며 청중수나 시청률 등이 평가의 기준이 되는 대중 강좌와는 결코 동일할 수가 없다. 아무리 재미가 없고 나의 현실과는 당장 무관해 보이더라도 현재와 미래의 의사로서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 한다. 

▶현재까지 세계의학교육연맹의 과제이었던 Global Role of Doctor in Healthcare에 대한 배경과 국제적 동향을 살펴보았습니다.

국제적인 동향과 우리나라의 배경을 감안해 이제 우리나라에 고유한 의사의 임무와 역할에 대한 논의를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의협신문에 기고한 집필진을 중심으로 2011년부터 우리나라 의사의 임무와 역할에 대한 연구와 개발을 진행하고 공청회도 거쳐 초(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초(안)을 다시 정책과제화 하여 보다 세련되고 정교화된 내용으로 올해 10월부터 우리나라 의사의 임무와 역할에 대한 내용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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