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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방 항암요법의 위험한 진실
시론 한방 항암요법의 위험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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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6.1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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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복규(이화의대 교수)
▲ 권복규(이화의대 교수)

난소암과 유방암, 폐암 등의 항암치료에 쓰이는 '택솔(taxol)'이라는 물질이 있다. 이 택솔은 원래 미국 워싱턴주와 캘리포니아 주 등지에서 자라는 주목나무(Taxus brevifolia)에서 추출한 천연물이다. 최근에는 이 물질의 분자구조를 일부 바꿔서 다양한 이름으로 시판되지만 원래 이 나무에서 추출한 물질임은 마찬가지다.

이 택솔은 미국의 국립암연구소에서 1960년대에 천연물로부터 항암 신약을 개발하려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발견됐다. 당시에 3만종이 넘는 천연물질의 약리 활성 여부를 검사했는데 1964년에 이 중에서 주목나무 추출물이 눈에 띄었고 미국 농무성의 무어 월과 만스쿠 와니는 1969년 이 추출물의 주성분인 택솔을 정제할 수 있었다.

1971년 택솔의 분자구조가 알려졌고 1977년이 돼서야 항암 효과가 있음이 확인됐다. 1977년 앨버트 아인시타인 의대의 수잔 호로위츠는 택솔이 암세포의 마이크로 튜뷸에 붙어 세포 분열을 억제한다는 항암 기전을 발견했다.

그러나 환자에게 이를 투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서 최초의 임상시험은 1984년에 시작됐는데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는 상태로 이 물질을 만들어야 했고, 동물실험을 거쳐 안전성이 어느 정도 입증돼야 했기 때문이다.

1989년에 존스홉킨스 의대 연구진은 진행된 난소암 환자의 30%가 택솔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입증했고, 1992년 12월 미국 FDA는 난소암 치료제로 택솔의 시판을 승인했다. 택솔은 매우 성공적인 항암제 발견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승인에 이르기까지 무려 30년 가까이 걸린 이 과정에서 애초 택솔과 경쟁했던 수많은 천연물질, 혹은 인공화합물질은 사라졌다. 항암효과가 기대만큼 없든지, 독성이 강해 사람에게 쓸 수 없든지, 아니면 제조 과정이 너무 복잡해 실용화할 수 없든지, 혹은 다른 부작용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천연물로부터의 항암제의 개발은 지난하기 짝이 없는 일이며, 거대한 자본과 인력을 투입할 수있는 다국적 제약회사가 아니고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그 과정에서 많은 오류와 시행착오가 예상되고 자칫하면 환자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에 규제당국, 즉 이 경우에는 FDA의 꼼꼼한 점검과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과정에도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는 옻나무에서 추출한 항암치료제를 가지고 난치의 암을 치료한다는 어떤 한의사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심지어 전통을 자랑하는 어느 종합대학교에서 이 치료법을 이용한 의료센터를 설립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만약 사실이라면 대단한 성과이고, 온 국민이 마땅히 성원해야 할 가치 있는 업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여러 가지 의심이 드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동안 그러한 주장이 오류, 환상, 또는 사기로 입증된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암의 특성, 암의 분류, 암의 원인, 암의 치료 등에 있어서 이 분의 주장은 정통 의학계의 주장과는 매우 다르다. 물론, 한의학의 이론을 통해서는 그런 내용을 정당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료계의 관심은 적어도 근대의학적 방법으로 진단받은 암환자가 그의 치료법을 통해서 기존에 알려진 다른 방법들보다 더 우월한 치료효과를 경험할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잘 설계된 장기간의 전향적 임상연구가 아니고는 얻을 수 없다. 달리 어떤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몇 명의 환자들이 '효험'을 보았다는 증례보고 만으로는 그러한 효험이 우연이나 오진, 또는 다른 이유에 의해 그렇게 되지 않았음을 입증할 수 없다.

상당수의 암환자들이 투병 과정에서 일시적인 증상의 호전이나 암의 관해, 심지어 자연적인 치유도 겪는다는 것은 종양전문의라면 모두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그렇다고해서 우연에만 맡길 수 없는 것이 통계적으로 다수의 환자들이 현재까지 알려진 항암요법을 통해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음이 이미 입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소위 '한방 항암요법'은 그렇지 않다. 또한 혹시나 효과가 있다 해도 그 과정에서 어떤 장단기의 부작용이 생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며, 제조 과정에서 실수가 있어 잘못된 제품이 생산될 수도 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관리 감독기구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새로운 의약품에 대한 품목허가를 내줄 때 제품의 성상과 동물실험 자료, 약리에 관한 자료, 장기간에 걸친 임상시험 자료와 함께 어떻게 제조가 이뤄지는지에 대한 자료 역시 요구하는 것이다.

이 모든 정당한 절차를 그저 '오랜 경험을 통해 입증된 치료방법'이라는 명분으로 넘어가려 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는 올바른 의료인의 태도가 아니다.

필자는 옻나무에서 새로운 항암제가 개발된다면 환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나라 의료와 나아가 경제와 산업을 위해서 대단히 경하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현대의학의 제대로 된 방법론을 통해 그 약리작용,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돼야 한다.

그래야 외국의 환자들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고, 그 발견의 가치가 더욱 빛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쟁점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보면 도저히 21세기 문명국가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이는 결코 의학과 한의학의 싸움도, 경쟁도 아니다. 어떤 치료방법이 학문적 보편성을 가지려면, 그것을 합리적으로 입증하면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다. 그리고 국민 건강과 환자의 보호를 위해 그러한 요구를 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 이 란의 글은 의협신문의 입장이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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